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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 제22호

부패한 박근혜 정권에 맞선 공공 노동자

  • 문설희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9월 27일 6만 명이 넘는 철도·지하철·병원·가스·건강보험·국민연금 공공 노동자들이 일제 동시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공공운수노조는 성과퇴출제 저지 투쟁을 “효율화라는 미명 아래 가해지는 국가 폭력 앞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없기에, 침몰하는 배를 두고 달아나는 세월호 선장이 될 수 없기에” 나선 싸움이라고 규정하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시민들도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파업에 격려를 보냈다. 박근혜 정부의 ‘고임금·정규직·철밥통’ 이데올로기 공세는 초반부터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노조로서는 성과연봉제란 이름의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하는 파업이 얼마나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2013년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에서 “불편해도 괜찮아”를 학습한 시민들은 이번에도 “불편해도 괜찮다”며, 공공부문에서조차 ‘성과’를 명목으로 경쟁을 강요하면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공공부문에서 ‘성과’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정부의 ‘성과연봉제’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다. 이번 파업을 계기로 시민들은 공공의 안전과 생명이 효율성 논리에 의해 침해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18일 한 경제신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성과연봉제 추진에 대한 반대는 59퍼센트로, 찬성보다 18퍼센트 더 많았다. 또 성과연봉제에 맞선 노조들의 파업에 대한 지지 역시 56.8퍼센트로 파업 반대보다 13.2퍼센트 더 컸다. 성과연봉제가 노동자 해고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보는 의견도 64.2퍼센트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보다 28.4퍼센트나 높았다.

불통정부 박근혜 정권에 맞선 투쟁이라는 점에서 큰 각오를 하고 시작한 공공운수노조의 파업은 이미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정부 정책의 실체와 위험성을 알리는 것을 넘어 공공부문의 진정한 성과, 즉 공공성을 강화하는 주체로서 노동조합이 바로 설 때 채워질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에게 공공성이란 ‘가혹한 세상에 마지막 기댈 한 평의 땅’과 같은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이 공공성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공공성의 영토를 넓히는 싸움에 앞장 서는 정의로운 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유례없는 대규모 장기 공동 파업

“어르신들에게 죄송하다.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마비되어 매월 25일 연금을 받아야 하는 어르신에게 지급이 늦춰질 수 있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분들에게 죄송스럽다. 다만 이 불편 잠시만 기다려 달라. 모든 국민의 노후를 위해, 어르신의 연금을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는 파업의 고충을 위와 같이 토로하면서도 전체 4,000명 조합원 중 10퍼센트의 출산휴가·장기휴가자를 제외한 3,500명 파업 참가라는 높은 참가율을 보였다.  사업장 내 복수노조 통합을 성사시킨 후 1만 명의 더 큰 노동조합이 되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로 다시 합류한 건강보험노동조합 역시 “건강보험공단에 보험왕은 필요 없다”며, 전 조합원 파업에 돌입했다.

이처럼 건강보험·국민연금·철도·지하철·병원·가스 등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16개 사업장이 9월 27일부터 현재까지 최대 6만 명에서 2만 명까지 파업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함께 시작하고 함께 돌아간다’는 원칙을 갖고, 전면 파업, 간부 파업, 시기집중 파업 등 전술의 유연성도 구사하면서 장기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체 조합원이 17만 명인 점을 감안했을 때 역대 최대 규모다. 16개에 이르는 사업장들이 교섭권을 노조 중앙에 위임하고, 동시 파업을 일사분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도 유례가 없다.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폐기를 촉구하며 파업을 예고해왔던 화물연대본부도 지난 10월 10일 파업에 돌입하고, 공공운수노조의 투쟁대오에 합류하여 새로운 국면을 형성했다. 파업 과정에서 서울지하철노조 등이 서울시와 성과연봉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하지 않겠다는 잠정합의를 하고, 서울대병원분회 역시 2017년까지 도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중간 승리도 있었다. 이처럼 공공운수노조는 2011년 통합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비로소 ‘산별노조’다운 모습으로 투쟁에 임하고 있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파업

‘성과퇴출제 저지’라는 목표로 시작된 파업이지만, 투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정세적인 요구와 맞물려 투쟁이 진행되는 양상도 보인다. 지난 10월 6일 파업 중이던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백남기 농민 유가족 앞에 섰다. 서울대병원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 대해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태도는 병원장과 주치의까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고인을 거듭 욕보이는 참담한 현실로 인해 상심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며칠 후 파업을 마무리하면서도 노동조합은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의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이처럼 파업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호응해 앞장선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고, 이후 사회운동적 확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회운동의 의제를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노동조합’으로 거듭나는 것과 ‘국민 피해를 막고 국민 안전을 지키는 파업’이라는 여론을 형성하며 투쟁에 승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과정에서 확인된 사회운동노조의 모습을 어떻게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는 파업이 끝난 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부패한 정권과의 정면 승부

지난 10월 4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사가 합의를 통해 점진적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게 정부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파업을 ‛철밥통 지키기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엄정 대처와 흔들림없는 노동개혁 추진”을 주문했던 파업 이전의 입장과는 차이를 보인다. 보수언론조차 파업 장기화로 발생하고 있는 철도 안전사고에 대해 정부의 무리한 대체인력 투입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정부의 파업 대처 방식을 비난할 정도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태도의 변화 없이 불통으로 일관하며,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노동위원회와 사법기관에서도 합법적 절차를 따랐다고 입장을 밝힌 파업을 계속해서 불법으로 규정하며 철도노조에게 오는 20일까지 업무복귀를 하지 않으면 사법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달 월급 0원이 찍힌 급여명세서를 파업 노동자들의 가정에 특급우편으로 보내는 치졸한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며 불법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정부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무너져가는 박근혜 정부

정부의 최종복귀 시한인 지난 10월 20일을 하루 앞두고, 철도 노동자들은 서울 도심에 모였다. 23일이라는 긴 파업 기간을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가올 시간도 하루처럼 버텨 기필코 투쟁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했다.

국민 피해만 초래할 성과퇴출제를 막기 위한 공공운수노조의 파업투쟁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나아가 부패한 박근혜 정권과 민중의 정면승부도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9월 말 시작된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동시파업과 10월을 관통한 공공운수노조의 총파업에 이어, 민주노총과 민중진영은 11월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있다.

박근혜 정권 핵심인사들의 부패비리와 최순실 게이트, 전무후무한 국정 농단으로 국민적인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치솟고 있는 지금, 모순덩어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공공운수노조 파업에 연대하고, 정권 퇴진 목소리에 힘을 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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