오늘보다

  • 특집
  • 2016/12 제23호

박근혜 게이트, 시작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왜 분노했고, 무엇과 싸워야하는가

  • 이상욱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사무처장
87년 이후 최대규모 인파가 매주 토요일 촛불을 들고 모인다. 끝을 알 수 없는 폭로 속에 “이게 나라냐”는 분노와 한탄이 자리한다. 100만을 넘어 200만 명에 가까운 “박근혜 퇴진” 요구는 보수·진보언론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제 돌아보자. 우리는 왜 분노했고, 무엇이 바뀌길 외쳤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과 싸워야하는지.
 
 

4월~10월: 새누리당 총선 패배부터 게이트 폭로까지

어느 누구도 새누리당의 참패를 예상하지 못했다. ‘진박’ 논란으로 공천파동을 겪은 새누리당은 스스로 지지층을 내쳤다. 총선 직후 보수언론은 일제히 친박 패권주의 해체, 친박 수장 박근혜의 결단과 변화를 촉구한다. 보수집단 내 갈등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친박은 집단행동으로 새누리당 비대위·혁신위를 무산시키고, 청와대 정무수석에 친박 인물을 앉힌다. 수 차례 경고가 무시되자, <조선일보>를 마이크로 삼은 보수세력은 7월을 기점으로 직접 청와대 공격에 나선다. 친박에게 보수세력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합의’가 형성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연루된 비리를 폭로하고, TV조선은 친박 핵심 의원들의 공천개입 녹취를 단독 보도한다. 곧이어 대기업들이 미르재단에 비정상적인 모금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자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을 폭로해 반란 제압에 나선다.
 
이후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한 선임기자는 “K스포츠재단은 <조선일보>가 남긴 까치밥”이라는 표현과 함께 의미심장한 칼럼(9.28.)을 쓴다. 그는 “<조선일보>는 미르재단에 대한 모든 취재를 이미 마친 상태”라며, 아직까지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치밀한 계획 하에 수많은 폭로가 이미 준비돼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0월 말~11월 29일: 보수세력 총공격과 박근혜의 버티기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JTBC의 최순실 태블릿 공개 후, 보수언론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제목의 ‘단독’ 보도를 쏟아낸다. 박근혜가 하루만에 90초짜리 사과문을 읊어 녹화방송으로 내보내자, TV조선은 7월에 촬영한 최순실의 얼굴을 공개한다. <조선일보>는 제일 먼저 수습 가이드라인(2선후퇴·거국총리 임명)을 제시하고 이를 <중앙일보>가 지원한다. 때를 기다리다가 국민들이 분노할 정보를 쏟아내고, 수습방안까지 던진 것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역시 ‘친박 지도부 사퇴’를 압박하고, 따로 회동을 하며 ‘한 지붕 두 가족’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근혜는 버티기로 일관한다. 2차 대국민 담화 약속을 뒤집고, 검찰 조사를 거부한다. 오히려 ‘해운대 엘시티 조사’를 지시하며 반격에 나서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국정교과서 등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국정을 재가동한다.
 
이에 <조선일보>를 대변인으로 하는 보수세력은 강도를 높여 ‘질서있는 퇴진’(11.14)을 밀어붙인다. 폭로에 앞장선 JTBC를 포함해, 언론은 ‘박근혜=길라임’ 같은 조롱거리와 자극적 카피를 쏟아낸다. 동시에 ‘검찰 관계자’ 입을 빌려 “비리 혐의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경고하고, 피의자 신분 전환을 암시한다.
 
실제로 박근혜는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를 통해 ‘공범’으로 적시된다. ‘계속 버티면 탄핵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니 불명예퇴진 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려오라’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결국 박근혜는 탄핵이 임박하자 11월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왜 정국을 뒤흔들만한 폭로방법을 택했고, 박근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을까? 새누리당은 그간 친박을 포함 박근혜라는 개인의 후광에 의존해온 후진적 정당계파구조가 강화됐었다. 특히 ‘비선실세’로 상징되는 사사화된 통치는 보수지지층을 이탈시켜왔다. 때문에 <조선일보>로서는 박근혜와 친박을 몰아내지 못하면, 보수 혁신의 길이 막히고 예정된 패배로 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조선일보>를 대변인으로 내세운 보수집단이 빠른 속도로 새판짜기를 감행한 이유다.
 
박근혜 정권 4년 간 한몸이었던 비박은 박근혜와 친박을 비난하며 갈라서고, 정권의 편이었던 검찰은 청와대 문턱까지 찾아가 박근혜가 ‘공범’(피의자)이라며 심판자로 돌변했다. 또한 자발적인 모금이라던 재벌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박근혜 당선의 일등공신 보수언론은 온갖 조롱과 망신을 주는데 앞장섰다. ‘어떻게든 박근혜를 버려야 산다’고 결심한 비박-보수의 총공격은 박근혜의 ‘질서있는 퇴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그들이 지금껏 일관되게 주장한 <거국내각-개헌-하야-조기대선>의 시나리오를 따른다.
 
이처럼 친박을 제외한 보수세력은 박근혜 게이트 초입부터 이번 사태를 보수 혁신과 재결집을 통한 정권 재집권 전략으로 구상했다. 혁신을 거부하는 친박을 박근혜 하야로 몰아내고, 개헌을 매개로 보수세력을 모으겠다는 그림이었다.
 

12월: 덫에 걸린 야당과 박근혜가 던진 질문

이번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야당은 보수세력 시나리오 덫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초기에는 대권주자 문재인·안철수가 각각 거국중립내각과 책임총리를 주장했다. 이를 새누리당이 수용하고 정국수습에 나서자, “이미 늦었다. 국면전환용이다”라며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야당은 촛불민심을 보고서도 퇴진 입장에 머뭇거리고, 장외투쟁조차 꺼렸다. 제1야당 대표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촌극을 보였고, 퇴진으로 입장을 정리해서는 스스로 조건 없는 퇴진이자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안철수는 본인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강조했고, 문재인은 “명예퇴진(사면)”을 거론하며 자기 함정만 팠다. 심지어 두 야당은 청와대가 “차라리 탄핵하라”고 하자, 선총리 추천이냐 선탄핵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3차 담화에서 박근혜는 국민이 아닌 정치권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서 있는 퇴진이든, 임기단축 개헌으로 인한 퇴진이든 물러날 테니 명예퇴진을 약속해 달라. 그리고 언제 대선을 치를 것인지 결정하라.’
 
12월 2일까지만 해도 야당이 자신 있게 추진해온 탄핵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비박계가 주도하여 새누리당은 만장일치로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했고, 국민의 당은 2일 탄핵을 거부했다. 민주당 대표는 김무성을 찾아가 ‘1월 퇴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거절당했다. 야당은 입장을 자주 번복했고,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누구의 주도로 박근혜를 퇴진시켰는지 입증하고 싶었던 야당은 그 성과를 훈장삼아 대선을 치루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에게 박근혜는 이미 ‘버리는 카드’였다. 심지어 친박까지 질서 있는 퇴진에 합의했다. 박근혜 스스로도 대통령직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구속을 면하고 이후를 도모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대선을 하면 당신에게 유리한가?”라는 박근혜의 질문에 모두가 속내를 드러냈고, 촛불 민심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앞으로 보수세력은 박근혜는 끝났으니, 촛불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의도로 포장된 개헌론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공격하고 ‘이제 과거를 잊자’며 개헌 찬성론자들을 묶어 새로운 보수혁신 연합을 알리려 할 것이다. 개헌 추진 여부와 상관없이. 그 안에 촛불 민심, “이게 나라냐”는 질문은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보수재집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12월 3일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분노는 완고했다. 박근혜의 3차 담화 꼼수도, 새누리당의 ‘질서 있는 퇴진’ 당론도 투쟁 의지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민중들 스스로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이 짜놓은 각본을 찢어버린 것이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울산, 춘천, 전주, 창원 등 100여 개 시·군·구에서 232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당황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이튿날인 4일 긴급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4월 퇴진을 명확히 하더라도 야당과 협상 불발하면 ‘탄핵안 표결에 참석’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탄핵안 가결이 어려울 것이란 예측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는 9일 예고된 탄핵안 의결 가부를 떠나, 지난 12월 3일 시위는 저변의 분노가 광범위하고 무거운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는 사태가 “도로 새누리당 도로 박근혜”로 귀결되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과 부조리들을 적당히 묻으려는 지배세력에 대한 분노였으며,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해체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200만 촛불의 박근혜 퇴진 요구는 기성 정치권의 정치공학을 무너뜨려야 한다. 박근혜 빼고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나라,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유지되는 나라를 촛불 민심은 원한 적 없다. 대통령 한 명을 바꿀 표 한 장을 다시 달라고 구걸한 적도 없다. 민중은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답을 찾고자 촛불을 들었다.
 
금수저의 나라, 재벌의 나라, 공안통치의 나라, 북한 탓만 하는 나라, 국민을 개돼지라 부르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 박근혜 퇴진을 외쳐온 것이다. 박근혜가 ‘언제 어떻게 퇴진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가 퇴진해서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냐가 진정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권자다’라는 선언과 명령은 박근혜 퇴진과 더불어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는 길로 이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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