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7/03 제26호

넘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 편집실 김유미
누군가에겐 딴 세상 얘기처럼 낯선데다,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하고 골치 아플 주제의 특집을 내놓으려니 부담이 된다. 그러나 지금 시기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 속에 치러질 2017년 대선에, 우리 삶의 문제와 사회 변화의 열망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와 깊이 연결된 주제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촛불은 박근혜라는 꼭두각시 하나 끌어내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퇴진 촛불에는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고,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도록 용인했던 이 체제(2016/12월호 《오늘보다》는 그것을 ‘박근혜 체제’라 명명했다)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정치적 각성의 성격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사라진 자리에 놓일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폭발한 대중의 열망을 담을 수 있을까? 불길한 징조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안철수는 이미 ‘촛불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안희정은 중도보수층을 포용하는 데에 주력하며 무리수를 던지기 일쑤다. ‘대세론’의 주인공 문재인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들 앞에서는 모호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럼 누구?” 당연히도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채운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민중 후보 전술, 정당 건설 등 여러 시도는 오늘날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서너 개 이상의 진보정당이 미미한 지지율을 나눠 갖고, 거대 보수양당의 틈새를 비집은 새로운 세력이라는 상징성은 다른 이들이 채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초,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대선을 경유하는 정치 방침을 놓고 토론했으나 여러 이견으로 결국 어떤 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형식적으로 이번 대의원대회는 2017년 대선에 민중 단일 후보를 내고, 2018년 지자체 선거 전에 진보정당을 아우르는 선거 연합 정당을 만드는 일의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양측의 입장은 노동자의 사회변혁 의지를 담을 단일한 정당과 후보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찬성)과, 역사와 현재를 직시했을 때 그것이 단기간 안에 제대로 만들어지기는 어렵다는 ‘불가능성’(반대) 사이의 문제로 부딪혔다.

필요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불가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제대로 풀지 못했던 문제를 응시하는 것, 과거 어느 시점에 마주했던 궁지를 그때보다 더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응시와 대면이 당장 2017년 대선에서는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을 미룰 핑계는 되지 않는다. 우리는 넘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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