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과 사회
- 2017/04 제27호
박근혜 체제를 해체하는 길, 의료도 바뀌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 총체적 정권 실패
박근혜-최순실-재벌게이트의 핵심 중 하나는 의료게이트였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태에서 서울대병원과 소속 교수들이 보여주었던 비도덕적인 행태, 대통령 주치의로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직무유기와 비리,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사익을 편취한 의료인들, 박근혜 세력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국가 정책을 왜곡한 삼성과 차병원그룹으로 대표되는 병원 자본까지 광범위한 문제가 폭로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단순히 일회적 스캔들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 내내 추진된 의료민영화, 공공의료 파괴, 건강보험 부실화가 이번 스캔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권 직후부터 박근혜 정권은 진주의료원 폐원, 영리자회사 허용, 부대사업 확대, 병원 인수합병 허용, 원격의료-건강관리서비스 추진, 줄기세포 임상시험 등 신의료기술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 제주영리병원 추진,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도입, 서비스산업법·규제프리존법 등 재벌특혜 규제완화 추진과 같이 의료산업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억한다면 박근혜를 퇴진이 끝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정책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료산업화 정책을 폐기할 것인가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있으므로 상반기는 대선 경쟁 국면이 될 것이다. 탄핵으로 인해 대선 일정이 빨라지고, 따라서 선거 이후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때문에 대선 국면에서 사회운동의 요구를 정선하고 사회화하는 과정은, 선거 자체에 개입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선거 이후 새롭게 집권하는 정치세력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운동을 만들어갈 시발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의한 정권 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야당을 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의료민영화 반대를 당론으로 하고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을 국회에서 막기도 했고, 국제의료특별법 등은 일부 수정해서 합의해주기도 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당분간은 의료민영화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부문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의료자본을 육성하는 의료산업화 정책은 민주당 또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 번째는 이제까지 민주당이 의료산업화와 관련해서 취해왔던 입장 때문이다. 긴 흐름으로 보면 민주당은 노무현 정권 시기 의료산업화 논리를 만들어 영리병원, 민간보험활성화 등 의료민영화 정책의 기조를 잡았던 정치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노무현 정권이 만들어놓은 경로 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은 종종 이런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민주당을 압박했었고,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솔직한 자기반성도 했지만 당 전체가 의료산업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한 적은 없다. 이는 민주당이 작년 총선 이후 의료법인 인수합병 법안을 합의해주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나, 최근 안희정 등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규제프리존 특별법에 동조하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의료산업화 추진의 기본적인 동력이 자본-행정관료의 연합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월 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업무계획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의료산업화와 관련한 정책은 철회되지 않았다.
개인정보인 빅데이터산업 활성화, 줄기세포·첨단재생의료 규제완화, 원격의료 추진 등이 여전히 업무계획에 포함되어 나왔다.
이는 한편으로는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여전히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재부가 주도하고 복지부가 따라가는 의료산업화 정책이 행정관료들의 합의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료정책, 이젠 바뀌어야 한다
대선 국면을 경과하고 정치권력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대안세력이자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으로서 민주노총은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가 단순히 정치 비리 스캔들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재벌을 위해 민중의 삶과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대선 이후 새롭게 수립되는 정치권력에게 부패와 비리를 근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책 기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의료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을 꼽아보면 첫째, 박근혜 집권 기간 추진되었던 영리병원 허용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폐기할 것, 둘째, 박근혜 집권 기간 방치되고 왜곡되던 공공의료와 관련한 정책을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재수립할 것이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주영리병원 설립 취소, 2014년 편법 허용되었던 영리자회사·부대사업 확대 가이드라인의 폐기가 목표가 될 것이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폐지, 공공병원 이사회 구조 개선이나 병원장 임명과 관련한 절차 등 공공병원 운영에 있어 공공성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지점들은 정치권력이 교체된 이후 ‘박근혜 적폐 청산’을 기조로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쟁취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정책, 복지정책으로 포장하면서 의료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은 적정급여와 적정부담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국민들이 원하는 보장성을 위해서는 그만큼 세금 부담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과 공명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였고, ‘권리로서의 복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비용의 한국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보험료와 세금을 낸 만큼 보장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벌병원·제약회사·의료기기회사와 같은 의료자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 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특히 신의료·신약의 경우, 안정성과 비용 효과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운영하면서 국민의료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약회사·의료기기회사의 육성을 실질적인 목표로 섣불리 신의료기술에 대한 검증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난치성 환자에 대한 복지와 신의료기술 규제완화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오히려 이런 의료행위에 대한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검증이 있어야, 공적 재정을 올바르게 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복지가 가능하다.
매주 거리에 모였던 촛불 시민들은 지금 박근혜가 즉각 퇴진하고 구속되기를 요구했고, 박근혜 체제가 바뀌길 바래왔다. 보건의료도 바뀌어야 한다. 신의료·신약에 대한 민주적이고 공정한 검토절차,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민주적 운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료민영화 정책을 폐기하고,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
- 덧붙이는 말
김태훈 | 여전히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