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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 제16호

거꾸로 가는 핵안보정상회의

  • 이준혁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장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전 세계인이 함께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인류는 반세기 동안 핵전쟁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냉전이 끝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1만여 기가 넘는 핵무기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강 핵보유국 현직 대통령의 ‘핵 없는 세상으로 가자’는 연설은 지지를 얻기 충분했다.

오바마의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각국 지도자들이 모여 2010년부터 올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핵안보정상회의’를 가졌다. 6년이나 논의를 했으니 이제는 핵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공문구에 불과한 핵물질 보안조치

지금까지 핵안보정상회의가 강조해온 것은 핵물질, 핵시설의 보안이다. 이는 핵 또는 방사능 물질이 불법 거래되거나 도난당해 테러에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벌어진 벨기에 브뤼셀 테러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핵연구개발 책임자의 자택을 감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핵물질 보안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힘을 실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재 존재하는 군용 핵분열 물질의 83퍼센트는 아무 관리지침 없이 방치 중이다. 군사보안이라는 이유로 관리 실태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늘어가는 고위험성 방사능 물질과 각국이 소유한 플루토늄 재고까지 더하면 관리해야 하는 핵물질 양은 매우 많다.

핵시설과 핵물질의 국제적 보안협력을 위한 핵물질방호협약(CPPNM)은 핵안보정상회의 때마다 강조된다. 하지만 11개 참가국들이 비준을 미루면서 시행되고 있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물질 안전 확보 지침’ 역시 논의는 되었지만 단순 권고사항이라 강제성이 없다. 위험천만한 핵물질 관리 조치는 각국의 협력을 촉구하는 것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핵물질 안전을 핑계로 또 다른 군사행동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 확산 방지와 수출 통제를 호소하는 UN안보리 결의안 1540호가 조속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참가국들에게 호소해왔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되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를 제도화시킨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단 PSI는 의심만으로 선박, 항공기를 군사적 수단을 이용해 검색, 나포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한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핵물질의 안전한 통제를 빌미로 군사적 조치를 계획하는 것과 다름없다.
 

핵보유국의 패권은 인정!?

반면 이미 존재하는 무기급 핵물질의 감축과 폐기는 실효성이 없다. 지난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2013년 말까지 고농축 우라늄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자발적으로 제시하도록 권고’가 이뤄졌지만, 어떠한 강제조치도 없었다. 게다가 자발적 감축의 경우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얼마든지 반환이 가능하다.

실제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이스라엘과 헝가리에 있던 고농축 우라늄을 돌려받은 사례가 있다. 당장에는 핵물질을 감축하더라도, 얼마든지 돌려받아 핵 개발과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감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세계 핵무기의 95퍼센트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010년 전략핵무기를 1550기로 감축하는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를 맺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난 2013년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미국과 갈등 끝에 핵안보정상회의에 불참했고, 심지어 핵무기 감축까지 거부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핵무기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실전에서 사용가능한 핵무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전략핵무기보다 파괴력은 다소 떨어지는 소형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핵무기 운반체 개발 역시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전술핵무기와 미니트맨Ⅲ 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핵보유국들의 핵 능력은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규제 조치는 전무한 수준이다.
 

핵 강대국에 면죄부를 쥐어준 핵안보정상회의

네 차례에 걸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강대국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무기와 핵물질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핵 테러에 사용될 연료를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절멸의 무기에 집착해온 핵 강대국 지도자들, 그들과 결탁해 핵 발전을 지속시킨 핵 산업계였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그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경고장이었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는 각국 지도자들에게 핵 폐기를 호소하기는커녕 핵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천명했지만, 지금 세계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좌측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오바마, 세계 민중을 상대로 한 거대한 거짓말을 폭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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