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성운동12장면
  • 2016/10 제21호

날개달린 에로스의 길을 열자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혁명가
  • 번역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편집자주>

 

1920년대 초반 콜론타이는 가족과 성적 관계라는 여성문제에 관한 몇 편의 가장 흥미로운 기사와 수필을 집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비에트 현실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발달시키기보다는 초기 역사들에까지 사고를 확대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증가하는 당면 공격들에 대항하여 그녀가 내세우는 생각들을 수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많은 저작들은, 사실, 전시 공산주의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소비에트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직면한 어려움과 장애들에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면 그것은 그것들이 모두 볼세비키 저작들과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볼세비키는 여전히도 세계변혁의 승리에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콜론타이는 NEP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공산주의를 향한 진군과 지름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 그 시대를 공식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러한 작업 때문에 새로운 정부 정책에서 여성의 요구를 통합시켜 내거나 당이 여성을 억압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해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싸우질 못했다. 그녀는 당이 몰두하는 자본 축적과 산업화에 대해 정치적 논쟁을 위하여 쓴 이슈의 중요성을 보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과 가족의 문제가 응당 차지해야할 중심적인 지위로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적수는 그녀의 여성권리 옹호를 그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탓하거나, 의도는 좋지만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탓했다; 그리고 사실, 많은 당원들에게 명령이나 함구령으로 간청하면서 그들은 그녀가 여성문제의 대변인으로서 당내에서 확장시키고자 했던 영향들을 쉽게 파괴시키곤 하였다.
 
한 서구 논평가는 공통의 견해를 표하면서 "그녀의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사고는, 여지껏 자본가 사회로부터 그 후대로 이식되었다는 추상적인 부정에 제한되어있었던 한계를 벗어나, 보수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혁명당원 일세대로부터 조차 방탕하다고 간주되어온 규범들을 긍정적으로 발달시켜왔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콜론타이의 사고는 점점 더 불합리해 보였고, 당원들은 분별 있게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실제적으로는 사실은 이와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그녀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떠한 제기들도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들에 반대하면서 변화한 것은 당 내․외부에 존재했던 남성과 여성들의 태도였다.
 
비록 레닌이 1919년에 통과한 가족을 통합시키는 당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를 요구하는 콜론타이의 제안을 명백히 반대하기는 하였으나, 콜론타이는 여성위원회와 여성부를 통해, 해결책들에 관한 그녀의 견해를 기사나 팜플렛에서 표현해왔다. "젊은 노동자에게 쓰는 편지"라는 이 기사는 1922년 후반기에서 23년 초에 등장한 글로서 새로운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이해에 적합한 사랑과 도덕이 재정의 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는 글이다.
 

사회심리학적인 요소로서의 사랑

젊은 동지인 당신은 나에게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가 사랑에 어떠한 공간을 주었는지 물었는가? 당신은 현시기에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자공화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사랑이나 그와 관련된 문제들에 전념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갈 것이다. 내가 거리를 두고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시도해보자. 그러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랑이 어떠한 공간을 차지하는지에 관한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시민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투쟁의 주요 전역(戰域)은 지금 두 개의 이데올로기와 두개의 문화-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방이다. 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의 양립불가능성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으며, 이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정치학과 경제학의 영역에서 공산주의자의 원칙과 이상이 승리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감정과 내면세계에서의 혁명도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다. 삶, 사회, 노동, 예술, 삶의 규범(도덕)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합의는 이러한 삶의 규범들의 한 양상이다. 우리의 노동공화국이 5년 넘게 실현되는 동안, 이러한 비군사적인 최전방에서의 혁명은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전쟁이 더 강해질수록 격렬할수록, 오로지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이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수수께끼”와 새로운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대두되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
 
여기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사랑의 수수께끼"가 바로 그런 문제이다. 성별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인간사회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미스테리이다. 역사상 발전의 각각 다른 단계에서 인류는 다른 방법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에 다가갔다. 문제는 이전과 같이 남아있다; 해결의 열쇠도 변한다. 해결의 열쇠는 다른 획기적 사건들과 권력 있는 계급, 특정한 시대(다른 말로 문화에 의해)의 "정신"에 의해 주어진다.
 
러시아에서 최근 몇 년 동안의 격렬한 내전과 막연한 혼란 속에서 그 수수께끼의 근원에 관한 흥미는 거의 없었다.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은 다른 감정과 열정과 표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해 동안은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그늘을 걸어다니고, 승리가 혁명과 진보로 귀결될지 반혁명과 반동으로 끝날지가 결정될 시기였다.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미묘한 날개달린 에로스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향한 내적 힘의 여분도 없었다. 이것이 인류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에너지의 보존의 법칙이다. 전체적으로 힘은 항상 역사적 순간의 가장 긴급한 목표를 향하게 된다. 이 때, 러시아에서는 재생산의 생물학적인 본능과 본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 우세했다. 남성과 여성은 결합했고, 남성과 여성은 이전보다 더 쉽고 더 간단히 헤어졌다. 그들에게 엄청난 계약 같은 건 없었고, 눈물이나 후회도 없이 헤어졌다.
 
성매매는 사라졌고, 파트너들이 서로에게 복종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꾸미지 않은 채 재생산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수많은 성적인 관계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러한 발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관계들이 지속되고, 동지애와 지속적인 우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결합하고 그것들이 순간의 진지함으로 관계를 좀 더 귀중하게 되기도 했지만, 순수한 생물학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되거나, 두 파트너들이 업무를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등한시해서 혁명을 위한 그들의 일이 방해되기도 했다.
 
이 꾸밈없는 성적인 충동들은 쉽게 자극되었지만 곧 소모되었다; 그래서 "날개없는 에로스"는 "날개달린 에로스"보다 조금 덜 내부적인 힘을 소모했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사랑은 모든 종류의 감정들의 미묘한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잠 못드는 밤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의지를 약화시키지도 않고, 마음의 이성적인 작동을 뒤얽히게 하지도 않는다. 혁명의 클라리온이 울려 퍼졌을 때 투쟁하는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의 힘 아래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시기에 혁명에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험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내적인 힘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랑은 그들의 마음을 결혼에 두게 하는 데, 이는 크나큰 내적인 에너지의 지출을 요구한다. 노동계급은 경제적으로 물질적인 부유함뿐만 아니라 각자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힘을 보존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혁명적인 투쟁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별다른 요구는 지니지 않는 재생산 본능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대체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변했다. 소비에트 공화국과 전진하는 인류 전체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침묵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껏 이루어졌던 성과와 목표물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복잡한 업무가 시작되고 있다. 삶의 새로운 형식의 창조자인 프롤레타리아는 반드시 사회적 심리적인 현상들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만하고, 이러한 현상들의 중요성을 움켜잡아야 하며 계급적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물질적인 부의 창조를 가져오는 법뿐만 아니라 내적인 심리적인 세계의 법을 이해할 때, 부패한 부르주아 세계를 깨트려버리게 무장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전진을 위해 노력하는 인류는 군대와 노동의 최전선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문화적인 최전선에의 승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혁명은 승리가 입증되었고, 더욱 강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혁명적 돌진의 기운은 남성과 여성에게 조금의 여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날개달린 에로스가 어둠 속에서 출현하여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감정적 에너지가 축적되기 시작하였으나, 남성과 여성은 심지어 노동자계급까지도 아직 이러한 에너지를 집단의 내적 삶을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여분의 에너지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 출구를 필요로 한다. 사랑의 신의 현이 많은 수금은 단조로운 “날개없는 에로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남성과 여성들은 이제 성적 본능을 순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결합할 뿐만 아니라 “러브 어페어”를 다시금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의 고통과 사랑이라는 행복한 기쁨에 대해서도 모두 알게 되었다.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욕구, 지식에 대한 욕망, 과학적인 문제와 예술 및 문학에서의 흥미가 의심할 여지없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혁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은 불가피하게 사랑을 경험하는 것 또한 포괄하고 있다. 사랑의 신비인 성에 대한 심리학적인 질문들이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사생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는 오직 Pravda 사설이나 보고서들만 읽는데 시간을 할애했던 당원들이 날개달린 에로스를 찬미하는 소설들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반동적인 단계인가? 혁명적 창조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주아들의 위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사랑은 강력한 자연적인 본성, 생물학적인 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라는 것을 솔직히 인식해야할 때이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뿌리깊은 사회적인 감정이다. 인류 발전의 각 단계들에서 사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화의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사랑을 “사적인 문제”라고 보는 부르주아들조차도 계급적인 관심사로 사랑을 연결시켜왔다. 노동계급 이데올로기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큰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데, 사랑은 다른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상들처럼 집단적인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절대 사랑하는 두 당사자들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한 집단에 가치 있는 요소들을 결합하게 해준다. 역사적인 발전의 각각 단계들에서 사회는 어떠한 조건 하에서 사랑이 “적합한지”(주어진 사회의 집단적 이익에 부합하는) 죄악시되거나 범죄화되는지를(주어진 사회의 업무에 반하는) 정의하는 규범들을 마련했었다는 사실로부터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상의 기록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고서부터 성적 관계 뿐 아니라 사랑 자체를 통제하기를 추구했다. 친족 공동체에서는, 혈연관계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친족 공동체는 여성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형제 자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최고의 감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안티고네는 당대에 영웅이었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누이동생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매우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아직 국가가 발달되지 않은 단계인 부족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는 사랑의 형태는 같은 부족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었다. 사회집단이 막 친족 공동체에서 진화했지만 아직 새로운 형태로 출현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구성원간에 정신적,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애’가 유대의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결혼한 쌍 사이에서가 아니라 부족 구성원 사이에서, 국가의 조직자와 방어자 사이의 접촉의 확대와 축적이 집단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족 남성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여성들은 당시 사회적 생활에 있어서 맡은 역할이 없었고, 여성간의 우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보다도 남성간의 “우정”이 훨씬 칭송되고 중요했다. Castor와 Pollux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수행했던 공로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충성심과 흔들리지 않는 우정으로 명성이 깊었다. 우정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위해 남성은 자신의 아내라도 지인 혹은 손님들에게 바쳤다.
 
고대 세계는 우정과 “무덤까지 가는 충성심”을 시민적인 덕목으로 여겼다. 근대적 개념에서의 ‘사랑’이 차지할 공간은 없었고, 시인 혹은 작가들도 사랑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협소한 분야, 혹은 사회와는 관련 없는 개인적 경험으로 격하시켰다; 결혼은 편의에 근거한 것이었지 사랑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단지 여러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그것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시민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한 것이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르주아 도덕이 허용하는 선에서 한계 지우지만, 고대 사회는 이러한 감정을 미덕 혹은 긍정적인 인간 자질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위업을 달성하고 친구를 위해 그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여겨졌고, 그의 행동은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된 반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희생하는 남성은 멸시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고대의 도덕은, 따라서, 남성으로 하여금 선행을 고무시켰던 사랑-봉건제 하에서는 칭송되었던-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남성 구성원을 서로 가깝게 만들고 사회 구조를 더욱 안정하게 하는 감정만을 인식했다. 그러나 문명 발전의 다음단계에서는 우정이 더 이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사회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우정이 미덕으로 여겨질 여지가 없었다. 우정은 어떤 점에서도 도움이 안되고,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불필요한 “감성”과 약함의 징후로 여겨진다. 우정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뉴욕과 런던이라는 공간에서의 Castor와 Pollux는 비웃음만을 자아낼 뿐이다. 우정이 자질로서 교육되고 고무되었던 봉건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봉건제는 귀족의 이해를 방어했다. 사회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보다 가족과 전통에 대한 개인의 의무에 근거하여 미덕을 정의하였다. 결혼은 가족의 이해에 따른 계약이었다. 어느 소년이라도 (소녀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이러한 이해에 반하여 아내를 선택할 시에는 매우 비난받았다. 봉건시대에 가족의 이해보다 우위를 점하는 개인적 감정과 기질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면치 못했다. 도덕은 사랑과 결혼의 조화 따위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간의 성적 관계는 무시되지는 않았다. 사실, 인류 역사 초기에도 이러한 인식은 있었다. 이 엄격한 금욕의 시대에, 조잡하고 잔인한 도덕의 시대에, 폭력과 폭력에 의한 지배의 시대에 사랑이 최초로 수용되었다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속내를 좀 더 살핀다면 그렇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특정한 상황과 환경에서 사랑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사도는 전장에서 구성원들에게 순수함과 용맹, 인내와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요구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조직력보다는 개인적인 참여자들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었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마음속의 숙녀’와 사랑에 빠진 기사는 더욱 쉽게 기적적인 용기를 보여주었고, 승리를 얻을 수도,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도 있었다. 사랑에 빠진 기사는 빛을 발하여 자신의 사랑에게 주목을 끌고 싶은 욕망에 고무되었다.
 
기사도의 이념은 사랑을 봉건 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로 인식하였지만, 그럼에도 엄격한 틀 내에서 이러한 감정을 제한하려 했다. 남성과 그 부인 사이의 사랑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기사의 성 혹은 러시아 특권 귀족의 terem 안에서 사는 가족은 감정적인 유대로 묶여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도적인 사랑의 사회적 요소는 여성을 사랑하는 감정에 의해 군사적 혹은 다른 영웅적 위업이 고무되는 가족 외부에서 작동되었다. 그 여성이 가까이 하기 어려울수록, 기사는 그녀의 호의를 얻고 그 계급 사회에서 가치 있는 미덕과 자질을 갖추어 위신을 세우는데 노력하였다. 기사들은 보통 가까이 하기 어려운 여성, 예를 들어 영주의 부인 혹은 여왕에게 접근하려 했다. 오직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용감한 기적을 수행하는데 자극제가 될 수 있었고 그런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접근 가능성이 낮다하더라도, 사랑의 대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결혼 가능성과 앞서 언급한 지렛대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건제의 도덕은 금욕주의-성적 억제-와 미덕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관념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그의 욕망은 속세적이라고 죄악시되었다. 그러한 욕망을 생물학적인 것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추상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기사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성을 선택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기도 하였다. 그 이상을 그는 나아갈 수 없었다.
 
봉건제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자극제, 사회적 결집을 지지하는 자질로 보았다; 정신적 사랑과 기사들의 동경은 귀족 계급의 이해에 봉사하였다. 기사의 아내가 다른 기사의 여성으로서 선택되었을 때 아내를 수도원에 보내거나 외도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 기사는 비아냥거림을 받게될 것이다. 그는 그녀의 플라토닉한 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인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봉건적 도덕에서는 사랑을 법적인 결혼 관계와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다. 사랑과 결혼은 봉건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분리된 채 존재한다. 14, 15세기에 출현한 부르주아 계급에서만 사랑과 결혼은 결합되었다. 따라서 봉건제 사랑에 대한 고상한 궤변만이 형언할 수 없는 조잡한 규범들과 함께 남아있었다. 결혼 안에서든 밖에서든 성적 관계는 사랑을 부드럽게 하고 고무시키는 요소를 결핍한 채, 봉건제적 사랑은 순전히 심리적인 행위로서만 남아있었다.
 
교회는 영성적인 사랑을 북돋우면서 “타락”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척 했다. 그러나 이는 양성간의 조잡한 동물적인 관계를 북돋았다. 마음 속에서 여성이라는 상징을 떼버리지 않은 기사는 그녀의 영예를 위해 시를 짓고 그녀의 미소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시에 사는 여성을 강간하거나 그의 집사로 하여금 그를 기쁘게 해줄 아름다운 소작농을 데려오게 시켰다. 기사의 부인들도 한편에서 음유시인들이나 봉건 기사 수행원들과 신선한 쾌락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봉건제가 약화되고 부르주아의 이해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삶의 조건이 출현하면서, 양성간의 새로운 관계가 발달했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거부하면서 부르주아는 육체에 대한 권리를 방어했고, 사랑이라는 개념에 정신적, 육체적인 조화를 주입했다.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과 결혼을 분리하지 않았다; 결혼은 커플 상호간의 매력의 표현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의 실천 과정에서 편의라는 명목 때문에 이러한 도덕적인 가르침을 배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반자적 결혼이라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심대한 계급적 기반을 갖고 있다.
 
봉건제 하에서는 가족은 귀족의 전통과 태생에 의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교회의 권력에 의해 부부의 결혼은 성사되었고, 가장에게 무한한 권위가 부여되고, 가족의 전통과 영주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이혼은 불가능했다. 부르주아 가족은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진화되었다; 이 때의 가족의 기반은 ‘부에 대한 공동소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축적’이었다. 가족은 이러한 자본의 수호자였다;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성의 재산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기술적으로 다루어져야 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좋은 가정주부 뿐 아니라 남편의 친구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관계와 부르주아 사회 체계의 성립에 따라, 가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경제적으로 고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에 공통의 이해가 달려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협력이 구축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가 강력한 감정적․심리적 유대로 묶였을 때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14세기 말 15세기 초, 삶의 새로운 경제적 방식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생시켰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개념은 점차 변했다. 종교개혁가 루터, 다른 사상가들과 르네상스와 사회개혁의 공적 인물들은 사랑의 사회적 힘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가족의 안정성-부르주아 체계에서의 경제적 기본단위를 유지하는-을 인식하게 되자, 경제적인 연계 이상의 무엇으로 가족구성원을 결속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부상하는 부르주아들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이상-육체와 정신의 동시적 결합-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개혁가들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도전했고, 기사가 지속적인 염원하지만 그의 감각적 욕구 충족은 부정당했던 기사도의 ‘정신적 사랑’을 비웃었다. 부르주아와 개혁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육체적 욕구의 정당성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봉건제에서는 성적 행위로서의 사랑-결혼 내에서나 내연 관계에서-과 정신적, 플라토닉한 사랑-기사와의 관계와 그의 마음속의 여성- 이 분리되었지만, 부르주아 계급들은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애착을 모두 사랑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하였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결혼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었다. 물론 실제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이상으로부터 언제나 패퇴해왔다; 그러나 파트너들간의 의향에 대한 질문들이 봉건제도 하에서 제기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도덕은 편의의 결혼에서조차 파트너들은 위선을 실행하고 애정을 가장해야만 함을 요구하였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봉건적 전통의 흔적과 태도가 수세기 동안 살아남아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에 순응한 채 우리에게도 남아있다. 귀족 가족과 상류 계급은 아직도 이 낡은 규범에 따라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사랑에 기초하여 결혼하는 것은 “어색하기”보다는 “우스운” 것으로 간주된다. 이 세계의 왕자와 공주들은 아직도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와 출산의 요구에 응해야만 한다.
 
빈농 가족에서는 가족과 경제적 고려가 결혼이라는 합의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 가족에서는 결혼이 경제적인 한 노동 단위를 꾸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도시 산업 부르주아의 결혼과 다르다; 구성원들은 경제적인 환경에 의해 단단히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내적인 결속은 부차화된다. 중세 장인들에게 사랑 같은 건 결혼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거나, 길드체계에서 가족이란 한 생산 단위였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만이 안정성을 보증하였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에 대한 이상 (또는 관념)은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함께, 가족이 그 생산적인 기능을 잃고 소비 단위로 전락하였을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결국 축적된 자본의 보존을 위한 전달매체로서만 기능하였다.
 
비록 부르주아적 도덕이 전통에 반항하면서까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할 권리를 옹호하고, 또한 사랑을 결혼의 기초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사랑”과 금욕주의를 비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였다. 사랑은 결혼 내에서만 허용되었다. 합법적인 결혼 외의 사랑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생각들은 대개 경제적 고려 속에서 또 사생아에 대한 재산 분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구술되었다. 부르주아 도덕 전체는 자본 축적을 위한 것이었다. 복지향상을 위해, 각각의 가족 구성원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결혼한 커플이야말로 이상적이었다. 가족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에서 부르주아지 도덕은 가족의 이익을 지지했다. (cf.부르주아 도덕의 인정적인 태도-비록 법에 의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이탈자에게 그리고 그들 가족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을 파산케 한 사람들에게 조차) 공리주의적인 경향을 띈 부르주아의 이러한 도덕은 사랑의 장점을 결혼의 주요한 구성인자로 만들어 가족을 강화하였다.
 
사랑은, 물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론자들에 의해 규정된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다. 감정적인 갈등은 커지고 다층화되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발전된 문학의 새로운 형태-소설-안에서 감정적인 갈등은 존재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법적 혼인 관계라는 좁은 테두리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와 간통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관계는 비난을 받지만 지속되고 있다. 사랑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인텔리겐차 노동자의 삶의 양식에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성과 사랑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해명되지 않는 미스테리의 열쇠를 찾는데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어떻게 개인적-사회적 행복의 총합을 증가시킬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청년 노동자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연애-결혼의 관계에 관한 간결한 통찰을 진전시켜보면, 사랑이 처음 얼핏 보기에는 사적인 문제라고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젊은 동지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사랑은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요소이며 사회는 항상 본능적으로 이를 사회의 이익으로 조직해왔다. 마르크스주의 과학과 역사의 경험으로 무장한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에서 사랑이 차지할 공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사랑의 이상을 결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동지애적 사랑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는 동지애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 연대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뿐만 아니라 집합 구성원들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체계가 연대와 협동에 의해 건설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사랑과 따뜻한 감정을 지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계급으로 하여금 같은 계급내의 동료들이 가지는 고통과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민감함 그리고 집단에서 개인간의 관계가 가지는 의식을 통찰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런 모든 “따뜻한 감정”-감성, 연민, 공감 그리고 책임감-은 한 가지 원천에서 파생된다; 이것은 사랑의 좁은 의미에서의 성적인 무엇이 아니라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의 양상이다. 사랑은 결합되는 감정이고 따라서 조직될 수 있다는 성질을 지닌다. 부르주아는 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안정한 가족 제도를 창조하기 위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결혼하는 사랑”을 도덕적 미덕으로 확립했다;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은 부르주아의 눈에는 상당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사랑이, 광의의 의미와 양성간의 관계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가족-결혼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상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각 시대에는 그 고유한 이상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계급은 그들의 이해에 적합한 도덕적 내용으로 사랑을 개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각의 시대의 문화적 발전에 따라, 더욱 풍부해진 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들에 의한 문화적 발전에 따라, 에로스의 이미지는 재정의 되어 왔다. 경제적 사회적 삶의 발전의 성장기에 사랑의 이상이 변화했다; 감정의 그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고 오히려 소멸되기도 하였다.
 
수 천년의 인류사회의 역사의 과정에서, 사랑은 단순한 생물적 본능-고등동물부터 하등동물까지 모든 피조물들에게 고유한 재생산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이고 감정적인 양상을 획득하여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까지 발전해왔다. 사랑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가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인 힘의 영향 아래에서,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은 정반대의 대립된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한 편으로 건강한 성적 본능은 자본주의의 기괴한 사회 및 경제적 관계에 의해 건강치 못한 음욕으로 왜곡되어버렸다. 성적인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폭음이나 폭식 등에 의해 돋구어지는 욕망이라든지 왜곡된 음욕과 같은, 즐거움을 얻은 방식처럼 말이다. 남성은 건강한 성적 본능에 의해서라면 그를 이끌리게 하는 특정한 여성과 굳이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남성은 비록 특정한 여성에 대하여 어떤 성적 욕망도 갖지 않더라도 그녀를 통해 그의 성적인 만족과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여성에게든지 접근한다. 매춘은 이렇게 왜곡된 성욕 충족의 조직화된 표현이다. 만약 여성과의 성교가 기대한 쾌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남성은 모든 종류의 타락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건강하지 않은 음욕으로의 탈선은 관계를 생물적 본능이라는 원천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반면, 세기를 넘어 인류 사회적 생활과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감정적이고 지적인 경험들의 조합이 성에 대한 육체적 본능을 둘러싸게 되었다. 사랑의 현존하는 형태는 몸과 마음의 복합적인 상태이다; 이것은 본래의 원천인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과 분리되어왔을 뿐 아니라 종종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사랑은 우정, 정열, 모성적 따뜻함, 매혹, 모성적 포근함, 동정, 경애, 친밀함 그리고 다른 많은 감정의 면모들이 조합되어 얽혀있는 것이다. 감정이 관계한 범위가 넓어서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친밀함이 용해되어있는 속에서 본래의 “날개달린 에로스”와 “날개없는 에로스”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육체적 매력의 요소는 결여하고 있는 동지애적 사랑, 한 사람의 일에 대한 애정 혹은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사랑, 그리고 집단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영성화된’ 그리고 그 생물적인 기초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정도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표현들 사이에 첨예한 모순과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인간의 노동에 있어서 지적, 감정적인 관여는 특정한 남성이나 여성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못할 수도 있고, 집단을 위한 사랑은 남편과 아내 또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 동지애적 사랑(love-friendship)은 다른 사람의 열정과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한 경우는 우월하게 지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다른 경우는 육체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사랑”에는 다양한 측면과 양상이 있다. 시대를 거쳐 발전되어 오고 동시대인들에 의해 경험되고 있는, 감정의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측면들이 그러한 일반적이고 부정확한 용어에 의해 은폐될 수는 없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삶의 규칙 아래서 사랑의 복잡다단함은 갈등과 풀기 어려운 일련의 문제들을 낳는다. 19세기 말에는 작가들이 심리 묘사를 통해 사랑의 다양한 면을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곤 했다. 둘 혹은 심지어 세 명이 사랑에 관계하고 있었으며 이는 많은 부르주아 문화의 대표자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 60년대에 우리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Alexander Herzen는 그의 소설 ‘누가 유죄인가?' (Who is guilty?)에서 이 내면 세계의 복잡함과 감정의 이중성을 폭로하려고 노력했고 Chernyshevsky는 같은 문제를 그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에서 다루었다. Goethe와 Byron 같은 천재 시인 그리고 성별간의 관계라는 영역에서 대담한 선구자였던 George Sand는 그들의 생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누가 유죄인가’의 저자 역시 다른 위대한 사상가, 시인, 공적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삶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발견했다. 이 때 많은 “소시민”들은 사랑의 어려움에 힘들어했고 부르주아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 헛되이 해결책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아귀에 있다. 새로운 노동자간의 유대라는 삶의 양식과 이데올로기만이 이 감정의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양면성 즉 "날개달린 에로스"의 복잡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한 남자가 많은 여자와 혹은 한 여자가 많은 남자와 갖는 "에로스 없는" 성적 관계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 감정이 관여되지 않은 관계는 불운하고 해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를 피폐화하는 문제. 성적인 문제 기타 등등) 그러나 얼마나 그들이 얽혀있더라도 그들은 "감정적으로 극적인 상태“를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상태“와 갈등들은 다양한 그늘이나 사랑의 징후가 나타날 때 시작된다. 여성은 남자의 사고, 희망과 염원이 그녀의 것과 맞을 때 이끌리며 정신적으로 매혹된다; 그녀는 다른 이에게는 육체적으로 이끌린다.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서 공감과 보호해주고픈 부드러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여성에게서는 그의 지식 추구의 노력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는 둘 중 어느 여성에게 그의 사랑을 주어야 하는가? 두 유형의 내적인 결합을 추구하기만 하면 삶의 충만함이 가득할텐데, 왜 그는 그 자신을 갈라놓으며 내적으로 불구가 되어야 하는가?
 
부르주아 체제 하에서 내적 감정 세계를 그렇게 분할하는 것은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 문화 -소유제도에 바탕을 둔-는 사랑이 소유의 원칙들에 연관되어있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 상호간의 사랑이 연인에 대한 절대적이고 불가분한 소유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해왔다. 남편과 아내간의 “모든 포용하는 사랑”이라는 이상과 한 쌍의 결혼이라는 정형화된 형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그렇게 배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의 감정이 넓고 풍부한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감성적인 경험의 다양한 측면이, 공동체를 더욱 강화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결합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사람들을 함께 묶어주는 내적 연결지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연대감이 확고해지고 우애와 결속력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이상 실현이 더 수월해진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배타성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수용할 수가 없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다양한 형식과 측면에 위선적인 부르주아지 공포와 도덕적 분개를 느끼는 것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 환경들의 복잡한 작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이 감정들을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사랑의 복잡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발전 중인 동지애의 이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부족사회시기에 사랑은 혈족 관계에서의 애착(형제자매간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되었다. 크리스트 이전 시기의 고대 문화에서는 사랑-우정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상위에 뒀다. 봉건제 사회는 결혼 외부에서의 이성 사이의 플라토닉한 우아한 사랑을 이상화했다. 부르주아지는 일부 일처제의 결혼관계에 있는 사랑을 이상적으로 간주하였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에서의 협동과 남성 여성 모두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묶어주는 내적인 연대에서 그것의 이상을 찾았다; 이러한 이상의 형식과 내용은 다른 시대에 존재하던 사랑의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지애에 대한 옹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이 속박적인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여 이성간의 교제에서의 부드러운 감정의 흔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심리학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서의 사랑의 가치에 대해 명료히 인식한다.
 
부르주아 문화의 위선적인 도덕은 에로스의 자유를 단호하게 제한하며,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에게만 오직 협조적이다. 결혼 외부에서는 돈으로 사거나 (성매매의 경우) 은밀한 (간음의 경우) 일시적이며 기쁨이 없는 성적인 관계인 “날개없는 에로스”의 여지만이 남는다. 노동자계급의 도덕은, 반면에, 이미 공식화되어있는 한에서 성적인 관계들의 외부의 형식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목표는, 사랑이 오랜 공식적인 결합을 취할지, 일시적인 관계를 취할 것인지에 의해 조금도 영향 받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있어서의 어떤 형식적 제약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이미 사랑의 내용적 측면과 감성적인 경험의 부분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가 취해지고 있다.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의 도덕보다 엄격하고 단호한 방법으로 “날개없는 에로스”를 추방할 것이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모순된다. 우선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잉을 포함하며 그로 인해 육체적 황폐함을 가져온다. 이는 사회에 유용한 노동 에너지 자원을 고갈시킨다. 둘째, 영혼을 피폐하게 해, 내적인 결속과 건강한 감성의 발전과 강화를 억누른다. 셋째, 그것은 항상 성적 관계에서의 권리 불평등,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남성 자기만족과 무감각을 남겨두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동지애의 발전을 방해한다. “날개달린 에로스”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분명히 성적인 매력은 역시 “날개달린 에로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문화-민감성, 책임감과 타인을 돕길 바라는 욕구-의 생산자로서 필수적인 내면적 자질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한 사람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만 그러한 자질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남성과 여성이 선택된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관하여 이러한 자질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에서 우월한 감정의 그늘과 뉘앙스에는 관심이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감정이 동지애의 발달과 강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사랑-동지애라는 이상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끊임없이 진척되어오면서 부르주아 문명의 배타적인 전쟁과도 같은 사랑을 대체해왔다. 이것은 타인의 개성에 대한 고결함과 권리, 확고한 상호 지지와 감정적 공감, 타인의 욕구에 대한 책임성에 대한 인식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동지애적 이상은 절대 독재 타도를 위한 투쟁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면서 사랑이 변화하고 선재하지 않았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간의 “공감적 유대”는 더욱 성장하고 강화될 것이다. 사랑의 잠재력은 더욱 증가될 것이며, 사랑-연대는 부르주아 체계에서 경쟁과 자기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다. 정신적 집단화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사람들을 사랑과 결혼으로 도피시키도록 유도했던 개인주의적 자족과 “내적 외로움이라는 고립”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더욱 친밀한 감정적, 지적인 접촉으로 이끌어줄 많은 연결선들이 발달할 것이며,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감정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이전될 것이다. 양성간의 불평등과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과거의 희미해져 가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집단적 사회에서는 즐거운 조화와 동지애를 바탕으로 사람들간의 관계가 발달할 것이고, 에로스는 인간의 행복을 다층화하는 감정적 경험들로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자치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된 에로스의 본성은 무엇이 될까? 제아무리 대담한 환상을 편다할지라도 이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명확하다; 새로운 인간들의 지적, 감정적 유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현재의 세계에서의 사랑이라는 여지는 더욱 적어질 것이다. 현대의 사랑은 항상 죄악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사고와 느낌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고, 집단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에서는 이러한 분리는 불필요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수용되는 성적 관계 규범은 (왜곡과 과장 없는) 자유롭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이끌림과 “변화된 에로스”에 기초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두 문화사이에 서있다. 그리고 모든 최전방에서의 이 두 세계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포함하는, 전투에 참가하는 이 전환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공감적인 느낌”을 가능한 빨리 축적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이 시대에는 관계를 정의하는 도덕적 이상은 꾸밈없는 성적 본능이 아니라 동지애에 대한 다면적인 사랑 경험이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도덕에 의해 공식화된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이러한 경험들이 세 가지의 주요 원리에 합치해야만 한다; 1. 관계에 있어서의 평등 (남성이기주의와 여성 개인에 대한 노예적 억압의 종식) 2. 타인의 권리와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르주아 문화에 의해 고무되는 소유 관념) 3. 동지적 감성, 사랑하는 이의 내적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능력 (부르주아 문화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이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날개달린 에로스”의 권리를 요구할 때, 동시에 노동 계급의 이상은 이러한 사랑을 집단에서의 사랑-의무라는 더욱 강력한 감정보다 중요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집단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 위대할지라도, 두 개인을 집단에 결합시켜주는 유대가 항상 선행할 것이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복잡하고 유기적이게 될 것이다. 부르주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사랑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집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이 동지애가 노동계급의 이상이 된다 할지라도, 이 새로운 감정의 “도덕적인 척도”가 성적 관계에 있어 새로운 압박이 되지 않겠는가 라며 반대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아직 부르주아 도덕이라는 족쇄로부터 사랑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그것을 다시금 노예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은 옳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도덕”을 사랑-결혼 관계에서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고유의 계급적 도덕과 행동규범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업무에 더욱 긴밀하게 부합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감정을 교육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감정이 다시금 속박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심할 바 없이 부르주아 문화의 날개를 꺽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과정을 유감스럽게 하는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계급은 선행하지 않았던 미, 힘, 광채를 지닌 감정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기초가 변하면 사랑도 변화할 것이다.
 
맹목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고 요구하는 열정은 약해질 것이다; 소유 관념, 파트너를 “영원히” 눈멀게 하는 이기적인 욕망, 남성의 자기 만족과 여성의 자기 단념은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가치 있는 면과 요소는 발달할 것이다. 타인의 인격의 권리를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고, 상호 감성은 교육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키스와 포옹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의 창조와 활동에 의해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임무는 사회적 생활로부터 에로스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형성에 따라 그를 재무장시키는 것, 그리고 동지애적인 연대라는 새롭고 위대한 심리적 힘을 지닌 영혼들의 관계로서 성적 관계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관심이 “타락”의 증후는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젊은 노동자들간의 관계에서 사랑이 반드시 점유되어야 하는 공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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