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화
  • 2016/07 제18호

오바마가 아시아에게, "같이 핵전쟁 할래?"

히로시마와 베트남 방문한 미 대통령의 의도

  • 이준혁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

 

거북이보다 느린 오바마의 핵군축

오바마는 히로시마 연설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지만, 동시에 “당시 판단이 옳았다”며 원폭 투하 결정을 반성하지는 않았다. 오바마 정권 아래 핵 감축은 소홀히 하면서 공격적 핵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이는 당연한 일이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 국가다.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의 숫자는 2015년 기준 전 세계의 93퍼센트에 달하는 1만 5000여 기다(미국 7200기, 러시아 7500기). 1991년부터 미국과 러시아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맺어 핵탄두의 숫자를 조금씩 줄여왔다. 지난 2010년에는 새로운 협정을 통해 2021년까지 양국이 실전 배치한 핵탄두의 수를 1550기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새로운 START협정은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실전 배치 되어있지 않은, 즉 비축분은 제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무기 운반 체계상 비축되어 있는 핵탄두 중 4000기 정도는 즉시 실전 배치가 가능하기에 새로운 START협정을 실질적 핵군축이라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오바마 정부는 한계적 조치나마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학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오바마 취임 이후 미국은 702기의 핵탄두를 해체했는데, 이는 1990년대 이래 역대 최저 수준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정부의 비축량 대비 13퍼센트를 감축했다. 이는 냉전 이후 어떤 정부와 비교해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전임 정부 비축량 대비 H.부시는 41퍼센트, 클린턴은 22퍼센트, W.부시는 50퍼센트를 감축했다.
 

핵전쟁 능력도 의지도 충분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쳤던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왜 이렇게 핵군축에 소극적인 것일까? 미국이 여전히 공격적 핵능력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2013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핵무기 사용 정책에 관한 새로운 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기술적, 지정학적 위험에 강건한 대비책을 유지”한다. 이 대비책이 바로 새로운 START 협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핵무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축되어 있는 핵탄두들’을 의미한다. 

한편, 미국은 실용적이고도 공격적인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지침>은 미국이 잠재적 적국에 대항하는 ‘선제 응징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제 응징 능력은 미 전략사령부의 용어에 따르면 ‘예방적’ 또는 ‘공격적으로 반응적’이다. 이는 잠재적 적국의 핵미사일 발사 시도만 포착되어도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이 선제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은 여전히 ‘핵 3원 체제’라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파괴력을 축소시켜 대중의 비판을 피하면서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다수 개발하고 있다. 이렇듯 오바마의 미국은 ‘승리하는 핵전쟁’을 실제로 수행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빈 그의 연설이 얄팍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이유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희생자 위령탑에 헌화하는 오바마 대통령
 

유사시 핵무장할 수 있게? 일본의 핵정책

한편, 일본에서는 오바마의 방문을 계기로 일본의 핵정책을 돌아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일본은 핵무장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든 무기로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에는 플루토늄이 소량 섞여있다. 재처리 과정을 거쳐 이 플루토늄만을 추출하면 핵폭탄의 재료가 된다. 그런데 2014년 말 기준으로 일본은 무려 48톤에 달하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준(8킬로그램=핵탄두 1기)을 적용하면 일본은 현재 보유한 플루토늄만으로도 6000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핵무장 국가를 제외한 어떠한 나라도 이 정도의 플루토늄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영국 123톤, 프랑스 78톤, 러시아 52톤, 미국 49톤, 독일 3톤, 중국 0.014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플루토늄 확보를 위한 핵연료 재처리 정책을 더욱 확대하고 한다. 일본 정부는 연간 8톤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로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오는 2018년부터 가동시킬 것임을 밝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앞으로 우라늄 자원이 부족해질 때를 대비하여 핵연료를 재처리함으로써 핵연료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속증식로는 비용과 전력효율, 안전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국가들로부터 이미 외면 받았다. 일본에서조차 1994년에 가동을 시작한 몬쥬 고속증식로가 가동 1년도 안되어 사고가 나면서 무기한 가동이 중지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속증식로를 운운하며 플루토늄 생산을 지속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핵정책은 매우 의심스럽다.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단체들은 인류 역사상 유일한 원폭 피해국가인 일본이 ‘핵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국제적 상징성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베 정부의 핵정책은 정확히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자국민들을 방사능의 피해자로 만든 전례가 있다. 게다가 일본의 핵무장 시도는 남한, 북한, 중국의 핵능력 강화를 야기하여 동아시아의 핵무장 도미노를 현실화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급 핵물질을 계속 축적하려는 아베 정부는 히로시마의 피해자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군사 협력 강화하는 미국과 베트남

오바마의 베트남 방문은 어떤 의미일까? 양국 정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전면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베트남 전쟁 종결 41년 만의 관계 정상화 선언이다.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회복은 역사적인 일이지만, 그 방향은 양국 간의 군사 협력 강화였다. 

양국은 1995년 수교를 재개한 뒤 꾸준히 군사 협력을 강화해 왔다. 2008년부터는 정치·안보·국방을 포함한 양국 간 전략대화가 시작되었다. 2010년부터는 미 태평양함대가 주최하는 ‘퍼시픽 파트너십 훈련’에 베트남도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은 1979년부터 캄보디아 문제로 중국과 분쟁을 겪은 바 있다. 2014년에는 중국의 석유채굴선이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석유 시추를 해서 양국 간 충돌이 발생했고, 베트남에서는 대규모의 반중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과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2014년의 사건 이후 베트남은 친미적 행보를 더욱 강화했다.

물론 미국 정치권에는 공화당,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전쟁의 베트남과 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주장이 다수 존재한다. 베트남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이들은 베트남 내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며 미국이 베트남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의 생각은 다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베트남과의 군사 협력이 필수적이다. 오바마 정부의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역시 미국은 베트남 인권 문제는 적절한 수준에서만 제기하고, 베트남의 남중국해 해역 감시 및 연안 방어 능력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 호주, 필리핀, 싱가포르 등 미국의 동맹국과 베트남의 군사 협력도 증진시키고, 베트남 최대의 항구이자 전쟁 당시 미군의 주요 요충지였던 깜라인 항구를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 핵전쟁을 대비하는 미국

미국 핵전략의 잠재적 적국은 중국, 나아가 러시아와 북한이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향후 벌어질지 모르는 미국과 이들의 핵전쟁에 아시아 국가들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이번 오바마의 히로시마 연설과 베트남 방문의 메시지다. 미국 본토가 아닌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핵전쟁’ 말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미국의 핵전쟁 의지를 보여주는 무기다. 사드의 논리는 적국이 발사한 핵미사일을 요격하여 미국 핵능력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사이 핵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한반도 역시 미국의 아시아 핵전쟁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연설을 두고 일본의 평화운동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어 ‘미국은 책임을 회피했고, 미래의 평화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구체적 과제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남한 평화운동은 앞으로 발표될 사드 배치를 어떻게 비판하고 어떻게 맞서 행동할 것인가. 이제 세계의 눈은 베트남과 일본을 지나 남한으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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