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6/03 제14호

단결로 일군 10년, 우리는 여전히 도전 중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박명석 지부장 인터뷰

  • 황수진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서경지부)라는 조직 이름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지역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을 본 적 있냐”고 묻는다면 무릎을 탁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특히 간접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진짜 사용자’의 책임회피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쉽지 않고, 불안정한 고용 탓에 쉽게 조직이 와해되기도 한다. 더 열악한 조건에 놓인 노동자들일수록 뭉쳐서 권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서경지부의 활동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서경지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서울지역 대학들은 ‘서경지부’라는 이름만 들어도 학을 뗀다. 그만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조직 규모도 놀랄 만큼 성장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경지부의 역사를 돌아보며 비결을 찾아보자.
 
 

기업의 울타리 넘어

2006년 11월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내 산별노조인 공공노조가 건설되었고, 업종과 기업을 넘어 지역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하기 위한 단위로 지역지부가 설계되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도 이 시기에 출범했다. 그런데 서경지부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뿌리는 2001년 11월에 출범한, 시설관리노동자들의 전국 조직인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이었다. 신천개발(현 C&S자산관리), 동우공영 등 건물의 시설, 미화, 보안을 관리하는 전문업체들의 노조를 모아 출범한 조직이었다.

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에 따르면 당시 기업별 노조만으로는 발전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시설관리노동자들을 모으는 전국적인 업종노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대학 사업장이 많지만 당시엔 대부분 빌딩 노동자들이었어요. 그 후에 부산대, 고려대 등 대학사업장도 일부 생기고, 지자체 노동자들도 가입을 하게 됐어요.”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들 속에서 지도부의 갈등이 깊어졌다. 현실은 애초 생각했던 지향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지역 본부장 시절, 더 이상 내부투쟁으로 바꾸기는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조직에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료들은 제명도 당했다. 그러던 중 공공운수노조의 산별노조 전환 과정에 참여해야겠다는 판단으로 시설노조에서 나와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06년 7월이었다.

“기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노동권과 생활권이 만나는 활동, 지역운동을 통해 지역의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혼연일체의 전략조직화

출범 당시 6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현재는 2800여 명.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성장률이다. 조직 확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왜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했는지, 그리고 왜 하필 대학이었는지. 두 가지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사실은 서경지부가 먼저 세운 계획이라기보다는 2009년에 시작된 공공노조의 전략조직화 사업이 계기가 되었어요. 처음엔 전략조직화의 ‘전략’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먼저 고민하고 기획해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조직화’라는 의미라면 동의할 수 있었죠.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대학에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해보자고 얘기가 됐어요. 전국시설노조 시절부터 고려대, 부산대, 청주대를 조직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떠올랐던 거예요. 노동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대학생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빌딩출입 보안이 나날이 강화되는 반면에 학교는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점. 또 규모가 크다는 점. 여러 모로 장점도 많았어요.”
 

다양한 전략이 세워졌다. 평생을 노조는 빨갱이니 간첩이니 교육받으며 살아온 50~60대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노동조합 조직하러 왔습니다” 하면 아무리 자신의 노동조건이 열악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휴게실을 찾아가고, 노동조건을 설문조사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신뢰를 쌓았다. 각 대학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현장조직화팀’은 먼저 노조를 설립한 노동자들이 직접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팀이었다. 급하게 투입하기보다는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주체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계획은 실제로 큰 성과를 냈다.

사회적 여론이 뒷받침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은 청소노동자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충격적 사실에 주목한 캠페인이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적어서 내라고 하니까 밥 먹을 공간, 쉴 공간이 없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거예요. 겨울엔 꽁꽁 얼어버린 도시락을 뜨거운 물 말아서 먹는다고. 상상 초월의 얘기들이었죠. 그래서 바로 현장 조사를 했어요. 정말로 화장실 변기를 식탁 삼아, 뚜껑 덮고 박스 깔고 밥을 먹더라구요. 사진을 찍어서 언론에 뿌렸어요.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사회단체들과 함께 대대적으로 펼쳤죠."
노조, 학생, 사회단체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역량을 쏟았기에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청소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이었는데, 경비 등의 업종을 포함한 ‘대학사업장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발전되었다.
 
박명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지부장
 

집단교섭, 더 큰 단결

기업을 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조직과 교섭 체계에 반영되었다. 출범 전에는 업체별로 하던 교섭을 출범 후에는 사업장(대학)별로 묶었다. 조직단위도 그전엔 ‘C&S지부’처럼 업체 기준이었던 것을 ‘○○대 분회’처럼 사업장 기준으로 재편했다.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업체가 다르더라도 한 단위 소속이라는 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처음에 ‘나는 C&S 소속이다, 동우 소속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노동자들이 점차 ‘나는 연세대 소속이다, 이화여대 소속이다’ 이렇게 인식이 바뀌어갔어요. 원청의 책임을 주장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명칭 통합은 단순한 게 아니에요. 연대와 단결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기제죠. 예전엔 같은 사업장이더라도 교섭단위가 되는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단결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교섭단위도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구조로 묶어내기 시작했죠.”

한 대학에 용역업체가 5개라면, 5개 용역업체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교섭을 한 것이 서경지부가 2008년에 처음으로 시도한 ‘작은 집단교섭’이다. 더 나아가서 2011년에는 여러 개의 대학사업장을 지부 차원에서 묶는 ‘큰 집단교섭’을 성사시켰다.

“어쩌면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같은 청소노동자인데, 업체와 대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달라요. 똑같이 새벽에 출근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퇴근시간도 비슷한데 말이에요. 이것을 통일시키는 게 노동운동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맞고,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생각했던 거죠. 청소는 청소대로, 경비는 경비대로, 주차관리는 주차관리대로. 한번 통일시켜보자. 또한 청소·경비노동자는 왜 최저임금 받는 것이 당연시되는가, 같이 힘을 모아서 대폭 올려보자.”
 
그렇게 임금과 노동조건을 통일하고, 하나의 교섭에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성과를 얻는 것. 함께 단결해서 싸울 수 있는, 그래야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노조 가입의 유인도 더 커졌다. 새롭게 조직되는 사업장도 기존 조직들의 힘으로 무조건 집단교섭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신규 사업장도 기존 사업장과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데, 노조 가입을 안 할 이유가 있겠는가? 꾸준한 조직 확대의 중요한 비결이다.
 

신의 한 수, 홍익대 투쟁

2011년 새해 벽두부터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174명이 한꺼번에 해고되었다.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2010년에 겨울 홍익대분회가 설립되자 노동자들을 통째로 도려낸 것이다. 49일 동안 총장실과 총무처 점거농성이 전개되었다. 시민사회와 학생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회적 지지 여론이 형성되었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도 농성 지원 물품이 도착했고, 외국에서도 지지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결국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고용승계를 쟁취했다. 서경지부에게는 단지 한 사업장의 승리를 넘어서는 뜻깊은 투쟁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래요. 당시 홍익대 이사장이 없었더라면 우리 전략조직화 사업과 집단교섭이 탄력 받지 못했을 거라고. 홍대 투쟁을 거치면서 조직이 엄청나게 확대되었어요. 일단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까 여러 대학에서 노조 만들고 싶다는 상담이 들어왔구요. 인근에 있는 대학 분회들이 큰 자신감을 얻어서, 홍대 투쟁 끝나고 바로 이어서 연세대분회가 32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어요. 바로 이게 최초의 집단교섭 파업이었어요. 그 힘으로 집단교섭을 성사시켰죠.”

처음 집단교섭을 추진할 때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홍익대 투쟁을 지켜본 다른 대학과 용역업체들에게 학습 효과가 생겼다. 절대 홍대처럼 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연세대에서는 임금과 단협만 교섭한 게 아니라, 한진중공업 투쟁에 용역깡패들을 공급한 반노동 업체를 포함해 악덕업체 3개를 퇴출시키기도 했다.
 

노조 바깥에도 부는 변화의 바람

법정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어버린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서경지부는 최저임금을 훌쩍 뛰어넘는 시급을 쟁취했다. 집단교섭 투쟁과 캠페인, 끊임없는 조직화가 결합된 역동적인 운동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홍익대 투쟁의 영향으로 2012년에는 노동부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서경지부 집단교섭에서 결정된 시급을 최저임금 결정에 고려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서경지부 투쟁의 성과가 지부 조합원들의 임금 뿐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였다.
 
2013년에는 한예종분회가 설립되었다. 현재는 전 직종 조직률 99퍼센트를 자랑한다.

“그때 전화가 많이 왔어요. 서경지부 멋지다, 대단하다고. 저는 한편으로 좀 겁이 나기도 했는데, 아 이거 까딱 잘못하면 우리 서경지부가 저임금 노동자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도 있구나. 잘 해야 하는구나. 그런 책임감이 들었죠.
캠페인 사업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었어요. 삼성이나 아시아나항공 건물, 의료원 건물 등에서 휴게실 공간을 다 새로 개보수했다고 들었어요.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많이 생겼고요.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도 상당한 혜택을 본 것 같아요.”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등의 노동이 하찮은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도 중요한 기여다.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더 이상 ‘도심의 유령’이 아니다.
 

빌딩·공공기관·지자체…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다

서울지역 대학사업장은 이미 거의 다 노조가 생겼고, 집단교섭을 진행한 지도 6년째다. 안정화 단계이지만 오히려 그에 따른 고민도 있다.

“기존 집단교섭에서 교섭을 진전시키는 투쟁 방식은 둑의 약한 곳에 구멍을 뚫으면 결국 와르르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였습니다. 한 곳을 잡아서 집중적으로 투쟁해 뚫어내면, 다른 대학들도 줄줄이 뚫리게 됐거든요. 근데 이제는 용역업체나 대학도 능구렁이가 다 되었어요. 점점 더 배째라 식이죠. 요즘은 대학이 많이 기업화되어서, 사회적 위상에 개의치 않고 마치 자본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요. 이번에 각 분회 임원들이 많이 바뀌어서 새롭게 교육하고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상황은 쉽지 않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 해나가야겠죠.”

대학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사례에 주목하긴 했지만, 그것이 서경지부의 전부는 아니다. 빌딩 노동자들도 있고, 공공기관과 지자체 노동자들도 있다.

“빌딩은 대부분 사업장마다 소수로, 여러 군데에 흩어져있다 보니 노조 운영이나 신규조직화가 쉽지 않아요. 물론 확장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존 조직들을 묶어내는 사업이 우선인 것 같아요.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새로운 조직화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계획이 구체적이진 않지만, 어떻게든 진행을 할 겁니다.”
 
 
이미 작년부터 서울수도사업소 검침원 노동자, 서울시 노상공영주차장 노동자, 도시가스 검침 노동자 등 지자체 노동자 조직화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지자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자체 간접고용의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이 목표다.

2016년은 서경지부가 열 살이 되는 특별한 해다. 서경지부의 전략적 기반을 다지고, 전체 조합원의 힘을 모으는 해로 만들자는 것이 박명석 지부장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10주년 맞이 대토론회를 개최해 지난 10년을 평가하고, 혁신 방향을 토론하고, 새로운 전망을 세울 예정이다. 또 2800명의 조합원이 한 자리에 모여 결의를 다지는 단합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외침은 우리 일상에 그림자처럼 늘 함께 있는 노동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게 했다. 간접고용이라는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빛나는 희망을 만들어온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나눠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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