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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 제26호

청년들의 꿈 파먹는 게임산업, 이제는 바꾸자

  •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 이준혁
만화작가 마시멜의 다음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 108화 중
 
2016년 11월 21일, 스물아홉의 게임개발자가 목숨을 잃었다. 90년대 초, 일류대학을 나와 게임업계에 뛰어든 초창기 게임개발자 세대의 벤처 신화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퍼블리셔’라 불리는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체 종사자의 90퍼센트가 일하는 중소 개발사들은 게임을 출시하는 것조차 어렵다.[1]

그러다보니 퍼블리셔의 무리한 요구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출시일을 갑자기 앞당기거나, 출시 직전에 새로운 기능을 넣을 것을 요구하면, 개발자들은 얄짤없이 밤새 일해야 한다. 사나흘씩 집에 못 가면서 말이다. 

죽은 게임개발자가 근무하던 넷마블네오도 소규모 개발사들을 합병해 만든, 넷마블의 자회사였다. 모회사의 요구에 야근을 반복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꼬박 며칠씩이나 야근하던 그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일류 개발자가 되어 소위 ‘대박 게임’ 하나 만들고 싶다는 꿈이었을까, 혹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을까. “우리 땐 다 그랬다”며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는 업계의 관행이 그의 퇴근을 막은 것만은 확실하다. 초장시간노동은 처음에는 저녁 시간을 빼앗아 갔고, 다음에는 어린 시절의 꿈을 앗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은? 스물아홉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었다.


젊은 노동자들의 잇단 돌연사, 누구의 책임인가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넷마블에서 일하던 38세의 개발자가 어느 날 ‘급성심정지’로 회사 앞 사우나에서 쓰려졌다. 아무도 모를 뻔 한 이 죽음은 누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평소 건강했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한 회사에서만 두 명의 돌연사. 그것도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사람들은 분노했다. 500명이 넘는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의 설문조사는 게임산업 노동실태를 그대로 보여줬고, 국회에서는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들도 집중 기사를 냈다.

노동부는 3월부터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하겠다 밝히고 있다. 게임업계 최초의 일이다. 죽음이 과로사 때문이 아니라고 발뺌하던 넷마블은 뒤늦게 자구책을 냈다. 야근과 주말, 휴일, 재택근무를 금지하고, 연 1회 종합건강검진을 시행하고, 불가피할 경우 탄력근무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절규와 사회적 공분이 만들어낸 작은 성과다.

의혹의 시선은 여전하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업무량을 그대로 둔 채 퇴근만 시킨다고 해결이 될 것인가?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 중 49퍼센트가 회사 밖에서도 일을 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답변을 고려하면, 재택근무만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3월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넷마블이 최근의 비판을 무마하고 특별근로감독이라는 소나기만 피하려 한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게임개발자들이 나서야 한다

게임개발자들이 죽지 않고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사망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2] 업계 노동실태에 대한 연구·조사도 절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이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 게임업계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당장 넷마블이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주식 상장 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예전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 노동자들의 죽음 이후 비난이 거세지자, 야근시키는 것을 감추려고 회사 창문에 블라인드를 친 채 일 시킨 회사다. 연장근로수당도 받지 못했다. 믿을 수 있을까? 게임개발자들 스스로 ‘이렇게는 일 못하겠다’ 고 요구해야 제대로 된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외부의 연대도 필요하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을 비롯한 노조,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무료노동·부당해고 신고센터’는 게임 개발자들의 출퇴근 기록을 모으고 있다.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받지 못한 야근수당, 초과근로수당을 받아낼 수 있도록 노동부에  진정을 넣기 위해서다.

물론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직접 뭔가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을 부르는 노동조건이야말로 청년들이 게임업계를 떠나게 만드는 주범이다.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장기적인 커리어를 그리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2017년 현재 게임업계엔 약 3만 5천 명의 노동자가 있다. 그중 다수가 20~30대다. 오락을 위한 생산을 위해 무수한 착취가 이뤄지고 있고, 죽음이 빈번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즐거운 게임 뒤에는 슬픈 노동이 있었다. ●
 
 

Footnotes

  1. ^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넷마블 노동자들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상용직 노동자의 178.4시간을 훌쩍 넘은 257.8시간, 주당 64시간에 달했다. 답변 중에는 1년 내내 주 2회만 출근했다고도 했다. 한 번 출근하면 3, 4일 내내 회사에 있는 것이다.
  2. ^ 넷마블 사측은 과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만성과로(12주간 평균 60시간, 혹은 4주간 평균 64시간)를 한 노동자가 돌연사 했다면 그 자체로 업무 상 질병에 따른 사망일 수 있다. (고용노동부고시 20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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