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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 제25호

우리는 출산지도 속 숫자가 아냐

  •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회원
1월 6일 행자부 출산 정책 규탄 집회 ©위키트리
 

출산지도라는 일차원적 발상

지난 연말 행정자치부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걸 만들어 공표했다. 그러나 이 출산지도가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분노에 직면하자 한나절도 안 돼 해당 사이트를 닫고 ‘수정중’이라는 공지를 내보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어이없게도 가임기 여성수를 지자체별로 농도를 달리한 핑크색으로 표시하고, 그 수를 한자리까지 정확하게 알려주며, 가임기 여성이 많은 순서대로 지자체의 순위를 매겨놓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 지도를 홍보한 행정자치부의 SNS 글에는 ‘아이 낳기 좋은 동네’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필요한 산부인과, 소아과 같은 병원이나 보육시설이 많은 동네도 아니고 그저 가임기 여성이 많은 동네가 아이 낳기 좋은 동네라는 이 일차원적인 발상이 대한민국 행정자치부라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는 게 충격적이다.

이 나라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 그것도 나라에서 맡겨놓았으니 언제든 필요할 때 찾아 쓸 수 있는 출산기계 취급한 것이야 유구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여성을 아이 낳을 수 있는 ‘숫자’로 표시해 지역별로 순위를 매기고 알려주는 적나라한 짓은 처음이지 싶다. 

출산지도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을 인간이자 시민으로 생각지 않고, 출산이라는 기능이 특화된 기계로 본다는 것이다. 저출산 극복이라는 목표에 따라 작성된 지도에서 여성은 임신 가능성을 기준으로 선별되었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성들의 숫자가 등록되었다. 이 지도에서 여성이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자신의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은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인식은 아이 낳기 힘든 구조나 정부와 지자체의 빈약한 출산지원책에 대한 변화를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가임기 여성 개개인이 임신을 결심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홈페이지를 뒤덮은, 소위 여성의 색이라는 핑크빛이나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사진 등은 ‘여성=출산과 육아’라는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시일 뿐이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던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수 통계
 

출산지원은 명절 상여금 수준

지도 발표 직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기보다는 출산지도가 사실은 정부와 지자체별 출산지원 정책을 소개하려는 좋은 의도였다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헹정자치부의 오인과 달리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출산지원 정책을 몰라서가 아니다. 출산지원 정책이 가임기 여성들의 출산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아마 1퍼센트도 안 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출산지원은 주로 경제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임신 후 산부인과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50만 원의 바우처(다태아는 90만 원), 지자체에 따라 보건소에서 제공하는 초음파와 기형아 검사 할인 쿠폰 몇 장, 엽산과 철분제 지원 등인데, 이건 임신과 출산 시 들어가는 비용의 30퍼센트가 될까 말까 한다. 난임이나 불임인 경우 시술에 따라 50~300만 원정도 지원이 되는데, 실제 난임이나 불임으로 임신에 성공하기까지는 1회당 최소 100~600만 원 정도가 든다. 아이를 낳으면 주는 출산지원금은 지자체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둘째가 50만 원, 셋째가 200만 원이다.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이건 소득기준이 맞아야 하고 받을 수 있다 해도 본인부담금을 최소 30만 원 이상은 내야 한다. 세세하게 따지면 몇 가지 더 있겠지만, 대체로 임산부들이 실제 몸으로 느끼는 출산지원혜택은 이 정도다.

과연 이런 출산지원혜택을 보고 임신을 결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정부의 출산지원혜택은 회사로 따지면 명절상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임금은 최저임금에 매일 야근이고 죽도록 혹사시키며 관리자나 임원들이 노동자들에게 인격적 무시를 해대는 회사가 명절상여금 10만 원 챙겨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는 건 이게 아니면 먹고 살기가 어렵거나,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여서 옮겨도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 명절상여금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정부의 출산지원혜택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아이 한명씩 낳을 때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억 원씩 지원하는 게 아닌 이상 출산지원혜택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정책입안자들도 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은 발전이 없다. ‘출산지원혜택이 무엇 무엇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고, 이런 걸 지원해주는데도 여성들이 애를 안 낳는다’는 식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저출산의 구조적 문제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해법을 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을 인간이자 동료시민으로 인정하고,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우선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 애 낳아주는 기계, 집안 일 해주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경제적·물리적 부담, 직장의 문화와 제도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임신하면 민폐라고 온갖 눈치를 받거나 끝내는 퇴사를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나, 남성이든 여성이든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직장문화는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출산, 신체, 노동(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을 평가절하하기 때문에 생긴다. 여성의 권리를 사회가 인정하고 보장하지 않고서야 임산부 단축근무든 육아휴직이든 제도가 있다 해도 쓰기 어려운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소득에 상관없이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제도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특히 공공보육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아이 양육의 책임을 가정에만 돌리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하는 것이고 여성의 권리지만, 그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의 혜택을 사회도 같이 누리는 만큼 아이 키우는 것을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아이가 가정 안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세 아이의 엄마였던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첫 주에 70시간을 일하다 과로로 숨진 사건이 있었다. 주말에도 나와서 밀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후에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했다는 얘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보다 더 전에는 직장생활과 야근에 시달리고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어 고립감을 느끼거나 지친 몸으로 육아를 해야 하는 아빠들의 삶을 보여주는 <아빠의 전쟁>이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지난해에는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출근하거나,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전업주부로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보여주는 <엄마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죽음이나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세상이다.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 긴 시간을 일하고 집에 와서 육아와 가사로 일하고도 빠듯한 살림살이.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고서야 출산율이 높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육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든 아빠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과 전쟁을 불사해야 겨우 아이를 기를 엄두를 내는 게 현실인데,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낭만과 행복 가득해 보이는 핑크빛 출산지도로 가임기 여성수를 보여주고, 출산하면 미역주고 이름지어주는 지자체 소개해주는 것이라니! 이 정부는 여성들과 시민들의 삶을 너무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며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것인가? 

무엇이든 간에 직무유기이고 무능이다. 그러니 제발 애 안 낳는 여성 탓 그만하고, 출산과 양육에 쥐꼬리만큼 지원해주면서 저출산 대책 내놨다고 생색내지 마라. 저출산 대책으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여러 근본적인 대책과 사회적 변화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 노력할 생각이 없다면, 출산지도 수정이니 뭐니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으시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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