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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 제24호

페미니즘이 끝났다구?

포스트 페미니즘 담론이 가리는 여성의 현실

  • 이유미 ≪지금 여기 페미니즘≫ 저자
“페미니즘은 끝났는가?” 1998년, 타임지가 페미니스트 앤서니, 프리단, 스타이넘 다음에 미국 드라마 주인공 앨리 맥빌을 표지에 나란히 놓으며 던진 질문이다. <앨리 맥빌>은 하버드대 출신 변호사의 일과 사랑을 그린 인기드라마다. 앨리 맥빌은 남자들에 뒤지지 않는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가졌고 자신의 욕망과 사랑에도 적극적인 고소득 전문직 여성이다. 그런데 왜 페미니즘의 종언을 물으며 표지에 등장한 것일까? 
 

일과 사랑을 거머쥔 전문직 여성의 등장은 페미니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타임지 표지는 ‘페미니즘 종언’, ‘페미니즘 이후’를 말하는 포스트페미니즘 시대를 선포했다.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이 등장한 것이 당시가 처음은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여성참정권이 획득되었을 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졌으니 이제 여성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포스트페미니즘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1970~80년대 2세대 페미니즘이 세계를 뜨겁게 달군 이후, 여성들이 정치적 평등만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에서도 평등을 이뤘으니 페미니즘이 불필요하다는 담론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은 이미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본다는 점에서 반(反)페미니즘적 성격을 가진다. 남녀 따지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이 과거 페미니스트처럼 차별에 반발하고 남성이 폭력적이라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의 시대착오성과 무능을 정당화할 뿐이다. 이제 여성들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탈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변화에 주력할 때인 것이다.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은 사회경제적 평등을 위한 여성의 집단적 운동을 자기계발로, 성과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 권리로서의 선택을 소비자로서의 선택으로 이동시킬 것을 요구한다. 
 

‘걸(girl)’의 등장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특징은 대중문화가 페미니즘을 재현하면서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기존 페미니즘에 대해 정서적 반발심을 가진 집단으로 ‘젊은 여성(girl)’이 등장한다. <앨리 맥빌> <섹스 앤 더 시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같은 전문직 여성의 일과 사랑을 그린 ‘칙릿(chick lit) 장르’가 젊은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 쾌락을 자유롭게 누리는 주체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그녀들은 자기표현의 핵심이자 자기계발의 요소로서 소비를 통한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고자 한다. 사회적 성취만이 아니라 상품성 있는 몸에 대한 자기관리도 중요하다. 

한동안 페미니즘은 그녀들의 열망을 이루는 데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었다. 1990년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개인적 즐거움과 성적 쾌락을 금지하는 구시대적 유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세대적 관용어가 될 정도였다. 

프린스턴 대학원생이던 케이티 로이피의 <다음날 아침>(1994)이라는 책은 그녀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이피는 책에서 대학 내 성폭력 반대운동을 하던 페미니스트들이 현대판 청교도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데이트강간에 대한 처방이 조신한 성생활이라는 것은 여성의 수동성과 피해자 이미지를 고착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로이피의 입장은 2세대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율성과 성해방을 추구하다가 성적 위험을 강조하면서 수동적인 피해자로서 여성상을 강화한 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적 자율성이 제약되는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는 여성상은 자유로운 욕망을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욕망이 실현될 현실적 제약을 간과하고 자기계발 논리와 소비 지향적 여성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파워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변화를 주장하는 젊은 여성들도 등장한다. 미국 페미니스트 울프는 ‘피해자 페미니즘’을 벗어나 ‘파워 페미니즘’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가 피해자 정체성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 있고 다양한 여성주체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자매애는 강하다” 등의 2세대 페미니즘의 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입장이 일상을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으로 보고, 그 대신 개인의 다양한 욕망과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쾌락, 위험, 권력구조의 작동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운동’으로 정의한다. 하이힐을 신고 성적 자유를 누리면서도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페미니즘과 함께 성장했고 페미니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대의 자신감 있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3세대 페미니즘이라 부를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는 논란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의 거부가 아닌 변화를 주창하며 페미니스트를 자임했지만, 실제로는 모호하고 분열적인 움직임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페미니즘의 탈정치화와 개인 라이프스타일의 강조라는 점에서 포스트페미니즘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성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2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다각도로 진행되었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백인 중간계급 여성을 대변하면서 여성들 내부의 차이를 무시했고, 그 결과 인종적·성적 소수자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비판이 흑인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성 범주를 정하고 여성억압의 단일한 원인을 규명하며 보편적 해방을 지향하는 이론과 실천이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지배를 생산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자유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 등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분화되었던 페미니즘이, 흑인·레즈비언 페미니즘 등 집단의 동일성(정체성)에 따라 분화되는 ‘동일성의 정치’가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동일성의 정치는 보편적 이론을 구성하는 시도를 거부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획과 공명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 주체를 상정하는 보편적 해방의 기획이 필연적으로 그 내부에서 지배와 복종의 위계를 재생산하면서 억압적 효과를 발휘한다고 본다. 그리고 동일성을 담론적 실천의 구성물로 간주하고, 그것을 고정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표적인 논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고정된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 담론적 실천 속에서 구성된다고 정의하며 여성 범주의 해체를 시도한다. 
 

이러한 담론의 전환은 미시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권력에 대한 ‘위반의 정치’, ‘일상의 정치’를 강조한다. 그에 따라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약화되고 사적인 경험과 욕구, 내밀한 감정을 정치적 쟁점으로 제기하는 실천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개인적 위반을 통해 사회구조나 문화적 통념을 바꿀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여성을 해체해버리면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의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정치적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성적 차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적 특징이란 점에서 계급이나 종교와 같은 사회적 범주와는 차이가 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재생산의 영역, 여성만이 임신출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적 차이는 사회 안에서 "여자/남자는 어떠해야 한다"와 같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여성을 ‘허구적 범주’로 해체해 버리지 않고, 사회의 변혁과 동시에 진행되는 여성해방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페미니즘의 과제

페미니즘은 끝났을까? 오늘날 여성현실을 돌아보자. 여성들의 임금 및 고용조건은 남성과 비교해 열악하며, 여전히 가사와 양육의 일차적 책임자는 여성이다.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에서부터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성 상품화는 세계에 만연하다. 여성의 자율성과 해방에는 여전히 사회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의 집단적 권리가 달성되었기에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정치적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고 개인적 성취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 이는 자기계발을 통한 성공 신화가 소수에게 주어진 특권일 뿐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적 제약을 간과하며, 대다수 여성의 현실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성적 평등이 달성됐음에도 여성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여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가려진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운동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페미니즘 운동은 사회 전반의 민주적 변형을 추구하는 보편적 운동으로 표상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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