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할 권리
- 2015/10 제9호
갑을오토텍의 전쟁같던 싸움 뜨거웠던 여름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한정우 부지회장 인터뷰
갑을오토텍은 갑을그룹 소속의 자동차에어컨 제조업체다. 갑질 횡포가 사회적 논란이 되며 정부가 나서 표준근로계약서에서 ‘갑·을’이라는 표현을 없애라고 한 지금, 참 적나라한 회사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갑을오토텍에서는 올해 그 이름만큼이나 막장드라마 같은 일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사진이 페이스북과 뉴스 타임라인에 오르내리던 6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노조 파괴 사주를 받고 경찰과 특전사 출신 수십 명이 위장취업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함께였다.
일주일 동안의 치열한 싸움 끝에 민주노조가 승리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갑을오토텍의 싸움은 6월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합의 후에도 회사는 합의사항의 이행을 질질 끌었고, 8월에 2차 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위장취업자들이 완전히 퇴사하면서 갈등국면이 마무리되었다. 언론에 부각된 것은 주로 폭력사태였지만 그 앞뒤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합원들에게 2015년의 치열했던 싸움은 어떻게 남았을지 궁금해서 충남 아산에 위치한 갑을오토텍 공장을 찾았다.
2014년의 교대제, 월급제 합의
주식회사 만도기계를 모태로 하는 갑을오토텍은 IMF 이후 여러 차례의 분할매각과 인수를 통해 탄생한 기업이다. 내홍을 겪으면서도 노동조합은 굳건히 자리를 유지했다. 그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2014년의 교대제, 월급제 변동 합의이다.
한정우 부지회장은 “금속노조 차원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기존에 12시간씩 주간·야간 교대를 하던 것을 8시간씩 교대해서 심야노동을 없애는 제도) 합의가 됐잖아요. 그러면서 저희도 작년 단체협약에 도입을 했죠”라고 설명했다.
교대제 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통상임금(노동자가 통상적으로 지급받는 임금으로, 연장수당 등 법정수당 산정의 기준이 됨) 판결이었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결론지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초과노동 수당으로 지불해야 할 금액이 배로 늘어났으니, 초과노동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갑을오토텍지회는 이 기회에 (노동시간을 줄이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의 전환과 동시에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로의 전환을 꾀했다.
“회사보다도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어요. 한국 임금 체계가, 기본 시급은 낮고 초과노동을 해서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 받는 구조예요. 게다가 통상임금 판결 이후에는 초과노동에서 받는 수당이 더 높아지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거에 혹해서 일을 더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건강과 인간다운 삶을 생각해서 이 기회에 심야노동을 없애야 한다, 계속해서 설명했죠.”
결과적으로 갑을오토텍은 교대제 전환 협상을 매우 잘 해낸 사업장으로 평가받는다. 한정우 부지회장에 따르면 “임금 보전도 꽤 괜찮게 했고, 노동시간도 8·8 원칙을 지켰어요. 24시 이후에는 공장 자체를 가동하지 않는 것으로도 합의했고요.”라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이때쯤부터 비밀리에 노조파괴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 시나리오는 이후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K Plan’이란 문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상한 신입사원들
갑을오토텍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매우 과감했다.
“노조파괴 사업장의 정형화된 수법은 복수노조 설립하고, 파업했을 때 직장폐쇄하고, 선별적으로 복귀하도록 만들어 제1노조인 민주노조의 주도권을 뺏는 거죠. 우리 경우는 양상이 좀 달랐어요. 기존 조합원들을 빼가는 식이 아니라, 아예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회사에 들였으니까요.”
사실 이 신입사원들은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면서 줄어든 생산물량을 메우기 위해 채용된 것이었다. 노동시간이 줄어 생산물량이 부족해지자 회사는 노동 강도를 높이고 비정규직을 채용할 것을 요구한 반면 노조는 신규채용과 설비 증설을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정 정도의 신규채용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무력 충돌까지 각오한 노조파괴 ‘용병’들을 채용했다.
“작년 12월 말에 60명 정도의 신규채용이 있었어요. 근데 올해 초에 몇 차례 제보가 있었어요. 신규채용 된 직원들도 모두 같이 기숙사에 살다 보니까 여러 말이 새나가잖아요. ‘신규채용자 중에 대부분이 금속노조를 깨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20여 명은 팀장 급으로 활동하며 기존 임금 외에 노조파괴 수당이라는 별도의 월급을 더 받고 있다’는 게 제보의 내용이었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죠. 그런데 확인을 해봤더니 정말 월급을 더 받고 있더라고요. 이들이 회사로부터 따로 교육을 받는 정황도 확인을 했고요.”
작업중지권을 둘러싼 충돌
새로 들여온 설비의 안전 문제를 두고도 회사와 노조의 충돌이 있었다. 한 부지회장은 “들여온 설비 중에 로봇 설비가 있었어요. 그 설비가 자꾸 오작동을 해 점검을 하는데, 안전장치가 제대로 안 돼서 그 상태로 점검을 하면 작업자가 다칠 수도 있는 상태였거든요. 노조의 노동안전보건부장이 그 상황을 보고는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생산 라인을 멈추도록 시켰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는 관리자가 누구 마음대로 기계를 세우느냐고 폭언을 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거나 중대한 재해가 생겼을 때 작업을 중지시키고 필요한 조치를 한 뒤 다시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한 권리’로 작업중지권이 존재한다. 물론 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라 할지라도 노조가 없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작업을 중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갑을오토텍지회는 평소 조합원들에게 작업중지권을 포함한 노동안전에 대한 교육을 해 왔고, 당시 작업 중지를 명령한 노조의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명예산업안전 감독관으로서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6시간 동안 작업을 중단한 갑을오토텍 노사는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회사 측 담당자를 징계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회사는 한 달이 지난 후 업무방해 혐의로 지회를 고소했다. 노조의 작업중지 요구가 무리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회사 운영에 손실이 생겼다는 것이다. 회사가 나중에서야 고소고발을 하는 의도는 뻔했다. 함부로 작업중지 하지 말라는, 노조에 대한 경고이자 도발이다.
법적인 싸움의 한계
공격이 본격화된 것은 3월이었다. 회사는 2월의 작업중지 건으로 지회를 고소했고, 신규 입사자들은 ‘갑을오토텍 기업노조’라는 이름의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갑을오토텍지회는 일단 노조파괴 목적의 신규채용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고 언론에 터뜨렸다. 노조파괴를 위해 위장취업까지 감행한 갑을오토텍의 사례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고소·고발은 이후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였지 법으로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었어요. 근데 막상 압수수색이나 부당노동행위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우리가 알던 것보다 많은 증거들이 확보가 된 거죠. 잘 하면 출혈 없이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어요.”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며 한정우 부지회장은 다시금 법적인 해결의 한계를 느꼈다. 많은 증거를 손에 넣었음에도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이 말을 바꿔가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라는 게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거의 무마되거나 장기화되거든요. 기업 오너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검찰이나 유관기관도 수사에 적극적이지가 않고요. 갑을오토텍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엔 힘의 논리로, 우리가 싸워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법이나 여론은 도울 뿐, 결국엔 현장의 힘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싸움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노조파괴를 위해 채용된 용병들의 일부가 과거 특전사, 경찰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전사는 적진에 침투하고,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폭력도 한번 쓰면 무자비하죠. 어떻게든 출혈 없이 해결하고 싶은 욕심과 기대는 당연히 있었죠. 실제로 두려움에 우리가 자꾸 위축되기도 했고요.”
6월 폭력사태와 파업농성
4월 말부터는 곳곳에서 기업노조의 도발이 시작됐다. 한정우 부지회장은 기업노조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핵심 간부들에게 테러 행위를 해서 폭력 사태를 유발해요. 노조 간부가 분노해서 같이 폭력을 쓰면 둘 다 징계하고 서로 고소·고발 할 수 있잖아요. 노조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집행력의 공백을 만들려는 거였죠. 한편으론 조합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해서 기세를 꺾고요.”
지회는 기업노조의 폭력 도발에 휘말리는 대신, 태업을 시작했다. 5~6명씩 분임조를 꾸린 조합원들은 태업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지회가 생각처럼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태업에 의한 물량 압박이 시작되자 결국 6월 17일에 집단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현장 곳곳에 부착한 지회의 투쟁 선전물들을 훼손했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무차별 폭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30여 명의 조합원이 다쳤다. 일부는 뇌출혈과 얼굴뼈 함몰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회 조합원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경찰에 연락을 하고, 정문으로 몰려갔다. 현행범을 체포하라고 외치며 폭력을 쓴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회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정우 부지회장은 “우리가 명백한 피해자였으니까, 법적으론 당연히 유리했죠.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가만히 경찰이 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조합원들의 기세가 약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직 다 깨지고 법으로 이기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라고 당시의 판단을 전했다.
그때부터 ‘전쟁 같은’ 파업이 시작되었다. 공장은 무법지대였다. 시도 때도 없이 기업노조와의 무력 충돌이 있었고, 경찰은 ‘노-노 갈등’이라며 사태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지회 조합원들은 이탈자 없이 철야농성을 하며 공장을 지켰다. ‘내가 쫓겨나면 쫓겨났지,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단 하루도 쟤네와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파업은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회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현대차에 납품할 물량 압박이 심해지자 회사는 그제야 ‘노조파괴 용병 퇴사조치’를 골자로 하는 협상에 도장을 찍었다.
8월 두 번째 투쟁
그러나 회사는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버텼다. 파업 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니 지회가 생산성 향상과 업무 외주화에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고 우긴 것이다. 노조파괴 용병들은 여전히 회사 기숙사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검찰 역시 시간을 끌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계속했다. 결국 지회는 7월 말 ‘2차 투쟁’을 선포했다. 한 부지회장은 “1차 투쟁의 목표가 일단 그놈들을 공장에서 몰아내는 거였다면, 2차 투쟁은 노조파괴라는 자본의 의도 자체를 몰아내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투쟁은 해야 하는데, 문제는 여름휴가였다. 6월 투쟁 이후 조합원들에게 피로도가 있는데, 휴가를 반납하고 회사에 나와 싸우자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만약 모두가 휴가를 떠난다면 관리직들이 대체인력으로 현장에 투입되어 파업에 대비한 물량을 만들 것이었다. 이때 무기가 된 것이 바로 작업장 안전 문제였다. 현장 노동자가 반드시 받아야 할 작업 변경 특별교육과 특수 건강검진을 관리직들이 받지 않은 것을 노동부에 고발하여 대체인력 투입을 불가능하게 했다. 파업 투쟁 때에 관리직들을 현장에 투입하여 물량을 빼는 것은 회사가 늘 하던 일이었지만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상태를 활용한 것이다.
8월 첫 주 휴가를 보내고 조합원들은 철야 농성을 준비해 회사로 돌아왔다. 모두 빠짐없이 참석했다. 6월 투쟁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던 가족대책위도 집회에 참석해서 변함없는 응원을 보냈다. 농성 하루 만에 회사는 다시 백기를 들었다.
남은 과제들, 치유와 정상화
8월 말이 되어서야 노조파괴를 위해 취업한 용병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지회 조합원들은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끔찍한 기억은 남아 있다. 누군가 나를 해칠 목적으로 회사에 폭력배를 심고, 몇 십 년을 정 붙이고 일해 온 일터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졌다. 지회는 조합원들에게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요즘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정우 부지회장은 “우리 조합원들 어디 가서 누구 때려본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들 공포가 심했죠. 심리치료를 하면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폭력사태 때 맞고 붙고 그랬던 사람들보다도 그걸 지켜봤던 동료들이 더 두려움과 상처가 크더라고요. 직장동료들이 맞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쳐다보고 있었다는 미안함 때문일 겁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위장취업자들의 퇴사와 6월, 8월 두 번의 파업으로 인해 잔업과 특근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며 노동시간을 단축한 취지가 훼손되고 있는 셈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츰 근무 체계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쉽지 않은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남은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갑을오토텍은 지회 선거 준비가 한창이었다. 너무 많은 일을 겪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금 지회 조합원들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