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6/11 제22호

평화운동 방향 바로잡아야 평화를 쟁취할 수 있다

지금은 흔들림 없이 '반전반핵' 외쳐야 할 때

  • 이준혁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장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긴장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평화운동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성주와 김천의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지만 평화운동은 내부의 입장 차이를 정리하지 못한 채 단결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핵심 쟁점은 바로 ‘북한의 핵무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민중운동 일각은 북한의 핵은 ‘미 제국주의에 맞서는 자주 핵’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이 이미 “미 본토 핵 타격능력을 확보”(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했다며 북한의 전력을 과대평가하거나, 북핵에는 침묵하면서 한미 양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만을 문제 삼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드 문제 자체가 북한 핵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드의 성능을 의심하면서도 ‘이거라도 필요하다’며 찬성하는 와중에 유독 북한 핵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옹호하는 평화운동은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엄중한 정세에 비해 평화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금, 남한의 평화운동은 어떠한 입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북한 핵무장의 의도

북한의 핵무장이 ‘반미자주핵’으로서 용인될 수 있다면 북한이 핵무장을 통해 노리는 목표가 정당한지, 또 성공할 수 있는지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이 더 이상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닌 실전 배치가 목표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은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이하 핵보유국법)을 제정해 자국의 핵을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보유할 것이라 명시했다. 협상의 대상이 동시에 핵을 축소하지 않는 이상, 과거의 6자회담과 같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에너지 지원 등의 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무조건 선(先) 비핵화만을 고집한 미국의 과오가 지적되어야만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한미 동맹에 의한 군사적 압박과 외교적 고립정책,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정책도 있다. 미국은 1991년까지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해왔으며 지금도 북한에 대해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 위협에 핵 위협으로 맞서겠다는 북한의 전략은 성공하기 어려울 뿐더러 평화로 나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무한 군비경쟁

우선 북한의 핵무장은 동아시아의 항구적인 군비경쟁을 촉진한다. 북한은 핵무장의 이유로 미국의 핵 선제공격 위협을 들지만 북한의 핵무기 정책 역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그러나 ‘핵으로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이라는 문구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연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실질적으로 핵전쟁 연습이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을 핵으로 타격하는 것이 정당한 자위조치가 될 수 있다. 또한 2013년 4월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핵보유국법은 “적대적인 핵보유국”이나 이들과 “야합한 비핵국가”들의 침략과 공격에 “보복타격”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침략의 성격이 비핵공격인지 핵공격인지 명시하지 않았기에 7차 당대회에서의 선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에도 핵 반격이 가능하게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핵무기 정책과 교리를 수립하는 일은 다른 국가에게 보내는 ‘신호’다. 상대에게 핵공격의 사용조건과 의도를 전달함으로써 일정한 군사적, 외교적 강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호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자체가 미국의 강압 정책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상대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선제공격까지 포함한 ‘확장 억지’를 주장하고 있고, 남한은 대량응징보복이니 한국형 킬체인 등으로 맞서고 있는 판국이다.
 
 

핵 억지에 의존한 대화는 평화의 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핵 억지력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능력이다. 서로 보복능력을 확보한 두 나라는 핵전쟁 시 확실하게 공멸하기 때문에 전쟁 대신 대화와 군축협상에 나선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의 실험 성공과 미국 동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신형 KN-14 미사일 엔진의 실험까지 완료하여 이미 미국에 대한 보복능력을 확보했거나 근시일 내에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이 핵 보복능력을 기반으로 미국에게 “대화에 나서든가 아니면 전쟁을 하든가”라는 선택지를 강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상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은 뒤 미국과 군축 또는 군비제한 협상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핵이 제공하는 공포의 균형과 상호 불신에 의존하는 대화가 제대로 기능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억지와 상호불신에 기초한 대화는 역사적으로 서로의 군비확장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되어 왔다. 일례로,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000년 핵탄두의 숫자를 줄이는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합의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상대방을 비난하며 핵 감축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춰봤을 때, 북핵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북미간 대화는 한반도 평화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자체를 용인할 생각이 없다. 반면 북한은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제안도 거부할 정도로 핵보유 의사가 확고하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상충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대화의 국면이 있을지언정 제대로 된 관계회복의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유럽 평화운동의 교훈

1980년대, 신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에 등장한 유럽의 평화운동은 미국뿐만 아니라 소련의 핵무기 개발에도 반대했다. 평화운동의 입장에서 보기에 소련의 군비가 강화되는 양상은 미국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련은 미국의 압도적인 무력의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역시 유럽에서 소련의 재래식 전력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유럽에 신형 미사일이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평화운동의 지적에 따르면, 무기 혁신은 언제나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증식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국제 정세가 우호적인 상황에도 새로운 무기는 언제나 개발되고 있었다. 1970년대 상대적으로 미-소 관계가 안정적이었던 데탕트 시기에 소련의 핵무기 숫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유럽의 평화운동을 촉발시켰던 미국의 퍼싱-2 미사일의 개발이 시작된 것도 같은 시기였다. (《오늘보다》 2016/04 제15호에 실린 글 <1980년대 유럽 평화운동: 최초의 핵무기 군축을 이끈 퍼싱-2 반대운동> 참조)

물론 당시에도 프랑스 공산당과 같이 소련의 영향력이 강한 일부 좌파 정당은 소련의 핵무기에 침묵하다가 대중적 평화운동이 고조되자 뒤늦게 소련의 핵무기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 공산당은 평화운동을 비롯하여 당시 대두되던 제3세계의 제국주의 반대 운동, 폴란드 등 유럽 동구권의 노동자 자주관리를 외쳤던 운동과 연대하는 세력이라는 표상을 가질 수 없었다.
 

사드 반대! 핵무기 반대!

2016년의 한국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어떨까? 지금 남한 사회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주의적 행태와 재벌의 이윤 독점에 분노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드 반대 투쟁’으로 표상되는 평화운동의 위치는 어디인가? ‘사드 반대’가 각종 집회의 구호에 같이 들어가 있지만, 대중의 절실한 요구라기보다는 기계적인 결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남한의 반전평화 운동은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포함한 미국의 패권적 군사전략에 적극 조응했음을 폭로하는 한편,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 군비경쟁에 반대하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사람들은 ‘북한의 핵이 무섭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이 사드 배치 반대만을 외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대안을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제시할 수 있을 때, 남한의 평화운동은 대중의 삶과 투쟁의 물질적 조건들 속에 뿌리를 깊이 박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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