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5/03 제2호
사모님 갑질 논란에 가려진 아파트 경비원의 현실
지난 9월,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했다. 입주민의 반복적 모욕과 폭언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이른바 ‘갑질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모두가 지쳐왔다. 그런데 압구정동, 게다가 사모님이라니. 사람들은 너나없이 압구정 사모님 비난에 열을 올렸다. 물론 자기반성은 생략하고. 그렇게 ‘경비원’은 사라지고 사모님에 대한 욕설과 조롱만 남았다.
법과 권리의 사각지대, 아파트 경비노동
내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라는 곳에 취업한 것은 작년 4월이다. 이곳의 변호사들은 저마다의 현장을 택해 법률지원을 한다. 장애인권 단체, 성소수자 단체부터 불안정노동단체, 세월호 가족대책위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동영역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내게 한 선배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문제가 많다는 언급을 했다. 그래, 경비원도 노동자다. 노동자라면 푸른 조끼와 붉은 머리띠, 젊고 억센 팔뚝질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내 머릿속에서도 소외되었던 노동현실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노원노동복지센터(이하 센터)’에 찾아갔다. 서울 노원구에서는 2012년부터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일반노조, 그리고 센터가 합심해서 지역 내 경비원모임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노원지역 아파트단지를 현장으로 하는 첫 연대 사업이 시작됐다.
차츰 알게 되었던 아파트 경비원이 처한 노동현실. 그곳에는 노동의 난제들이 집약되어 있었다. 간접고용에서 ‘진짜 사장’의 책임회피,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도 못한 채 짚어주는 곳에 서명만 하는 근로계약, 용역회사의 잦은 변경과 고용의 불승계, 퇴직금과 실업급여 미지급, 감정파괴를 동반하는 고객응대, 법령이 정한 최소한의 안전시설과 편의시설도 갖추어지지 않는 사업장, 무한 근로시간과 업무내용, 제대로 쉴 수도 없는 무급휴게시간, 사실은 최대임금인 법정최저임금, 고령근로자라는 이유로 기간제법상 보호범위에서도 벗어나 있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범위에서도 예외로 분류하는 법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지간히도 조직되지 않는 노동자들.
아무리 그래도 ‘노조’는 껄끄러운 어르신들
그나마 존재하는 법적 책임도 회피하는 착취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조직화다. 그러나 아무리 유인물을 돌리고 전화를 돌려도 경비원들은 눈치만 볼 뿐 모임에 나오질 않았다. 파리 목숨이라는 걸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알고, 노조에 대한 거리감도 크기 때문이다. 누가 대신 좀 해결해주면 좋고 아니면 살아왔던 대로 살겠다는 태도들.
물론 분신 사건이 있고난 10월의 경비원모임 분위기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노조의 필요성과 초동주체의 중요성을 교육할 때는 경비원들의 눈빛도 빛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장사업 10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지역의 3000명 넘는 경비원 중 일반노조 가입자 숫자는 많이 늘지 않았다. 분신 사건 이후 경비원모임 가입자는 600명이 넘었음에도 ‘노조’는 여전히 껄끄러운 곳이었다. 부당해고라며 찾아와 싸우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노동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으면 얼마 뒤 한 달 치 월급에 회사와 합의하고는 전화통화마저 피했다. 제한된 인력과 재정, 성과도 안보이지 않았다. 미조직단위 조직화라는 게 얼마나 팍팍한지 알겠다. 학교비정규직이나 시설관리노동자와 달리 홀로 떨어져 일하는 24시간 맞교대 사업장이라는 특수성도 조직화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조직화라는 건 원래 어려운 일 아닌가. 그래도 그간의 꾸준한 활동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근로계약서와 사직서에 서명하던 경비원들은 줄어들었다. 집단적 해결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며 적어도 경비원모임만큼은 안정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경비원들이 처한 간접고용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은 확장되었고 해결방안에 대한 모색도 꽤 활발해졌다. 무엇보다 노원의 활동가들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경비원 당사자의 운동이 관건
현장의 조직력이 없는 상황에서 활동가는 자꾸 해결사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경비원 조직사업을 하며 가장 곤란했던 것은 당사자들이 보이지 않는데 경비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활동가들이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주눅 들어 사는 경비원들 사이에 ‘이참에 저 사람들이 뭔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커졌던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 후 1970~80년대 노동현장에서는 민주노조 건설운동이 활발했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도 가능했다. 당사자가 스스로 서지 않고서는 누구의 어떤 분신도 전태일 같을 수 없다. 상황은 어렵지만 경비원 노동 자체에 주목하고 당사자를 세워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한 명의 지역 활동가로서 올해 안에 반드시 일반노조 조직화를 해내고자 한다. 사모님에게 쏠렸던 작년의 뜨겁던 사회적 관심이 식은 겨울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경비원들을 만나러 나선다. ●
*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4호는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한정 없이 기간제로 쓸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호 역시 이른바 ‘감시단속적근로자’라는 이유로 경비원에게는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