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7/01 제24호

뜻밖의 여정, 2016년을 돌아보다

  •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킨 2016 연말. 까마득하던 지난 1년을 가장 잘 요약해준 것은 가수 윤종신이 12월 19일에 발표한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였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 뮤직비디오는 세월호, 위안부 합의,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가습기살균제 사태, 백남기 농민 사망,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일상, 이화여대 투쟁, 최순실 국정농단, 박근혜 퇴진 촛불까지 한 해 동안 있던 많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담고 있다. 

영상을 보고 있자면 2016년은 ‘다사다난했다’ 따위의 상투적 문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의 영화 속에 들어온 듯,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연달아 목격한 1년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 사건들을 목격만 하지 않았다. 치열하게 함께 살아냈다. 사람들의 열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굴절되어 모이고 흩어졌으며, 그러다 마침내 폭발했다. 
 

우리가 놓인 세계 

세계 정치지형에는 상징적이고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가장 강렬한 사건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6월)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11월)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중심부 두 국가의 인민들은 “세계화로 인해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투표함이 열리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설마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더 나은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감각은 극우 정치의 득세에 큰 역할을 했다. 여성과 이민자를 향해 폭언을 일삼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지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미국뿐 아니라 최근 몇 년은 유럽에서 영국 독립당, 프랑스 국민전선,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정당이 약진을 보인 시기다. 이들은 기성 정치에서 수용되지 않는 대중의 불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물론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와 같은 좌파 정치인들이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극우 정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와 상호작용하며 그보다 훨씬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총기난사로 49명이 목숨을 잃은 미국 올랜도 

갈 곳 잃은 불만이 테러가 되는 일도 잦았다. 2016년 6월에는 미국 올랜도의 성소수자 전용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져 49명이 사망했다. 7월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대형트럭이 광란의 질주를 벌여 86명이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니스 트럭 테러가 벌어진 7월 14일은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이었다.
 

1~3월: 무겁고 심란한 시작

2016년의 시작은 무겁고 심란했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떠안은 채였기 때문이다. 가장 큰 짐으로 남아 있던 것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참사 후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동안에도 문제는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한 채 피로감과 부채감으로 남겨져 있었다. 

연말연시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이후 대규모 체포 및 조사가 이루어지던 때이기도 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의 주된 요구는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막자는 것이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사다리로 넘거나 밧줄로 끌어당기며 광장의 차벽과 싸웠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시위대의 불법·폭력 행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을 둘러싼 논쟁이 팽팽히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 주동자로 지목당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되었다. 그리고 2016년 1월 22일, 정부는 노동개혁 2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을 발표하여 사실상 노동개악을 밀어붙였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2015년 말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발표(10월), 위안부 합의(12월), 2016년 초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2월), 테러방지법 통과(3월)까지. 반대 여론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각종 결정을 통보했다. 가슴 속엔 차곡차곡 무기력감이 쌓였다. 
 

4월: 총선이 만든 미묘한 균형점

미국 대선 과정에서 기성 양당에 대한 불만이 좌우 양끝의 주목받는 인물(버니 샌더스, 도날드 트럼프)을 만들어냈다면, 한국에선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국민의당으로 상징되는 중간지대가 부각된 것이다. 4.13총선에서 누구나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상했다. 야권의 표가 분산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과 달리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으로 향하던 표의 상당수도 흡수했다. 총선 결과 20대 국회는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등으로 구성되었다.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과반에 훨씬 못 미칠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보다도 적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상징하는 이 중간지대가 의미하는 바는 지금까지도 상당히 모호하다. ‘그간 거대 양당의 정치 행태에 대한 회초리’, ‘변화에 대한 열망’이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어떤 변화인지에 대한 합의는 거의 없는 셈이다. 

한편 진보정당은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으로 나뉘어 경쟁하며 혼란과 냉소를 야기했다. 1987년 이후 시작된 진보정당 운동의 한 순환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총선 결과 정의당은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중간지대의 성장과 진보정당의 난립 속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어려웠다. 

4월 총선은 청와대-새누리당 중심의 지형을 약간 바꾸어 정치세력들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만들어냈다. 원내 정당들은 각각 조금씩 다른 의미의 제약을 지닌 채 활동을 시작했다. 
 

5~6월: 포스트잇에 담긴 공감의 목소리

5월에는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의 움직임이 있었다. 두 움직임은 돌발적인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특정 세대, 계급, 성별의 집단을 관통하는 강력한 공감의 정서에 바탕을 두었다. 행동 방식 역시 일상적인 공간에서 매우 쉽고 간단한 것으로 제안되어 너른 참여를 촉발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추모 포스트잇

먼저 시작된 곳은 강남역이다. 5월 17일, 한 남성이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란 이유로 강남역에서 여성 타깃의 살인을 저질렀다. 이 사건이 한 남성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기인한다는 문제의식이 빠르게 퍼지며, 추모의 공간으로 지목된 강남역 10번 출구에 수많은 공감과 분노의 메시지가 나붙었다. 이 사건은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2000년대 한국의 ‘영페미니스트 운동’이 대학가 또는 운동진영 내부의 문제를 주되게 다루었다면 2016년의 페미니즘은 더 너른 토양에 자리를 잡았다. 낙태죄 폐지 운동,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의 성폭력 폭로, 박근혜 퇴진 운동 내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 등 페미니즘적 실천은 이어졌다. 영화, 방송 등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대중매체도 많아졌다.

강남역 사건 후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흐른 5월 28일, 구의역에서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하청업체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도 추모의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희생자가 사회적으로 몹시 취약한 위치에 놓인 하청노동자이자 청년노동자라는 사실은 안전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언했다. 이 사태는 ‘헬조선’, ‘흙수저’ 등이 대변하는 정서와 맞물려 폭발력을 가졌다. 동시에 추모 행동의 근본적인 자리에는 세월호에 관한 기억이 존재했을 것이다. 2016년 4월에 크게 이슈가 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렸으며, 구의역에는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세월호다!’라는 절규가 나붙었다. 
 
스크린도어 참사가 일어난 구의역 플랫폼
 

7~8월: 두 곳에서 타오른 불빛

7월에는 두 개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성주 주민들의 사드배치 저지 투쟁이다. 수도 서울 한복판 명문대학교 캠퍼스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경상북도 성주에서 벌어진 두 싸움은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될 만큼 2016년의 한국에 큰 의미를 지닌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시민들
 
이화여대 총장사퇴 투쟁

7월 13일 국방부는 사드 부지로 경북 성주를 확정 발표했다. 주민들과는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 선거철이면 고민할 것도 없이 여당에 표를 던지던 보수적인 경상도 농촌 지역 성주의 주민들은, 철썩 같이 믿었던 정부에게 발등을 찍혔다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마을회관에 걸려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은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주민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강력한 항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했고, 농민들은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성주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시위는 7월 28일에 시작됐다. 학생들은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의 설립에 학생 의견 수렴이 없었으며, 뷰티·웰니스 등 신설하여 교육하려는 전공이 이화여대에 필요치 않은 것이라 주장했다. 본관 점거 3일차, 대학 측의 요청으로 1600여 명의 경찰병력이 학내에 들이닥치자 투쟁에는 더욱 불이 붙었다. 8월 3일 학교 측이 미래라이프대학의 설립 취소를 발표했지만, 경찰병력 투입에 대한 사과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싸움의 규모는 더 커졌다. 8월 10일에는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 2만여 명이 스마트폰 불빛을 켜고 캠퍼스 내 집회에 참여했다. 이대 본관 점거 농성은 10월 정유라 특혜 의혹으로 최경희 총장이 사퇴하는 시점까지 이어졌다.

성주 투쟁과 이대 투쟁은 시기가 겹칠 뿐 아니라 몇 가지 공통점을 보였다. 우선 강남역·구의역 추모 행동에 비해 투쟁의 당사자와 목표가 명확했다. 그리고 당사자의 압도적 다수는 조직적인 투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투쟁 모두 초기에 ‘외부세력’에 대한 강한 경계·배제의 양상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냐는 외부에서의 질타 역시 존재했다.
 

9~10월: 비민주·반노동 정권, 레임덕의 심화

9월 25일, 1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끝내 세상을 떴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사인을 ‘병사’로 기재하여 논란이 됐다. 사망진단서 기재원칙에 따르면, 외부적 요인으로 심한 부상을 입어 투병 중 사망한 경우 ‘외인사’라고 기재해야 맞다. 이에 서울대 의과대학생과 졸업생들이 연달아 성명을 발표했으나 병원장과 주치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을 청구했다. 백남기 농민의 유족은 사인이 명확함에도 정치적 이유로 추진되는 부검에 반대하여 시민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키며 투쟁했다. 일련의 사태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시신 탈취로 진실을 덮으려는 경찰의 파렴치함, 권력 앞에 굴복해 거짓말을 일삼는 의료인들의 뻔뻔함을 세상에 알렸다. 백남기 농민의 장례는 10월 28일 경찰이 부검 영장을 포기하고서야 비로소 치러졌다. 

9월 27일부터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정부의 성과연봉제·퇴출제 도입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이는 정부가 2015년부터 밀어붙인 노동개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공격하는 행위였다. 임금피크제와 마찬가지로 공공부문부터 강제 도입이 추진되자 16개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노동자들은 대규모 동시파업을 벌였다. 투쟁의 결과 서울시 지방공기업, 서울대병원 등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철도노조 등 일부 단위는 장기 파업을 벌여야 했다. 공공기관은 성과가 아니라 공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큰 공감을 얻으며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부추겼다. 
 

11~12월: 광장을 뒤덮은 촛불

우병우 민정수석과 미르·K스포츠재단의 비리가 언론의 폭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공개하기에 이르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아무 직함도 없는 ‘비선실세’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직접 고치고 국정운영의 중요한 결정을 좌우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박근혜-최순실은 재벌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해 받아냈으며,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위해 편법도 서슴지 않았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대학생, 교수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외치며 10월 29일 3만 명으로 시작한 토요일 촛불집회는 11월 5일 30만, 12일 106만, 19일 96만, 26일 190만 명을 거쳐 12월 3일에는 232만(모두 주최측 추산, 전국 집계)으로 정점을 찍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지금은 잠시 숨고르기 태세지만, 촛불은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불만을 품은 채 지금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2017년 우리의 과제

2016년은 지속된 경제 침체와 함께 이명박-박근혜 정부 집권기 쌓여온 불만과 분노가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밀려 올라온 한 해였다. 그 에너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나 결국 폭발했다. 

몇 년 사이 민생파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쌓여 왔지만, 정치권 및 사회 시스템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고통 받는 이들에 공감하고,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변혁의 기획이 힘을 잃은 지금의 세계에서, 대중의 불만은 자주 타인에 대한 극단적인 배제·공격이나 이기적인 요구로 귀결되곤 한다.

이러한 조건은 미리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인 정세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특정 요구가 터져 나온다 해도 그것은 기존 운동세력의 예측과 기획을 크게 벗어나는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투쟁 안팎에서 조직된 운동과 미조직 대중들이 어떻게 마주치고,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갈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실험이 중요한 이유다. 
 
새로운 자생적 싸움 속에서는 기존 운동의 내용·주체·방식에 관한 경계가 자주 발견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운동이 실패해온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열망과도 관련이 있기에 쉽게 무시될 것은 아니다. 패배의 역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면 운동이 어떻게 변화하고 나아져야 할지를 함께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동시에 자생적인 움직임이 어떻게 불법과 합법의 틀을 넘어설 수 있을지, 나의 이해를 넘어 사회 구조에 대한 싸움으로 상승될 수 있을지에 관한 모색도 진행되어야 한다. 

2016년 폭발한 대중의 열망이 긍정적인 중간 수렴점을 찾지 못하고 거대한 환멸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대선이 있을 2017년, 우리에겐 냉철한 시대 인식, 운동의 과제 및 적절한 수렴점에 대한 치밀한 토론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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