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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 제27호

요란한 복지공약, 빈익빈부익부 바꿀 수 있을까

  • 김태훈
©더데일리비스트
 
문재인은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작더라도 함께 나누는 세상”을 말하며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낀다면 고통을 겪더라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좋은 말이지만 모호하다. 공평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얼마만큼 나누는 것이 공평한 것이고, 누가 그 기준을 정하나? 문재인은 자신이 하면 다 될 것처럼 말하지만 새로운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대신 다른 후보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한다. 

물론 공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선 후보들은 최악의 경제상황과 거세진 대중적 불만을 의식해 “함께 나누기” 위한 전향적인 복지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제도 조금 바꾼다고 빈익빈부익부 체제가 개선될 리 없다. 소득불평등은 총체적인 사회경제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그 중 일부이고, 잘해봐야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게 아니라 완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을 도입하면서 ‘권리로서 복지’ 개념을 부각시켰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기초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사회서비스 바우처 등 사회서비스 복지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일관되게 상승해왔다. 복지가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복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경제 구조를 바꿀 틈새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제시된 복지공약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대 공약과 기본소득 공약을 중심으로 평가해보자.
 

공공 사회서비스의 핵심은 무엇?

문재인·이재명·안철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공약에 내걸었다. 

문재인은 구체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공단’을 설립하고, 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상까지 밝혔다. 노무현 정부 때 사회서비스에 시장적 방식이 도입된 이후 서비스의 질 악화와 노동자들의 저임금·고용불안이 계속해서 문제시 되어왔다. 이에 대해 이명박·박근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제야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만하다. 이미 민간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이 공공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력까지 공적으로 관리하고, 나아가 사회복지시설 자체를 공적 소유로 전환해 전달체계를 개편해야 사회서비스의 질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실질적인 민주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돈과 권력에 굴복하고 왜곡되어왔음을 전 국민이 알고 있다. 사회서비스 공급의 주체를 국가·지자체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구조와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서비스 노동자와 이용자의 연대가 관건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일터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사회서비스 이용자들이 당당하게 권리의 주체가 되어 제도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의료에 대해서도 구체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부문은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초민족적 제약·의료기기 자본과 민간병원이 공급체계를 주도하면서 고비용의 체제가 굳어져 있다. 여기에 산업화·영리화 흐름이 계속돼왔다. 당장 의료민영화를 멈추고, 소유구조를 공공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껍데기뿐인 기본소득

복지공약 최대 이슈는 기본소득이다. 유럽의 영향이 컸다. 스위스 국민투표, 핀란드 시범운영에 이어, 프랑스는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운 브누아 아몽이 사회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한국 대선후보들도 단계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거나 기본소득의 취지를 살린 복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론도 제도도 다양해 개념을 정의하는 것부터 어렵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정치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으로 정의한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인성, 정기성, 현금지급 등이 그 핵심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제안자인 파레이스는 이것이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실질적으로는 아동수당, 청년수당과 같은 사회수당 정책 도입이 대선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수당은 모든 시민이 아니라 특정 연령대의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에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있고, 성남시의 청년배당도 일종의 사회수당으로 볼 수 있다. 사회보험이 단계적으로 확대된 것처럼 사회수당도 향후에 모든 국민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이를 ‘부분적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그러나 동일한 원리를 확대 적용한 사회보험과 달리 사회수당과 기본소득은 원리 자체가 다르다. 사회수당은 청년 등 노동시장 밖에 있는 특정 인구집단의 고유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소득보장제도다. 다른 대상에 확대 적용하려면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 아동수당 역시 다른 보육복지와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과 육아 의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이재명 후보 유튜브
 

기본소득은 만능열쇠?

정말 토론해보아야 할 것은 온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운동, 특히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사회로의 이행 전략으로 기본소득을 사고하는 입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현재의 복지국가가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이들의 비판은 진지하게 사고해야 한다. 한국도 최근 공적연금, 건강보험, 무상보육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청·장년의 노동빈곤이나 여성, 장애, 성소수자 등 노동시장에서 차별받고 배제된 자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것이 다양한 주체들의 요구와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라고 주장하기엔 근거가 취약하다. 실제 사회수당도 이러한 취지에서 제안되었고, 기본소득의 요구를 오히려 포섭한 형국이다. 또한 기본소득에서도 교육·보육·의료 등 사회서비스는 현금이 아니라 현물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 경우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의 지출 비중이 각각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모호해진다. 사회서비스의 민영화나 시장화를 정당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본소득이 노동여부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소득을 보장해주므로, ‘탈노동화’ 전략이라는 주장도 쟁점이다. 높은 실업급여와 적극적 재취업 지원, 공공적 사회서비스를 통해 임금노동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탈상품화’ 전략보다 우월한지 판단이 안 된다.

‘탈노동화’는 노동권의 관점에서도 쟁점이 된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소위 3D업종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까? 마르크스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라 불렀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그만큼 풍부한 잉여생산물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잉여생산물은 노동하지 않으면 생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3D업종에서 일을 해야 생산이 되고, 소득(임금과 이윤)이 발생하고, 그것을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와 단결을 통해 현실의 임금격차, 교육과 훈련의 격차를 줄이고, 힘든 업무와 위험한 업무 등에 대한 적절한 할당 및 사회적 보상 방안을 마련해 가야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해방이 가능하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현대 정치이념이 공유하는 자기해방 사상에도 부합한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 같은 논의가 동반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4차 산업’의 개념부터 쟁점이며,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저임금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것인지,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그 보완물이 될 것인지도 학계에서 연구하는 중이다. 기술변화와 그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때에 신중하게 사회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낫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 외에는 답이 없다”는 식의 논의는 지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도시빈민,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국민기초법·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기본소득 도입만 앙상하게 주장한다면 연대의 지점을 찾기 어렵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려면 기본소득 운동이라고 표방하기보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생존권 투쟁과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공동의 실천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수저의 나라에서 복지란?

촛불이 보여준 노동자·시민의 힘은 더욱 진전된 복지공약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복지는 결국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 개혁 과정에서 공약이 왜곡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반장 선거에 당선되면 햄버거를 돌리듯 복지를 제공해 줄 수는 없다.

물론 대다수 후보들이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다.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걷고, 어떻게 복지를 제공할지 정하자는 것인데, 개인을 단위로 한 논의는 갈등을 무한히 분열시킨다. 부자 증세를 하자고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 차상위 계층을 핑계로 빈곤층 복지를 깎기도 한다. 결국 전문가와 관료가 제도를 잘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탈정치화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복지는 계급적 쟁점이다. 자본을 세습 받아 일하지 않아도 부유한 자본가계급과 일하지 않으면 죽는, 일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노동자계급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이다. 그 대립을 명확히 드러내야 복지 확대를 위한 노동자 내의 단결을 모색할 수 있다.

부정입학과 특혜를 받은 정유라는 “니 부모를 탓해. 돈도 실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반지하 방의 세 모녀는 고된 삶을 포기하는 순간에도 마지막 월세를 내며 죄송하다 말하는 나라. 금수저의 나라를 해체하는 길은 결국 이러한 착취받고 배제된 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향한 투쟁에서 출발해야 한다. 

복지 요구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가진 주체를 형성하는 것과 동반돼야 한다. 권리로서 복지를 요구하면서, 취업자와 실업자의 단결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계급 내의 분열을 막고, 권력자들의 분할 전략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

 
 
덧붙이는 말

김태훈 | 여전히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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