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1 제36호

홀대받는 정규직 전환의 주인공, 비정규직

‘노동존중사회’의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 한재영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5월 12일, 대표적인 비정규직 남용 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두 달이 지난 7월 20일 정부는 대통령의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지침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의견 수렴을 거쳐 <가이드라인>이 나왔기에 기대가 적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은 정규직 전환의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직접고용 기간제 비정규직은 각 단위별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를 통해 전환 대상 ·방식 등을 결정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노동자·사용자·전문가위원회’(이하 노사전위원회)에서 이를 결정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심의위원회와 노사전위원회 곳곳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행정관료 뼛속까지 스며든 노동유연화와 관료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행정관료들은 <가이드라인>의 빈 곳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구성·운영 등에서 본래 취지와 다르게 비정규직들이 소외당하거나 위협받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의 공공기관 및 인천국제공항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안하무인 · 무소불위 사용자의 독무대, ‘심의위원회’

심의위원회는 사용자의 독무대가 되었다. 심의위원회의 구조적 문제들 때문이다. 첫째로 심의위원회 구성의 문제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심의위원회 구성을 50퍼센트 내부인사, 50퍼센트 외부인사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사용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로 귀결되고 있다. 인천 교육청 심의위원회의 사례를 보자. 인천 교육청 내부위원 5명을 상대로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5명의 외부위원 중 2인 만이 노조 측 위원이다. 나머지 3인은 교총 1인, 학부모 운영위원 1인, 노사관계 전문가 1인이다. 이들의 추천과정을 물어도 교육청은 묵묵부답이었다. 위원의 전문성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7:3의 구조에서 합리적 감시와 견제는 불가능해졌다. 일방적 구성은 졸속 운영으로 이어졌다. 10월 12일 상견례 후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이 넘어서야 열린 첫 회의에서 4천여 명의 노동자, 수십 개 직종에 대해 이미 전환 배제자를 나눠 숫자와 사유까지 결정해놓은 안건이 제시돼 논란이 있기도 했다. 
 

회의 장면도 공개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심의위원회의 폐쇄성이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심의위원회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인천 교육청의 경우 회의 시 배포하는 자료를 전부 비공개로 하고 있다. 심지어 인천항보안공사는 상시지속성 판단에 필요한 용역계약서 공개를 거부하고, 심의위원 열람 시에도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인천 교육청은 심의위원회 상견례 자리를 촬영한 사진을 삭제하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폐쇄적 운영은 기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위원들을 더욱 주변화하면서 졸속 심의·의결을 부추긴다. 인천교육청은 4천명의 고용을 결정지을 방안에 대한 공청회조차 열지 않았다. 당사자의 요구 반영은 언감생심이다. 
 

계약만료 통보를 받는 비정규직들

정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8월 10일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계약기간 만료 도래자에 대한 조치요령’을 추가로 고지했다. 노동자가 계약연장을 할 경우, 계약기간이 2년을 초과하게 되는 경우에도 전환 대상이 명백하고 경쟁채용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엔 계약기간을 잠정적으로 연장하라는 지시였다.

하지만 인천시 계양구청은 전환 대상이라고 명시한 모든 2년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심의위원회를 거치지도 않고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신규채용공고를 냈다. 허술한 정부의 관리감독으로 고용안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고용불안을 야기한 것이다.
 

<가이드라인> 왜곡으로 비정규직 위협하는 인천공항공사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롤모델인 인천공항은 전국 노사전협의회의 시금석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3800명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공공기관에서 가장 높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성공적인 쇼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인천공항을 선택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835개 정규직 전환 대상 기관들은 모두 인천공항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인천공항 노사전협의회에서 사용자의 입장과 전략은 명확했다. 직접고용 최소화. 그것을 위해  아전인수식으로 <가이드라인>을 해석하고,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첫 번째 왜곡은 ‘청년 선호 일자리 공개 경쟁채용’이다. 직접고용은 반드시 공개경쟁채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노동자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청년 선호 일자리일 경우 공개 경쟁채용을 하라는 지침을 파고든 것이다. 공사는 연봉 3천만 원을 받아도 공사 직접고용은 청년선호일자리라고 고집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청년선호일자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하는 ‘공개경쟁채용’ 주장에 전환 대상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됐다. 

두 번째 왜곡은 직접고용의 원칙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특히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반드시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자회사는 예외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회사는 반대의 해석을 들고 나왔다. 생명안전업무 중 일부만 직접고용 하겠다며 직접고용 전환 “0명”, “10분의 1만 적용”이라는 방안을 노사전협의회에 제시했다. 세 번째는 정년이다. 직접고용을 하게 된다면 정부가 ‘고령자 친화 직종’으로 65세까지 근무를 인정한 청소·경비 노동자의 정년연장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같은 공공기관임에도 자회사에서는 정년연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들을 때면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조직률 50퍼센트
인천공항도 이럴진대…

인천공항에서는 전체 직종에 골고루 포진한 3800명 비정규직이 노조로 단결해 왜곡된 해석과 주장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 조직률이 미미한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사용자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노동자대표단 구성에서부터 현장 비정규직들이 배제되었다. 한국공항공사 노사전협의회는 10명 중 6명이 무노조대표(노조가 없는 곳의 대표)다. 무노조대표들은 대부분 용역업체의 소장, 즉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보다 공사의 입장을 지지할 우려가 큰 직책의 사람들이다. 전문가위원 선출 역시 인천공항과 다르게 노동자대표 및 노조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현장 의견 수렴이 부족했고, 실제로도 한국공항공사 의견을 노측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시법인 설립과 관련해 현장 의견을 확인하지 않고 단 한 번의 회의로 합의를 이뤄 문제가 커진 적도 있다. 그러자 지역별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이었고 현장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공항공사에서는 생명안전업무 중 일부만 직접고용·자회사는 입사 시기에 따른 제한경쟁·공개경쟁 채용 분리적용 등 인천공항에서 노조가 막아낸 고용불안 조장 조치들이 합의되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사용자 독주 막을 수 있는 건
노동조합 뿐

고용안정이라는 선의로 시작한 정규직 전환 정책이 고용불안과 졸속행정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장면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충분한 노사협의’를 지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충분한 사용자 주도’만 관철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개별 기관들은 ‘정규직 제로’로 맞서는 형국이다.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답의 실마리는 인천공항에서 찾을 수 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세력화, 즉 노동조합으로의 단결이 그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곧 본격적으로 전국에서 심의위원회와 노사전협의회가 열린다. 민주노총 가입서를 들고 전환대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합의에 대해

12월 26일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합의를 발표했다. 소방, 승객·직원검색 등 2940명은 인천공항공사 소속으로 직접고용되고, 공항운영분야 및 시설·시스템 관리 분야 약 7,000명은 별도 독립법인 소속으로 전환된다. 이번 합의는 무엇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이하 지부) 10년의 투쟁이 촛불탄핵 정세와 만나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사업으로 선정돼 정규직 전환 관련 정책역량을 쌓았고, 2008년 700명에서 현재 3800명으로 조직을 강화해 준비된 상태로 정규직 전환을 맞이했다. 그 결과 850명 직접고용 경쟁채용 7~10개 자회사로 시작했던 공사의 안이 3000명 전환채용-2개 별도독립법인 합의안으로 바뀌었다. 별도회사가 전환 이후에도 모회사 보다 고용·근로조건 등 처우가 낮아지지 않도록 합의 문구를 쟁취했다. 이러한 평등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회사-자회사 노사가 공동으로 근로조건을 논의하는 ‘(가칭) 인천공항 노사공동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한계와 과제 역시 공존한다. 현실적 제약으로 1만 명 전체가 직접고용을 만들지 못 한 한계가 가장 크다. 위의 성과들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평등한 공항을 만들어 보완해야 한다. 5천 명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지부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자연스레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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