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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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 제28호

개헌론에 대한 단상

  • 김정래
지난 겨울 광장과 거리를 메웠던 촛불은 우리 사회에 누적된 모순과 적폐의 청산을 위한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대통령을 몰아냈고, 기업 권력의 1인자를 감옥으로 보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당들은 촛불이 제기한 과제들을 해결할 의지와 역량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정치는 반공·권위주의적 이념과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양당 체제다. 이는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한계를 드러내왔다. 국회는 행정부 기술관료들의 거수기로 전락했고, 이전투구는 극심해졌다. 자신의 지지 기반을 유지해야하는 정치인들은 지엽적인 쟁점을 크게 확대하거나, 상대를 비방하는 폭로정치를 공공연하게 펼쳤다.

그 결과 국회는 민중들의 현실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냉소는 끝도 없이 심각해졌다. 때문에 정치에 냉소적인 소위 중도층 혹은 유동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기성 정당들의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촛불은 이런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이 글은 지배계급 일부에서 박근혜 게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개헌 등 정치 쟁점들에 대한 단상이다.
 
작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전격 제안했다 ⓒ포커스뉴스
 

‘두 명의 제왕’,  대통령과 총리 간의 갈등

‘제왕적 대통령제’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의 대통령 권한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비롯됐다. 즉, 지금의 정치 위기가 대통령 1인의 권력 남용을 제어하기 힘들어졌음을 드러낸다. 소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져 통치 구조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자들은 ‘분권형 정부’로의 개혁이 대통령제의 폐단인 권력 독점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 형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분권형 정부 형태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시민들이 각각의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의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인한 갈등이 대표적이다. 국회는 권력을 분산한다는 명목으로 총리를 선출하고, 총리는 지금의 총리와 달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는 ‘이원적’ 통치 주체, 즉 두 명의 ‘제왕’인 대통령·총리 간 갈등을 촉발할 여지가 있다.

특히 대통령의 정당과 총리의 정당이 다른 ‘동거정부(cohabitation)’가 생길 경우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출신 총리가 동거한다면? 싸움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잦은 여소야대 경험에서 볼 때, 이런 형태의 동거정부는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내각이 의회에 의해 구성된다. 의회가 정부를 책임지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가 ‘인물 중심’ 체제라면, 의원내각제는 ‘정당 중심’ 체제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엄격한 기율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집단적인 책임을 공유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한국의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정치적 책임과 반응의 부족, 정책 역량의 미비 등 후진적 정당시스템도 문제다. 이는 지역 기반의 독과점적 정당체제, 경쟁 없는 선거 정치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정당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정당의 엘리트로 구성된 수뇌부가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대중들과 유리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분권형 정부나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와 같은 지역 기반 정당체제에서는 오히려 정치공학적 정치 재편의 일상화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현 정세에서 분권형 정부 형태로의 변환은 ‘박근혜 파면’ 이후 생존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는 친박과 조·중·동 등 보수세력이 ‘재건’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국민의당 역시 독자적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분권형 개헌을 통한 연립정부 구성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의회 과반에 근접하는 다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분권형 정부 형태가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권형 정부 형태에 대한 개헌 논의는 적폐 청산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바라는 촛불 민심에 반하는 퇴행적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행정부 권한 축소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미국보다 막강하다. 미국과 달리 행정부에 의한 법률안 제출권· 예산 편성권을 통해 입법부에 대한 우위를 갖는다. 대통령은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의 재판관에 대한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마저 통제한다. 권위주의적이고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미국처럼 행정부가 갖고 있는 예산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만이라도 의회 고유의 권한으로 개혁한다면 지금의 문제를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국회에서 임명하는 방안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동시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측면에서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임명권(대법관 제청, 법관 임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 지명 등)이다. 이는 사법부 자체의 임명권으로 입법부와 행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은폐하거나 비호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행태는 촛불 민심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드러났듯, 검찰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한편 《오늘보다》 4월호의 ‘대통령 탄핵과 정치의 사법화’를 통해 살펴봤듯, 헌법재판소의 역할도 숙고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에 있어 ‘양날의 칼’로 기능할 수 있다. 요컨대 헌법재판소는 잦은 ‘정치적 결정’을 해왔다. 국가보안법 판결, 행정 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등 긍정할 수 없는 오류와 오판을 만들어왔음을 돌아봐야 한다. 이처럼 입법부 영역까지 사법부의 헌법 해석권이 확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될수록 정치 영역이 축소되고,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은 왜곡된다. 기본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헌법 해석과 민주주의의 원리는 양립할 수 없다. ‘헌법 해석’은 ‘체제 수호’와 같은 말이기도 한데,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나 촛불 같은 ‘인민에 의한 다수의 지배’라는 대중적 압력으로부터 기득권 체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바로 사법부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도 도저히 ‘파면’하지 않고서는 체제를 수호하기 어려웠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는 헌법의 한계를 넘을 수 있지만, 헌법은 민주주의를 넘을 수 없다. 촛불 운동이 그 증거다.
 
 

선거제도 개혁 : 부르주아 정당의 과잉대표성 해소

또한 촛불에서는 기성 정치의 대표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도 제기됐다. 사회의 다양한 집단 및 세력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 시스템,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 없는 개헌 논의는 기득권 구조를 유지해온 보수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개헌 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순다수제(1위 대표제)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1등을 한 후보만이 당선되는 시스템, 즉 승자독식 구조다. 이런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표의 등가성이 파괴(득표율-의석점유율의 불비례성)된다. 민의는 왜곡되고, 양대 정당 지지자 외 시민들의 소외가 발생한다.

진보정당들은 오래 전부터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정당의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확보되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성 보장 ▲지역주의와 결합된 양대 정당의 독과점적 체제 혁파 ▲인물정치가 아닌 이념·정책 중심의 정당 정치 활성화의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와 광장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요구가 5월 광주항쟁처럼 비극으로 끝나거나, 1987년 6월 항쟁처럼 위로부터의 기만적인 개혁으로 이어진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조건에서 집권했고, 김대중·노무현의 무비판적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은 노동의 불안정과 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귀결됐다.

이번에도 촛불의 정치적 수혜가 이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적폐 청산 대신 국민 통합과 사드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며, 사실상 ‘묻지마 정권교체’를 내세우고 있다. 재벌 개혁이나 노동 정책 역시 잘못된 경제 질서를 개혁하고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강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4월 23일 발간된 《노동자의 눈으로 본 2017대선》 소책자 참조.) 지난 시기 자유주의 세력의 기만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의 차이를 헌법이나 정부 형태, 즉 헌정 체계 때문이라 말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적 정권에서는 어떤 헌법도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장해 줄 수 없다. 헌법은 법과 정치의 경계에 존재하며, 본질적으로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게 우선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헌법)규범이 있더라도 (헌법)현실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장식물’에 불과하다. 결국 인민들에게 보다 필요한 것은 개헌이나 정부형태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보다는, 촛불 시민의 뜻을 이을 적폐 청산과 재벌개혁, 노조할 권리, 평화체제 구축 등 사회대개혁을 위한 운동에 보다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김정래 | 노동자운동의 재건에 기여하고자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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