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6/12 제23호

우리의 항쟁은

  • 김유미 편집실
11월 12일, 19일, 26일. 토요일마다 백만이 넘는 정권퇴진 촛불에 함께 했다. 몸이 일터에 묶여 있는 평일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은 광장 어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틈날 때마다 언론사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 SNS를 들락거리며 뭐 새로운 상황은 없는지, 누가 이 시국에 어떤 말을 보탰는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월요일의 세력 구도가 수요일이면 한참 전의 것 마냥 뒤집혀 있고, 수요일의 말이 금요일이면 무용해지기 일쑤니 흐름을 따라가기만도 쉽지 않다.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에 관한 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읽어대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소식이 있었다. 11월 21일, 게임회사 넷마블에 다니는 20대 직원이 돌연사 했다는 것이었다. 온라인상에 처음 돈 소문은 그가 회사 수면실에서 과로사 했다는 것. 이후 넷마블 측이 회사 안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고 과로사인지 여부도 조사해봐야 한다고 해명했지만 사망 소식과 함께 들려온 여러 정황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넷마블 사옥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는 일이 없어 사람들로부터 ‘구로의 등대’라 불린다. 야근과 주말 작업으로 작업 마감 기한을 맞추는 것은 한국 직장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게임업계 안에서도 넷마블은 “직원들을 갈아서 게임을 만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수면실 얘기도 맥락 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작년 7월의 인터뷰에서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방준혁 의장은 이런 말을 했다.
 
“집을 1주일에 한두 번 간다. 바빠서 그렇다. 회사에 수면실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수면실 있고 세면실 있어서 (…) 2003년도까지는 집에 거의 1주일에 2번 정도, 많이 가면 3번 갔다. 주말에도 일하고 그랬다. 그래도 요즘은 주말에는 일 안한다.”
 
그의 밑에서 일할 젊은 직원들을 떠올리니 숨이 턱턱 막힌다. 이쯤 되면 삶은 그저 생존의 최소조건을 유지하며 버티는 것 뿐이다. 그래서일까. 게임업계 2, 3위를 다투는 넷마블과 엔씨소프트 두 회사에서만 올해 4명의 2~30대 젊은 게임 개발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2명은 투신, 2명은 돌연사다. 그러나 넷마블은 직원 돌연사를 보도한 언론사에 연락해 ‘기사를 내리면 광고를 주겠다’는 식의 제안을 하거나, ‘구로의 등대’라는 표현이 퍼지자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야근을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화를 돋우었다.
 
넷마블 20대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유난히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것은, 백만이 모인 지금의 촛불이 내 또래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한 커피로 몽롱한 머리를 달래며 초치기 밤샘 작업에 매달린 청년 노동자에게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는 어떤 의미였을까? 88만원 세대니 N포 세대니 하는 우울한 청년 담론 속에 20대를 보내고, 스펙 경쟁 끝에 가까스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꼰대 개저씨들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는 청년들에게 광장의 촛불은 ‘처음 겪는’ 해방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겐 대통령뿐 아니라 박근혜 체제를, 그래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항쟁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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