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6/09 제20호

주거권과 도시에 대한 권리

20년 만에 열리는 제3차 세계주거회의를 준비하며

  • 이원호 해비타트 III 한국민간위원회 사무국장·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결국 도시에 대한 권리를 정치적 이상이자 투쟁의 슬로건으로 내걸어서, 이러한 여러 투쟁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배제되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던 사람들이 도시 통제권을 되찾고, 자본 잉여를 통제하는 새로운 양식의 도시화 과정을 제도화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의지를 담보할 도시에 대한 권리의 민주화와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불가피하다.
- 데이비드 하비, ,《New Left Review 53》(2008) 
 

주거권을 테이블에 놓다

20년 전인 1996년 6월, 터키 이스탄불 광장에서 갈라타 다리까지 풍물 소리가 울려 퍼졌다. 풍물과 함께 대형 걸개를 들고 ‘주거권 확보를 위한 세계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한국의 철거지역 주민조직과 주거빈민운동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제2차 세계 주거회의(UN-HABITATⅡ, 약칭 해비타트Ⅱ) 한국 민간위원회’를 구성, 국제회의에 참가해 한국의 강제 철거 상황을 알리고 각국 도시 정부와 전문가들의 논의에 참여하며 주거권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한국 참가단은 각국에서 참가한 주거운동 단체들과의 적극적인 연대 활동으로 세계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 세계 주거운동 진영의 노력은, 당시 유엔 해비타트Ⅱ의 최종 협약문에 포함여부를 놓고 각국 정부 간 막판까지 논쟁이 된 ‘주거권’을 명시하게 했고,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가 각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핵심 과제임을 밝히는 ‘이스탄불 선언’을 채택하게 했다. 해비타트Ⅱ 이후 한국의 주거권 운동 진영은 철거민 운동 중심에서 주거권 운동으로의 확장을 고민해 왔다.  
 

‘도시에 대한 권리’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10월, ‘제3차 주거회의(UN-HABITATⅢ, 약칭 해비타트Ⅲ)’가 해발 850미터의 안데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열린다.

해비타트Ⅲ 참가자들은 향후 20년간 주거와 지속 가능한 도시에 관한 지구적 책임을 논의하고, ‘새로운 도시 의제’를 채택할 예정이다. 지난 40년간의 1~2차 해비타트를 통해 선언된 ‘주거권’에서, 도시 공간 내에 사회, 경제, 노동, 문화, 환경 등 포괄적인 새로운 도시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를 핵심 개념으로 채택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의제를 확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맞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가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자, 동시에 도시의 긍정적 기능의 활성화를 통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모색의 단초가 될 것이다.
 

온건한 해석과 급진적 해석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각 국가와 도시 정부 간의 힘과 이익 논리에 의한 결정으로, 현재의 자본주의적 도시의 공간 구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제한’될 소지도 있다. 지난 2차 회의에서 ‘주거권’의 포함여부가 쟁점이었던 것처럼, 3차 회의의 핵심 의제로 설정한 ‘도시에 대한 권리’ 채택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국가들이 다수 있다. 이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진보적이고 변혁적 내용에 대한 공포에 기반한 거부일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1967년 발표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앙리 르페브르의 소책자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자본에 의해 지배된 도시에서 민중들은 분화되고 소외된 현실에 침잠되어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가능성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이상을 동시에 담아냈다. 가능성의 도시에 대한 권리의 외침은 파리와 프랑스 전역에서 전개된 68혁명의 주요 슬로건으로 사용되었다. 1871년의 파리 코뮌은 도시에 대한 권리가 구현된 공간 이었다. 2005년 세계 사회포럼에서 채택된 ‘도시에 대한 권리 세계 헌장’에서도, 이 개념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도시적 과정, 정당성, 투쟁들의 강화를 지향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임을 분명히 했다.
 

반성 없는 한국 정부

이처럼 해비타트Ⅲ 준비 과정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을 어떤 의미와 내용을 지닌 의제로 채택할지가 한창 논의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급속도로 진행된 한국의 도시화를 성공 모델로 제시하며 세계에 알리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7월 해비타트Ⅲ의 협약문 초안을 논의하는 3차 준비회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도시개발 경험을 소개하며, 향후 국제사회가 지향해야할 새로운 도시 모델의 하나로 ‘스마트 시티’를 제시했다.

지난 8월 10일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는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세계 선도형 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을 선정했다. 국토부는 “우리의 강점인 도시개발 경험과 우수한 ICT(정보통신기술)를 연계한 핵심기술을 개발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포용도시’, ‘모두를 위한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가 논의되는 자리에서도, 도시를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제시하고 스마트 시티를 수출하겠다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한국의 도시화는 부동산 경제라는 토건적 도시개발을 통한 공간의 분리와 배제의 역사였다. 해비타트Ⅲ가 제시한 ‘도시에 대한 권리’는 한국 정부의 지난 도시화 방식에 대한 비판이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담론이다.
 
2015 도시사회포럼 포스터
 

자본주의적 도시화에 저항하는 포럼

한편 에콰도르 사회운동 진영과 세계 사회운동은 해비타트Ⅲ에 대응하는 민중사회포럼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의 땅을 위한 민중위원회’로 구성된 민중위원회는 전 세계 도시의 자본화 모델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2015년 11월에 결성되었다. 2016 민중사회포럼은 2012년부터 세계도시포럼에 대응하여 개최해 온 ’도시사회포럼(2012, 나폴리), ‘민중 도시사회포럼(2014, 메데인)’의 전례에 이어 추진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자본이 결탁한 자본주의적 도시 의제에 대항해 도시 공존에 대한 대안적 형태로의 ‘도시에 대한 권리’, 즉 자본의 이윤 축적 공간으로 배제와 차별의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삶을 영유하는 사람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롭고 포용적인 도시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제안하는 포럼과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올해 7월 19일에 열린 ‘해비타트Ⅲ 한국 민간위원회’ 발족식 및 세미나
 

한국 주거권 운동의 모색 

20년 만에 주거와 도시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을 준비하는 한국의 주거권 운동은, 지난해 말부터 해비타트의 핵심 의제인 ‘주거권’에 대한 국내 이행 평가와 주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을 모아 왔다. 그리고 최근 확장된 도시권리 담론을 논의하고 의제화하기 위해, 지방의제, 환경, 장애운동 진영과 ‘해비타트Ⅲ 한국 민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년 전, 철거민운동에서 주거권운동으로의 확장이라는 과제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 한국의 주거권 운동에게 해비타트Ⅲ와 민중사회포럼의 경험은, 이후 많은 도전과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우선 10월 해비타트 회의와 민중사회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절된 주거권운동 진영의 연대를 강화하고, 공동의 요구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향후 한국의 주거운동은, 주거권 보장과 쫓겨나지 않을 권리의 당면 투쟁과 함께 주거권을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으로 확장해 더욱 적극적인 요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권리가 도시에서 어떻게 박탈되고 있는지 밝히고, 빼앗긴 우리의 도시 중심부를 되찾을 권리, 가능성으로서의 도시와 도시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계기로 해비타트Ⅲ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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