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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 제9호

홈리스 없는 홈리스 복지 계획

;노숙인등 복지 종합계획안'을 비판한다

  •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국무총리 소속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난 8월,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세웠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복지사업이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되니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추려진 사업은 1496개로, 그중에는 12개 광역지자체의 24개 ‘노숙인 등 복지 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 지침이 문제 삼는 유사·중복사업들은 사실 제도 포괄지대보다는 사각지대가 더 넓은 복지사업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들이다. 따라서 지침은 결국 사회복지를 하향평준화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노숙인 등 복지사업은 노숙인 재활·요양시설 운영을 제외하고는 지자체에 예산편성과 실행의 전권이 부여된 상황이다. 2005년 지방교부세법 개정과 함께 노숙인 복지는 국고보조사업에서 지방이양사업으로 분리됐기 때문이다. 즉, 복지부 주관 사업이 없기에 애당초 ‘유사·중복사업’이란 게 존재할 수가 없는 영역인 것이다. 결국 이번 지침은 노숙인 등 복지 축소의 신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행태는 홈리스 복지에 대한 그간의 문제제기에 역행한다. 중요한 문제는 중앙정부 차원의 의지와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홈리스의 발생은 경제구조와 같은 거시적인 사회 변화와 주거, 의료, 사회보장과 같은 제도들의 교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복지 책임을 지방정부에 미룰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갖고, 예방부터 지역사회 정착까지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 시점에서 이를 이루는 데 가장 주목할 것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등 복지법)은 제7조를 통해 복지부로 하여금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올해 안으로 첫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종합계획안’을 보면 어떠한 기대도 무색할 만큼 실망스럽다. 아래에서 종합계획안의 주요 내용을 평가하고, 홈리스운동의 대응 방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종합계획’
 
당연하게도 종합계획은 중장기적인 전략과 실행방안, 이에 대한 측정 계획 등을 포괄해야 한다. 노숙인 등 복지법 역시 종합계획이 담아야 할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은 법으로 명시된 내용조차 다수 누락하는 부실 덩어리다. 

첫째, 재정계획이 통째로 누락되었는데, 이는 이후 계획의 실현에 치명적 문제가 될 것이다. 돈 없이 정책을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본 종합계획안은 ‘안’이라는 점에서 이후에 재정계획이 추가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노숙인 등 복지사업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와의 협력이 중요하고, 지방정부의 재정 투여가 상당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종합계획의 실행 가능성 여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전 협의와 조율이 관건이며, 여기서 재정 문제는 가장 예민하게 다뤄져야 한다. 법률이 종합계획 수립 시 “미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제7조 2항)할 것을 규정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노숙인 등 복지는 구(舊) 부랑인 복지영역(현, 노숙인 재활·요양시설)과 노숙인 복지영역이 각각 국고보조사업과 지방이양사업으로 이원화 돼 있어 통합이 시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종합계획에는 사업별 재정계획은 물론 분절된 두 재정 체계의 통합방안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노숙인 등의 증감과 관련된 사회적·경제적·인구학적 환경 및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이 빠진 것은 중장기전망과 전략의 수립이라는 종합계획의 성격을 고려할 때 중대한 결격이라 할 수 있다. 복지부도 지적하듯 그간 ‘노숙인 복지’의 문제가 “분절적·사후문제 해결 중심”이었다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노숙인 등의 증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들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장기적 전망을 빼놓고 세워진 종합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협소한 정책 대상의 문제

법률이 정한 ‘노숙인 등’은 거리와 시설 뿐 아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하기 때문에, 종합계획은 당연히 이들을 포괄해야 한다. 쪽방, 고시원, 찜질방, 여인숙 등에 사는 홈리스가 대표적인데, 2011년 복지부의 조사결과 20만 명을 상회하는 규모로 나타났다. 그런데,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은 “전체 노숙인 등의 수는 약 1.2만여 명”이라며, ‘노숙인 등’의 규모를 거리와 노숙인 시설 입소인으로 축소하고 있다. 거리와 시설 이외의 20여만 명에 달하는 ‘노숙인 등’을 종합계획안 전 영역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시급하기만 하다. 

쪽방을 예로 들면, 쪽방은 홈리스들의 자구적 거처이자 임시주거비 지원 사업, 결핵환자 투약관리 사업 등 정책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부족하나마 홈리스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쪽방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대책은 기존 정책에도,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에도 없다. 고시원 등 여타 노숙인 등의 거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복지부가 세우고 있는 종합계획은 20만 명이 넘는 홈리스들을 사각지대에 두겠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제외시킨, 노숙인 등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다양한 주거 취약 계층을 포함하는 대책이 꼭 필요하다. 
 

여성, 청소년, 장애 홈리스에 대한 계획의 부실

종합계획안은 ‘노숙인시설체계의 전문화’ 과제의 하나로 여성, 청소년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노숙인에 대한 보호 강화를 제시하였다. 구체 수단으로는 ▲사생활 공간을 최대 배려할 수 있는 시설 및 운영기준 마련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노숙인에 대한 상담보호활동 강화 및 여성 노숙인 전용 일시보호시설 설립이 제시되었다. 시설의 전문화와 유형화, 사생활보장 등 주거기능의 강화는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다. 여성 홈리스에 대한 대책 역시 그간 지원체계가 누락했던 과제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책만으로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 노숙인’에 대한 보호 강화는 상담 및 일시 보호시설 설치로 충분할 수 없다. 여성성에 대한 고려는 여성만을 위한 별도 시설 설치만으로 실현될 수 없고 주거, 의료, 고용, 급식, 복지서비스지원 등 전 영역에 걸쳐 고려되어야 한다. 홈리스 여성의 특성과 현실에 기초해 현재의 지원체계 전반을 개편하지 않는 이상 여성 홈리스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 청소년 홈리스에 대한 대책 역시 미흡하다. 청소년에 대해서는 상담활동을 강화할 계획이지만, 상담 이후 어떤 지원을 하겠다는 건지 계획이 없다. 현행 노숙인 등 복지법은 시행규칙을 통해 ‘18세 이상’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법령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이 제출되어야 한다. 

셋째,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특별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대책 역시 찾아볼 수 없다. 현행 지원체계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는 상태다. 현재 이들은 무장애주택으로 공급되는 쪽방, 고시원 등의 염가거처가 없어 임시주거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거동과 돌봄에 대한 지원이 없어 급식과 같은 일상생활과 시설이용에 불리함을 겪고 있다. 종합계획은 당연히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담아야 한다. 
 

직접 쓰는 종합계획

홈리스 당사자 중에 종합계획안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이러한 계획이 있다는 것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종합계획안의 내용은 차치하고, 이것부터가 문제다. 당사자를 배제한 채 수립되는 종합계획은 결코 홈리스를 옹호할 수 없다. 

법률은 종합계획 수립 시 미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고,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청회를 하라거나 정책 당사자, 시민사회의 의견을 들으라는 구절은 없다. 이렇게 법이 강제하지 않으니 복지부는 굳이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비단 종합계획만이 아니다. 각종 정책에 있어 홈리스 당사자의 의견 수렴이 이뤄지는 경우는 전무하다. 노숙인 등 복지법 제정 때 역시 시설들의 협의체만 정부와 정당들의 파트너가 됐을 뿐 홈리스 당사자들에게는 형식적인 제스처조차 없었다. 

우리는 홈리스의 현실과 목소리가 담긴 종합계획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복지부가 수립하고 있는 종합계획의 내용을 홈리스 대중에게 세부적으로 알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현장공청회’를 열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흔히 국회 내에서 열리는 공청회는 출입 절차와 거리의 문제로 홈리스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따라서 서울역이든 영등포역이든 홈리스들의 생활현장에 밀착한 곳에서 공청회를 열고, 홈리스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압박하고자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 홈리스들에게 복지 정책에 대한 실망의 경험이 깊게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종합계획을 세울 건데 같이 의견도 내고 대응도 하자면 홈리스들은 손사래 치기 십상이다. 언론과 정책 홍보로 전달되는 정책들이 실제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법률은 복지지원 중 어느 것도 의무조항(“해야 한다”)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그에 따라 지원이 한시적이거나 정책 대상이 일부 소수에 그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상화의 굴레를 깨지 않는 한 홈리스를 주체로 한 운동은 설 수 없다. 홈리스행동은 현장공청회를 중심으로 홈리스들을 조직하는 활동들을 배치하여 종합계획이 홈리스운동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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