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6/08 제19호

청년들도 일하고 싶은 건설현장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김태범 지부장 인터뷰

  • 인터뷰, 정리 이민영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작업 중인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조합원 ©노동과세계 
 
새로운 건물을 하나 만드는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땅을 고르고 흙을 나르며, 콘크리트를 붓는 거푸집을 제작하고 뼈대가 되는 철근을 세운다. 그 과정에는 160여 개의 공정이 배치되며, 그 공정을 수행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다양한 건설노동자를 포괄하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은 네 개 분과로 구성된다. 덤프트럭·굴삭기 등의 장비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건설기계분과’,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인양 작업을 수행하는 타워크레인기사들이 속한 ‘타워크레인분과’, 2만 2900볼트 이상의 고압 전기를 다루는 노동자가 속한 ‘전기분과’, 목공·철근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속한 ‘토목건축분과’가 그것이다.
 

‘노가다’ 아닌 노동자로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김태범 지부장과
8월호 단결툰의 주인공 김미정 부지부장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는 토목건축노동자 조직화를 꾸준히 진행해온 지부로, 주로 조직되어 있는 직종은 형틀목수(콘크리트를 붓기 위한 나무틀을 만드는 일을 한다)다. 최근에는 조합원이 1500여명에 달하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김태범 지부장은 토목건축노동자 조직화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건설노조에 있는 네 개 분과 중 몸 하나만 가지고 일하는 현장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분과가 바로 토목건축이에요. 건설노동자는 노동자이지만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계절적 요인과 현장의 상황에 따라 실업과 취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죠. 실업 상태에 놓여있어도 실업급여는 받을 수도 없었어요. 이런 노동자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해서 1996년부터 고용보험 적용을 받게 됐어요. 노동자로 인정받은 게 불과 20년이에요. 토목건축분과의 투쟁의 역사가 곧 건설노조의 역사죠.”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토목건축 건설노동자는 건설업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한다. 또한 다른 직종에 비해 유출입이 많고, 임시일용직이 대부분이다. 기업 단위의 상용직-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온 한국 노동운동에게 토목건축 노동자 조직화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임시일용직은 보통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해고 1순위가 되고, 다른 곳에서도 일하기 어려워진다. 일터와 회사가 계속 바뀌니 누구를 대상으로 교섭과 투쟁을 해야 할지도 모호하다. 

사실 이 어려움은 건설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위치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조합 가입은 곧 해고다. 따라서 토목건축 노동자를 조직했던 건설노조의 조직화 과정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노조 할 권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일맥과 인맥을 잡아라!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건설노조는 ‘고용 문제’를 장악하는 방법을 택했다.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제가 2010년 지부에 와서 3년 정도 있었는데, 지부가 계속 축소되고 있었어요. 그러던 2012년 어느 날, 지부 사무실에서 길 건너를 쳐다보고 있는데 집을 하나 짓고 있더라고요. 현장을 찾아갔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김태범 지부장은 당시 찾아간 현장에서 사장 면담을 요청하고,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장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 앞에서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꿈쩍을 하지 않자 현장의 불법사항을 체크해서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다. 

“건설현장에는 불법이 많아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 눈에는 관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게 다 보이거든요. 그 자리에서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죠.”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이 안전시설 설치 후 작업하도록 지시를 했지만 이행되지 않자 현장에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작업이 며칠째 밀리고, 현장 앞에서는 노조의 투쟁이 이어지자 결국 건설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시작된 소규모 주택공사현장 고용안정 투쟁은 점차 확산됐다. 처음에는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골목골목 현장을 확인하고, 새로 개설되는 현장이 있으면 조합원 고용을 요청했다고 한다.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은 현장의 심각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실태를 개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3개월 정도를 이렇게 싸우자 점점 현장에는 조합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더 힘들다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 사업이 안산 전역으로 쭉 퍼져나가면서 안산의 모든 소규모 주택 공사 현장에서 조합원이 일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본격적인 ‘조직화 농사’에 돌입하다

경기중서부건설지부의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산 전역에 퍼져있는 조합원들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바꿔갔다.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보통 소규모 주택 현장에서는 일당 12만 원을 받아요. 하지만 노동조합은 13만 원을 요구했죠. 일하는 시간도 차이가 났어요. 우리 조합원들은 눈치도 안 보고 5시면 다 보따리 싸서 가는데, 비조합원은 6시나 되어야 퇴근해요. 이렇게 1년 일하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도 다 보잖아요. 이게 조직이 확대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죠. 한 사람씩 노조 사무실에 찾아오고,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했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현장 조합원의 활동은 비조합원에게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조합원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지부는 더 큰 현장 조직화를 위해 계획을 세웠다. 

“조합원이 쭉쭉 늘면서 1년 뒤에는 사업을 대규모 현장으로 확대하자는 계획을 세웠어요. 신규로 개설되는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아갔어요. 조합원 고용을 요청하고 교섭테이블을 만들었죠. 소규모 주택 현장 고용안정 투쟁이 저수지를 만드는 사업이었다면, 진짜 농사를 짓는 대규모 아파트 현장까지 나아가게 된 거죠. 초기 투쟁을 통해 조금씩 모인 조합원들을 팀 단위로 묶어서 대규모 현장에 투입했어요.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하는 그런 역할을 초기 조합원들이 한 거죠.”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건설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고용안정을 쟁취하고 해당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현장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까지 이끌어내는 과정은, 노동조합에 불리해 보이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해 낸 사례다. 공사 기간이 끝나면 현장을 떠나는 노동자가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일자리라는 매개를 통해 노동자 스스로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것이다. 
 
지난 7월 6일 건설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지부 조합원 교육을 진행하는 김태범 지부장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는 새벽 출근집회

현장 노동자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한 조직화 과정은 일상에서도 유지된다.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김태범 지부장은 1년에 150일 이상 새벽 출근을 한다. 

“현장에 새벽 5시 반까지는 가요. 도착해서 노동가요를 틀어놓죠. 현장 노동자들이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을 먹고 출발할 수가 없어서 일단 현장에 오거든요. 그리고 함바식당(작업장 근처에서 운영하는 간이식당)에서 아침을 먹죠. 그게 보통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요. 6시 반이 되면 마이크 잡고 이야기를 해요. 건설노동자들에게도 헌법에 보장해놓은 노동3권이 있다, 노동3권을 실현하게 되면 현장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해요. 작업 들어가기 전 아침 조회가 6시 40~50분 사이에 진행이 되거든요. 그러면 조회 시간에 대해서 문제제기하죠. 조회 시간도 노동 시간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15~20분씩 현장노동자들의 시간을 뺏어서 하는 거잖아요. 사용자 논리대로 돈으로 환산하면 노동자들은 불필요한 투자를 하고 있는 거죠. 조기 조회를 금지하고, 작업 시간 내에 조회를 포함시키라는 요구를 하죠. 이렇게 아침 선전전을 하고 나서 사무실로 출근해요. 다른 의미 있는 투쟁도 많았지만 이 새벽 집회가 사실은 가장 의미 있는 투쟁이죠. 새벽 집회 하면서 조직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조합원들은 노동조건을 정한 상태에서 일을 하고. 이렇게 몇 년 진행하다보니까 조합원이 상당이 많이 늘었어요.” 
 

청년들도 일하고 싶은 현장으로

건설현장은 모든 공정이 4단계 이상으로 내려가는 하도급 구조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린다. 김태범 지부장은 만들고 싶은 건설현장의 모습을 ‘청년노동자도 일하고 싶은 일터’라고 표현했다. 적정한 임금,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든다면 청년들이 오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노동자가 오고 싶은 일터란 미래와 전망이 보이는 일터란 뜻일 터였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고 일을 하는 기간 동안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면, 또한 은퇴 후의 삶을 보장하는 사회제도가 있다면 건설현장에 청년노동자들이 왜 안 들어오겠어요. 국가는 책무를 다하지 않고, 건설자본은 안정적인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함께 선택적 고용전략을 유지해 온 거죠. 건설노조는 이에 맞서 적정한 임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의 고용을 요청하고, 고용이 된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정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단체협약의 내용이 모두 적용되도록 견인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건설노동자들도 노동 3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조직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건설노조가 현장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전체 건설현장에 하나의 표준을 만들자

건설노조는 이제 각 현장을 넘어 전국 건설 현장의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건설산업의 특성상, 시공 기간이 끝나면 현장이 없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공사가 끝나면 흩어진다.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1년 중 적게는 네다섯 군데, 많게는 열 군데 이상 전국의 현장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건설노조는 단체협약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조가 있다면 전국 어느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노동조합 역시 지역에 상관없이 동일한 요구를 걸고 투쟁하기 위한 것이다. 

“2016년 5월 31일까지 전국의 각 지부의 임금·단체협약 내용이 조금씩 달랐어요. 임금만 해도 부산 목수는 18만 원, 광주 목수는 18만 5000원, 대구는 17만 4000원, 수도권 내 4개의 지부도 각각 내용이 달랐죠. 올해 3월, 지부대표자회의에서 단체협약의 내용을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모든 조항을 똑같이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임금만큼은 동일하게 가자고 했죠. 가장 높은 광주전남은 동결, 나머지 각 지부는 광주전남과 같은 18만 5000원에 맞추는 것으로 합의를 했어요. 단협 내용도 다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어요.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의 내용을 단일화하는 과정인 셈이죠.”

경기중서부건설지부의 단체협약은 주로 해당 건설현장의 전문건설업체를 체결당사자로 한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와 체결한 단협이 그 업체가 시공하고 있는 다른 모든 현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건설업은 수주산업, 프로젝트성 산업이에요. 사업장이 하나 만들어지면 쭉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물이 완성되면 사업장이 소멸하죠. 단협도 사업장의 소멸과 함께 구속력이 같이 소멸해요. 현장별 단협의 특성이죠. 이와 다르게 대구·경북 지역이나 부산·울산·경남 지역, 광주·전남 지역은 지역 단협을 체결해요. 해당 지역에 개설되는 현장에 들어오는 모든 업체, 모든 현장에서는 이 단협의 내용이 적용되죠. 비조합원까지요. 건설노조 토건분과는 5기 집행부 내에 중앙교섭을 통한 전국 단협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에요. 최소한 임금, 노동시간, 유급휴일이라도 전국의 모든 현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단협을 만드는 거죠. 어마어마한 사업이죠(웃음). 쉽진 않을 거예요.”
 
2016년 7월 6일 건설노조 총파업
 

공안탄압을 뚫고 

최근 건설노조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거세다. 경찰은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바로잡겠다며 특별단속까지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건설노조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다. 이는 열악한 현장을 바꾸고, 이제는 건설 현장의 표준 자체를 재정립하려는 건설노조가 자본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건설노조가 성장세일 때마다 공안탄압을 받는 이유다. 

“최근 타워크레인분과에 대한 탄압은 건설노조 전체에 대한 탄압이죠. 노동조합이 조합원 고용을 요구한 것을 공갈·협박이라고, 단체협약에 의해서 받은 임금을 갈취라고 판결한 거잖아요.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노동조합 하지 말란 얘기예요. 200년 전 영국의 단결금지법을 보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이 20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노조 가입이 곧 채용 거부의 근거가 되는 임시일용직 노동시장에서, 조합원의 채용 및 고용 승계 요구는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 반대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은 경제위기 속 늘어나는 임시일용직, 비정규직의 노조 할 권리를 통째로 빼앗겠다는 의미다.  

“여전히 노동조합이 희망이죠. 노동자가 모여서 권리를 쟁취하고, 이 싸움이 전체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게 여전히 노동조합이 가지는 의미인 것 같아요.” 

소위 ‘노가다’에서 당당한 건설노동자로 거듭나는 건설노조 투쟁의 역사는 이 땅의 수많은 불안정한 위치의 노동자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준다. 지난 7월 6일 총파업 성사에 이어, 전국 곳곳에서 건설노조의 힘찬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 할 권리’의 의미와 영향력을 넓히는 데 앞장선 건설노조의 싸움에 더 큰 지지를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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