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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7/05 제28호

가족이 덜 필요한 사회와 새로운 가족

  • 박상은
IMF 이후 ‘가족의 위기’ 담론은 끊임없이 회자되어 왔다. 이는 곧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던 ‘정상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다. ‘가족의 위기’에 직면하여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대되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가족의 위기를 봉합하고, 핵가족 범주에서 벗어난 가족들을 다시 정상가족의 틀로 흡수하려는 정책과 이데올로기는 훨씬 강하다. 

가족의 위기라는 현상을 꼭 비정상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한국 사회가 4인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가족의 위기는 가족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물론 현재 가족의 위기는 자신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출산에는 적대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노동인력을 수급 받고 싶은 자본과,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국가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가족형태가 이들 자본과 국가의 작용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반작용 역시 가족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하는가? 
 
 

가족이 덜 필요한 사회

일단 가족이 담당해 온 역할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가족은 사회적 재생산과 정상가족 규범의 재생산이라는 경제적·물질적, 이데올로기적인 역할 모두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적 재생산’은 노동자가 계속 일하기 위해(생산과정에 투입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한 뒤에는 누구나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하고, 더러워진 옷을 빨아야 한다. 내 다음 세대를 기르는 육아 역시 재생산 과정에 포함된다. 

앞선 글들(빈곤의 늪에 빠진 노년, 결혼과 비혼, 기로에 선 30대, ‘할머니’없는 한국, 유지될 수 있을까?, 외환위기 이후 20년, 여성·가족 정책 변천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했듯이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생산 노동을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에 완전히 맡겨둔 상황이 문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복지 확충을 비롯해 평가 절하된 여성노동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장시간·저임금 노동 근절 등의 사회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가족은 여러 사회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도 담당한다. 이성애가 정상이며,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과 역시 사랑으로 자신을 내조하는 아내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우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 내에서 재생산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가족 규범은 이미 상당히 해체되었다.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러한 논리를 고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정서적인 부분은 어디에서 담당할 것인가. 친밀한 관계를 통한 정서적 지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여기에서 질문이 필요하다. 그것이 꼭 가족 내로 한정될 필요가 있을까? 
 

새로운 가족  

한국에서 가족은 경제적인 의미에서도 거의 유일한 사회 안전망일 뿐 아니라, 정서적인 의미에서도 독보적인 사회 안전망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1인 가구·비혼에 대한 여러 연구가 공통적으로 이들 가구에서 강한 개인주의적 서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개인주의의 확산이 1인 가구·비혼 증가의 지배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족원이나 파트너가 없는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은 세대를 막론하고 심각하다.

이 점에서 새로운 가족을 꿈꾼다는 것은 이미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선다. 1인 가구로 혼자 늙더라도 외롭지 않으려면 어떤 공동체가 필요할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무로 강요되는 가족애와는 다른 방식의 애정 어린 관계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랑·친밀한 관계·정서적 지지를 가족 내에만 가두지 않는 새로운 사회적 윤리의 구성 역시 새로운 가족을 꿈꿀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가족에 한정되지 않는 대안적인 친밀성과 공동체 구성 실험은 아직 일천하다. 언론 등에 소개되는 몇몇 실험들은 사회의 근본 구조의 변화라는 문제의식은 결여한 채 진행되고 있어 한계도 크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실험을 하나씩 시작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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