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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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 제23호

그것은 풍자가 아니다

  • 김영글 편집실
1. <똥의 탄생>, 홍성담, 2016
2.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홍성담, 2012
3. <세월오월> 부분, 홍성담, 2014
4. 2014년 팝 아티스트 이하 씨가 광화문에 뿌린 전단
 
박근혜를 허수아비로 묘사한 그림을 그려 검열 파동과 표현의 자유 논쟁을 불러온 바 있는 홍성담 씨는, 최근 <똥의 탄생>이라는 그림으로 다시금 이목을 끌었다. 최순실 씨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엉덩이를 까고 박근혜 형상의 똥을 싸고 있는 그림이다.
 
몇 해 전 그는 박근혜가 박정희를 출산하는 모습을 그린 적도 있다. 외압 때문에 전시에서 그림을 내려야 했던 화가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사실 남겨진 쟁점은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다. 그가 계속해서 선보이는 그림들은 단순히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그림이 아니라, 풍자에 대한 오해와 뿌리 깊은 여성혐오로 빚어진 왜곡상이기 때문이다.
 
풍자는 조롱과 멸시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핵심을 겨냥하는 ‘가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홍성담의 그림이 흠집 내려 시도하는 것은 여성의 육체일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이 불유쾌한 이미지들은, 최근 정부를 “악취 나는 음부”로 묘사한 어느 교수의 칼럼과도 닮아 있다. 여성의 육체를 탐욕과 부패의 처소로 간주하는 시선은 긴 세월 가부장제가 사회를 훈육하면서 만들어낸 혐오의 은유다. 이를 풍자로 착각하는 창작물은 예술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본질을 흐릴 뿐 정확한 비판도 될 수 없다. 편견에 길들여진 가난한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격 없는 위정자나 문화검열이라는 국가폭력에 반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일상화된 폭력의 정서, 여성비하의 관념들과도 싸워야 한다. 광장에 가면 아직도 ‘미친년’ 이미지를 활용한 피켓이 보인다. 모욕의 즐거움을 위한 이미지, 순간적 쾌감을 위한 막말로는 나라를 바꿀 수 없다. 예술에서도, 일상의 정치에서도, 분노의 에너지와 혐오의 욕망을 분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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