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7/07 제30호

“송도의 선배 노조가 되고싶어요”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 배태민 지회장 인터뷰

  • 배일훈

청년들의 노동조합을 찾아서

청년 일자리 정책은 매번 그런 식이었다. 정치인들은 ‘취업절벽’으로 고통 받는 청년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취업지원금 따위를 뿌려댔다. 언론은 이것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며 묵직한 펜을 휘갈겼다. 그렇게 취업한 청년들, 그러니까 ‘일하는 청년’들은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닐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물어보고 싶었다. 취업을 하고나면 또 어떤 절벽이 놓여있는지, 인생의 다음 단계를 설계할 땐 무엇이 필요한지, 청년들의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야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래야만 부모 일자리 빼앗아 자녀 일자리 만들어준다는, 소위 ‘세대갈등’의 비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올 상반기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은 남성 28세, 여성 27세라고 한다. 평균 결혼연령은 각각 33세와 30세 정도니까, 5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가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30대 초반의 내 또래 노동자를 만나고 싶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이하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 또는 노조 병용) 조합원 평균연령은 33살이다. 드디어 찾았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 배태민 지회장
 

청년 배태민, 만도헬라에 말뚝 박기로 결심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 배태민 지회장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와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졸업 후 큰아버지 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프리랜서로 컴퓨터 하드웨어도 꽤 오래 다뤘다고 한다. 병원 보안업무 경력과 유통업 경력도 가지고 있다. 서른 살이 넘어 인생 최종 목적지를 찾아 송도신도시에 위치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이하 만도헬라) 공장 문을 두드렸다. 2011년의 일이었다.

“여기가 제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까. 제가 입사했을 때 31살이었고 지금 37살인데, 이제 노조 만들고 꾸리다보면 마흔이 넘어갈 테니. 어차피 여기 왔을 때 마음먹었어요. 여기가 마지막이다!”

배태민 지회장은 만도헬라에서 일하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이런 삶을 살아도 될까?’ 이 의문은 노조를 만들면서부터 ‘우리 모두 그렇구나’라는 공감으로 변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돈의 노예였던가? 이게 나만 느끼는 잘못된 생각인가? 아니면 정상적인건가? 스스로한테 질문해봤어요. 되돌아보니 여기 다니면서 내 생활이랄 게 없었어요. 365일 중에 350일을 출근했거든요. 휴일도 없이 1년에 10~15일만 빼고 다 일해야 했어요. 여자 친구 만날 시간도 없어 결국 헤어지고 내가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되짚어봤죠. 대화가 필요했어요. 서로 얼마나 공감대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노조를 고민하던 시점이라 동료들한테 물어봤어요. 넌 어떠냐고. 그랬더니 ‘우리 모두 그래’ 그러더라구요.”
 

그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예요

모두를 그렇게 만든 만도헬라는 어떤 곳이었을까?

“우리 작년에 왜 노조 만들자고 했지?”
(지나가던 김태섭 사무장이 답한다) “X같아서 아냐?”
(야 교선부장 와봐) “우리 왜 노조 만들자고 했지?”
(이경민 교육선전부장이 멀리서 뛰어온다) “X같아서지!”

그랬다. 만도헬라에서 그들이 겪은 5~7년을 압축한 단어는 이처럼 적나라했다. ‘X같다’. 단어만큼이나 그들은 지난 경험들을 모욕적이라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개돼지 취급당했어요.” 그들이 비인격적 대우를 받은 이유는 단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워, 혹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쉽게 자를 수 있는 존재. 그만큼 가벼운 존재였기에 정규직 직원들은 배태민 지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들에게 막무가내로 업무지시를 내리고, 폭언을 일삼고, 그들을 무시했다.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응어리로 남았어요. 아침 8시 반부터 근무가 시작되고, 5분 전에 조회를 해요. 그런데 8시 27분에 왔다고, 늦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잘린 사람도 있어요. 슬리퍼를 저기 던지고 주워오라 하거나,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치기도 했고요. 설비지원업체에서 나온 직원들도 우리를 처음 봤을 땐 안 그랬어요. 나중에 우리가 하청업체 소속인 걸 알고는 말도 안 걸더라구요. 그런 게 수년간 쌓였던 거죠. 한라그룹에 ‘정도경영’이라는 온라인 내부부조리신고센터가 있어요. 거기 정규직 직원이 이런 걸 올리면 신고대상이 바로 잘려요. 근데 우리 비정규직이 올리잖아요? 그러면 신고자가 잘려요. 그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예요.”
 

너희는 돈으로 휘둘러줄게

“우리는 돈벌레 취급당했어요.” 그들은 초장시간 과로노동에 시달렸다. 격주 단위로 12시간씩 맞교대로 쉴 새 없이 일했다. 일주일에 80~90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1년에 고작 10~15일 쉬는 게 다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힘들어서 나가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엔 ‘특근수당 누진제’라는 게 있었어요. 첫째 주말 특근수당은 1.5배(특근수당은 기본 시급의 150퍼센트를 받도록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둘째 주말 특근 때는 2배로 쳐주는 거예요. 한마디로 ‘너희는 돈으로 움직이는 애들이니까 돈으로 휘둘러줄게’라는 거죠. 그 자체가 우리를 인간으로 안 본다는 거거든요.”

곁에 있던 한샘 여성부장은 다른 시각에서 씁쓸함을 드러냈다. “신입이 들어왔는데 쉬는 시간에 담배 피우러 가더니 안 들어와요. 토낀 거죠. 우리 팀에 새로 들어와도 일주일 일 가르쳐놓으면 나가고, 또 들어와서 열흘 일 가르쳐놓으면 나가고 그랬어요. 그러면 가르친 입장에서는 내가 뭐하는가 싶고 내가 우리 부서 근태관리도 하니까, 들어오면 이름 새로 썼다가 퇴사하면 지우고, 또 새로 썼다가 다시 지우고. 그래서 누가 들고 나는지도 감이 안 잡혀요.”
 

LTE급 속도로 노동조합을 만들다

작년 10월, 만도헬라 공장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2017년도 시급인상 소식이 들려올 즈음이었다. 3년간 동결이던 시급이 이번에도 고작 100원 오른단다. 이게 말이 되냐는 불만이 퍼졌다. 내부에 불화도 있었다. 품질 부서 비정규직이 근무시간에 잠을 잔다는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의 이간질이었다. 만도헬라는 비정규직들을 한 명씩 다 불러서 추궁했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하겠다는 공고도 붙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으냐는 불만이 드디어 폭발했다.

“그래서 품질 부서에서 노무사를 찾아다녔어요. 회사가 불법을 저지르는 거라 생각되는 자료들 다 모아서 갔는데, 웬걸? 노무사들이 모조리 회사 편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금속노조를 찾아갔어요. 법적 문제도 문제지만, 우리를 지킬 울타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동료들 하나하나 만나 물어보기 시작한 거죠. 노조 만드는 거 어떠냐고.”

노조 설립의 뜻을 모으던 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다보니 12월엔 노조 만든다는 소문이 밖으로 새나갔다. 부랴부랴 노무사가 초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노조는 회유의 손길을 단칼에 끊었다.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을 회유하려한다는 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노무사는 유명한 ‘노조파괴’ 전문가였다.

“회사에서는 너희가 바라는 게 뭐냐 물어보고, 노무사는 우리한테 개선지점을 물어봤어요. 노사협의회(‘노사협의회’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근로자의 복지증진과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구성하는 협의기구로서, 상시근로자 3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안 만든 회사는 처음이다, 얼른 만들자, 재촉했어요. 우리는 딱 잘라 거부했어요. ‘6년 동안 안 해놓고서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자기네 딴에는 발 빠른 대처랍시고 한 거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죠. 우리끼리 그랬어요. 지금 회사는 우리가 하려는 걸 막으려는 거니까 회유당하지 말자, 지금 우리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건 노조밖에 없다. 이렇게 결론 내린 거죠.”

불법파견의 증거를 모으던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원청인 만도헬라가 이메일, SNS, 전화 또는 구두로 직접 구체적 업무지시를 한 증거, 라인별로 연간·월간·일간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생산량과 가동시간·투입인원·근무시간을 결정한 증거, 인원선발·작업배치와 변경, 휴게시간, 잔업특근, 근태와 징계, 포상에까지 관여한 증거 등 모을 것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두 달여 후인 2017년 2월 12일,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가 출범했다. 노조 만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지 네 달 만에 만들어낸 노동조합이었다.
 
 

금속노조 선배들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서울커뮤니케이션 소속 조합원 파업찬성률 98.87퍼센트(인터뷰 이후 진행된 쉘코아 소속 조합원의 투표에서 파업 찬성률은 99.11퍼센트). 정말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더라고요. 저 말고도 주변 많은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어요. ‘대체 여긴 어떤 데 길래?’라는 말도 많이 들었구요.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질문하는 나를 바라보는 지회장의 눈빛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눈빛을 보낸다. 할 말이 없어보였다. 별 수 없이 질문을 돌렸다. “지금껏 얘기를 들어보면, 비정규직인데도 만도헬라의 정직원 이상으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요. 비결 좀 알려주세요.” 그제야 나는 만도헬라 공장의 ‘진실’과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만도헬라도 우리가 어떻게 이런저런 회사 정보들을 다 알까 궁금해 했어요. 뭐냐면, 저 같은 경우엔 예전에 원청 직원이 ‘태민아, 이거 내가 할 일인데. 네가 배워.’ 그러면서 모든 걸 알려줬고, 저는 그걸 또 모두 숙지했어요. 제가 일을 너무 열심히 했던 걸까요? 만도헬라 기술운영직으로 기사부터 주임, 계장까지 다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 문제 생기면 이 사람들이 진단하고 고칠 수 있을까요? 못 해요. 왜냐면 자기네 일인데도 우리한테 다 시켰거든요. 비정규직인 우리가 정규직보다 오히려 기술력이 뛰어나게 된 비결이죠.”

이는 노조가 취약한 보안을 뚫고 증거를 수집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들이 회사를 전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와 생산관리 프로그램을 최초 운영할 때만 하더라도 만도헬라 정규직 직원들이 그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이후엔 그들의 업무조차 비정규직에게 다 맡겨졌다. 한샘 여성부장이 또 한 마디 거든다. “자기 아이디랑 비번 우리한테 가르쳐주고 일 시켰거든요. 나중에는 아이디 기억이 안 난다고 우리한테 물어봐요.”

또 다른 강점은 LTE 급의 활동에 있다. 핸드폰을 달고 사는 청년 조합원들은 온라인 활동에 강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에서 온라인 실천활동의 비중이 커진 상황이다. 정보통신 기기를 능숙하게 잘 다루고, 노동조합의 지침도 ‘파바박’ 실천하는 그들의 속도감 있는 활동은 파업과 노조 운영에도 장점이 된다.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다른 노조들이랑 같이 회의하고 지침 받아와서 조합원들이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노조에서는 ‘자 여러분, 청와대 국민신문고 홈페이지 들어가서 글 남깁시다’ 그러면 딴 데는 몇 시간씩 걸리는데, 우리들은 1분 만에 파바박, 글을 남겨요. 일자리 신문고 생겼다고 먼저 알고 노조에 제안하고, 그러면 또 주위 사람들이 파바박 글 올리고. 그런 식이에요. 우리가 더 젊어서 그런가?”
 

배태민의 꿈, 모든 청년의 꿈

낯간지러운 단어를 꺼내본다. ‘꿈’. 이 시대 모든 청년들의 꿈이라는 취업 관문을 통과한 그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배태민 지회장으로부터 남다른 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꿈 하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이렇게 노동3권을 보장받는 일터를 만들고 싶어요. 노조하기 전엔 몰랐어요. 아마 송도 신도시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봐도 절반 이상 모를 걸요? 그런데 그 권리라는 게 전부 우리와 연관되어 있더라고요.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인 단결권, 회사와 교섭하면서 노사 간에 합의점을 찾아 노동자가 좀 더 개선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권리인 단체교섭권, 회사가 압박하거나 교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 단체로 행동함으로써 단결력을 앞세울 수 있는 단체행동권. 이게 있어야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대등한 입장에 서있을 수 있어요.”

꿈 둘. “저희끼리 ‘나중에 금속노조 인천지부가 아니라 송도신도시지부 따로 만들자!’ 이런 우스갯소리도 했어요. 여기 송도신도시에 여러 사업장이 있는데, 주변에 새로 생긴 공장도 많고 깨끗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이번 투쟁 이기고 단체교섭 잘 되고 나면, 저희 노조는 송도신도시 안에 있는 사업장 돌아다닐 거예요. 저희 연령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서요. 만도헬라의 형제회사인 만도브로제가 있는데 거기엔 실제로 우리 조합원들이랑 친분 있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 잘 될 거예요. 그러면 저희가 송도신도시 선배노조가 되는 거죠.”

그는 어느덧 ‘노조 할 권리’ 전도사를 꿈꾸게 됐다. 개돼지, 돈벌레 취급받던 일터에서 사람 대접 받는 꿈을 꾸었기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선배 된 도리를 다하려는 듯, 아니 노조가 너무 좋아서 절로 꾸는 꿈에 가깝다고 느꼈다. 대체 노동조합이 뭐가 그리 좋을까? 임금인상? 정규직화? 그의 답변은 이 시대 모든 청년,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문제와 연결된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란 거.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엔 혼자였는데, 지금은 옆에 고통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제가 노조하기 전과 후의 차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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