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7/06 제29호

성주 투표결과에 실망한 당신에게

한국 사회를 바꿀 영화 <파란나비효과>

  • 김주현
대선 시기 '뜨거운 감자'였던 사드 배치 이슈가 조금은 시들해졌다.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성주지역의 투표 결과일 것이다. 사드 배치 해당 지역인 성주군과 김천시에서 사드 배치에 찬성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꽤 높았던 것이다. 대선 이후로 사드 배치 문제를 다룬 기사에는 "당해도 싸다"는 식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사드 반대 투쟁의 중심지였던 성주는 이제 사람들의 외면 혹은 괄시를 받게 생겼다.
 

‘당해도 싸다’는 당신에게 

성주의 사드 반대투쟁을 다룬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는 이러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선 이전에 개봉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오는 6월 22일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어쩌면 지금의 성주 소성리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외롭고 고된 투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적은 상영관을 확보하고, 공동체 상영을 통해 조금씩 관객을 만나가야 하는 투쟁.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과정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다. 이 영화가 말을 걸고 있는, 누구인지 모를 그 관객을 호명하는 것.

영화가 완성된 후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가 말을 걸고 있는 혹은 내가 이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은 관객을 지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번 대선 결과를 이유로 사드 배치 문제, 그리고 성주의 투쟁을 외면하겠다고 말하는 일부 촛불 시민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굳이 왜? 우선 영화를 면밀히 살펴보자.

영화는 사드 반대 투쟁에 참여하는 성주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성주가 고향인 사람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자영업자도 있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사드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정치’라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2년 대선에서 딸에게 "박근혜 안 찍을 거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호통치고, 선거 때만 되면 당연히 1번 보수정당을 찍은 사람들.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사드 반대 투쟁의 최선봉에 서게 되었을까?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걸 보며 “골수분자”라고 경멸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드 반대 집회에서 팔뚝질을 하며 민중가요를 부르며 눈물 흘리게 되었을까? 영화는 2016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성주 사드 반대 투쟁을 통해 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성주 사람들에 대한 민족지적 탐구 

사드 배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쟁점을 갖고 있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에 효용성이 있는지. 사드 안테나의 전파가 인체에 유해한지, 사드는 과연 한반도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방어무기인지, 아니면 미국의 동아시아·중국에 대한 견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전략인지 등.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쟁점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사드 배치와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쟁점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사드 배치 반대의 근거를 간결하게 다루는 것은 성주 사람들의 입장 변화를 보다 면밀히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파란나비효과>는 성주 사람들에 대한 민족지적(ethnographic) 탐구에 가깝다. 영화의 주된 질문은 ‘사드 배치는 무엇이 문제인가?’가 아니라, ‘사드 배치라는 사건은 성주 지역과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나?’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시민이라는 보편적 서사를 성주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결합시키면서 흥미로운 쟁점들을 만들어낸다. 여성이 중심이 된 투쟁, 보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성주의 정치지형, 사드 배치 3부지를 둘러싼 운동 세력의 분화 등이 그것이다. 영화는 주민들의 변화 과정, 그리고 성주 지역의 독특한 정치지형을 둘러싼 쟁점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으며 한국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찾으려 시도한다.
 
 
한편 이 과정은 일종의 성장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쟁의 시작은 단순했다. 사드의 전자파가 성주 주민, 특히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 이들은 사드 배치 문제가 단순히 전자파의 문제, 또한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성주 지역만의 문제였다면 이사를 가면 그만이겠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대한민국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들은 ‘성주에 안 되는 건 한반도 어디에도 안 된다’는 구호를 내걸고 평화운동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성주 주민들은 그 전에는 몰랐거나 외면했던 한국의 많은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5.18 광주항쟁을 북한 괴뢰군의 소행으로 배웠던 한 주민은 성주 투쟁의 실상을 외면하는 현실을 보면서 ‘5.18 광주가 이런 것이었구나’ 깨닫고, 그때부터 한국 사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성주 주민들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된다. 성주 주민들이 팽목항에 가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중반부 이후부터 사드 3부지 이전 안을 둘러싸고 성주 주민 운동이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 단합되고 강해진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주민들을 조직하고, 낡은 농성장 텐트를 고치고, 자신의 생활과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다. 한여름 땡볕 아래, 성주군청 앞 일인시위를 하며 시작된 투쟁이 농성장에 난로를 피워야 하는 계절로 이어진다. 
 

성주를 넘어, 파란나비효과 

나는 앞서 이 영화를 대선 투표 결과를 두고 성주 주민들을 욕하는 촛불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를 영화에 등장하는 한 에피소드를 통해 말해볼까 한다. 영화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이수미씨는 SNS를 통해서 성주 투쟁을 알리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댓글을 단다. “너희가 이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1번만 찍었기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거다. 된통 당해봐라. 그동안 당신들이 5.18, 세월호, 제주 강정마을 등을 외면했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고.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라고”.

놀라운 것은 이 댓글에 대한 이수미 씨의 반응이다. 이 댓글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한 방 맞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며,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죄송하다고, 이제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결과만으로 성주군민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사드 반대 투쟁을 성주만의 것으로 국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파란나비효과>가 말하듯 작은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시야와 단단한 의지를 가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다. ●
 
 
필자 소개

김주현 |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마을공동체미디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 미디어운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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