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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 제23호

삼성의 헌법유린과 정경유착: 과거·현재·미래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11월 26일 시민법정 퍼포먼스에서 박근혜, 이재용, 최순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현재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 뇌물수사 혐의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불리한 조건이었음에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고, 삼성은 그 대가로 최순실과 스포츠재단에 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삼성에게 국민연금의 조력이 필요했던 이유는 뭘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삼성그룹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지분이 전혀 없었고, 이건희 회장 역시 지분율이 1.7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제일모직은 이재용 부회장 일가 지분이 42.2퍼센트에 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소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관건은 합병비율이었다.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3주로 간주한 합병비율이 제시되자 곧바로 논란이 불거졌다.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 일방적으로 제일모직에 유리하다고 엘리엇을 비롯한 삼성물산 주주들이 반발한 것이다.
 
합병 비율은 합병 결의 이사회 전 한 달간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크게 저평가 된 상황이었고, 삼성물산의 자산과 수익을 가치로 보면 제일모직보다 높다는 분석이 있었다. 따라서 주가만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국민연금 지분은 제일모직(4.8퍼센트)보다 삼성물산(11.2퍼센트)이 컸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삼성물산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은 국민연금의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물산 합병결정 직전에 있던 SK와 SK C&C합병에서 국민연금은 반대입장을 밝혔다. 근거는 합병비율이 최태원 회장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으로, 삼성의 경우와 비슷한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결과 삼성 일가는 통합삼성물산의 지분 30.4퍼센트를 확보했으며, 이 부회장은 17퍼센트로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8조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 4퍼센트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을 통해 이재용 일가가 4758억 원의 이득을 보았고, 국민연금은 788억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합병된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떨어지면서 6천억의 평가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의 결정 배경에 청와대의 압박이 존재하는지 여부와 함께 이 부회장과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과의 수상한 만남이 의심받고 있다. 합병 이후 이 부회장은 대통령과 독대하였으며,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기부했고, 최순실에게도 35억 원을 송금했다.


과거

삼성의 정경유착은 이번만이 아니다. 삼성 일가는 경영승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왔다. 불법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정치적 협조자를 필요로 한다. 정경유착의 역사가 유구한 이유다.
 
1996년 삼성 에버랜드는 전환사채를 낮은 가격에 주주 우선으로 발행한 후, 기존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재용에게 배정했다. 이는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듬해 97년엔 이학수 그룹 구조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특정 대통령 후보에게 정치자금 지원을 공모하고, 검찰에게도 뇌물을 제공했다. 그 사실을 담은 도청파일이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01년 이재용은 무리하게 추진하던 e삼성 사업(인터넷·벤처사업 투자를 위한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것)을 파산으로 끝냈다. 이는 그의 리더쉽이 쓸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삼성은 e삼성 실패의 손실액 500억 원을 계열사에게 분산해 떠넘겼다.
 
2002년 차떼기 사건에도 삼성은 연루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재벌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재벌들이 트럭에 돈을 가득 실어 전달했다 해서 차떼기 사건이라고 불린다.
 
2007년에는 삼성비자금 특검이 실시되었다. 삼성이 정치인과 검찰, 관료 등에게 체계적인 로비를 해왔으며,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탈세와 탈법을 자행했고 수사로 발각된 은닉재산 규모만 4조5천억에 달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검찰의 부실수사로 대다수 혐의를 무혐의 처와 같은 지배구조 기틀을 형성했다.  
 
경영승계 과정은 불법과 특혜로 점철되어 있다. 전환사채(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회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약정된 기간이 지나면 약정된 가격과 수량의 새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는 이부회장이 편법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데 활용됐으나, 법원에서는 이에 면죄부를 줬다.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이 지분을 사들인 비상장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몸집을 키워 상장하고, 큰 상장차익을 거둬들였다.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은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지배구조를 유지하며,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처벌 한번 없이 삼성지배구조가 용인되어온 것은 불법을 눈감아주고 결탁한 세력이 있어서다. 삼성이 선거 때마다 입맛에 맞는 정권에 돈을 대고, 전방위적인 로비를 했던 이유다. 삼성지배구조 개편은 아직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정치판의 조력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11월 26일 시민법정 퍼포먼스에서 시민들이 태평로사옥 삼성 본관에 붙인 압류 스티커
 

미래

지난 9월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등기인사로 취임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승계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고, 그 일환으로 계열사 비주력 사업부문을 정리해 전자/금융/바이오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통합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를 포괄하는 목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통합 삼성물산이 지배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삼성생분하면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했다.
 
정경유착의 역사는 경영승계 작업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1995년부터 본격화 된 경영승계 작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구매한 뒤 상장하여 막대한 차익을 획득하면, 그 자금으로 지배구조 핵심기업의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삼성물산과 통합한 제일모직의 전신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이 대표적이다. 비상장 기업의 상장차익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주식가치의 1/30 가격에 매입하여 보름 만에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재용은 에버랜드 지분 31.9퍼센트를 단숨에 확보했다. 
 
그 후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을 사들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현재 21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 인적분할에 대해서 6개월 동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4.9퍼센트에 불과하며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18퍼센트 남짓이다. 삼성전자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 12.8퍼센트가 부활하고, 사업회사 지분을 특수회사와 교환하여 이재용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구조개편은 기존 주주들의 손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보다 더 높은 삼성전자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지분 8.96퍼센트)은 최대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삼성생명이 인적분할하여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경우 회사분할로 인한 자본감소도 초래될 것이다. 삼성생명 자산에서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의 지분가치를 분할해야하기 때문에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 이의를 제기하는 보험계약자 총수의 10분의1을 초과하거나 그 보험금액이 보험금 총액의 10분의1을 초과하면,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보험계약자들이 피해를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여부가 핵심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국민연금과 삼성생명 보험가입자 피해를 전제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재용 방지법’이라 불리는 삼성의 경영세습에 제동을 거는 30여 개 법 개정안들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삼성은 이 법안 처리를 막고, 국민연금 피해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우호적 정치세력과의 결탁이 필요한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돈으로 조성된 국민연금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돕는 일에 동원한 최순실 게이트. 이를 강력하게 수사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을 처벌하는 것은 이 은밀하고 질 나쁜 결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다.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삼성의 정경유착을 멈추어야 국민이 산다. 청산되지 않는 과오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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