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4/11 창간준비1호
이제 지역본부 운동도 혁신할 때
민주노총 첫 임원 직선제 선거가 시작되었지만 현장의 관심과 기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관성화된 활동, 선거 관행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새롭고 혁신적인 쟁점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 때문도 있다.
산별노조 강화, 정치세력화, 조직혁신, 미조직사업 강화, 투쟁전선 강화 등이 매뉴얼화된 민주노총 혁신 과제들이다. 지역본부 운동도 마찬가지다. 지역본부 강화, 역할과 위상 재정립은 십여 년간 민주노총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합의도, 추진 동력도 만들지 못했다.
지역본부에 대한 주목, 그러나 현실은…
최근 지역본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운동 세력마다의 다양한 입론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 운동이 침체되면서 그 역할을 기능적으로 보완해야하는 현실적 필요(상대적 대안)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또한 총연맹과 산별노조의 지도집행력이 약화되면서 각 정파들이 지역본부 운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지역본부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지침을 회피하고자 하는 정파적 이해의 도피처로 활용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원. 산별노조 가입을 거부하고 같은 정파가 집행부로 있는 지역본부 직가입. 지역본부가 산별 지역조직과 경쟁적으로 미조직 사업 진행. 이런 일이 지역본부에서 빈번히 발생한다. 대의원대회, 임원선거, 의결구조 운영이 집행부의 반대 정파에 의해 수년간 보이콧된 지역본부도 있다. 지역본부의 정파 갈등은 산별노조보다 적나라하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현재 지역본부의 조직 위상이 야기한 측면도 있다. 지역본부는 산별 지역조직 간의 협의로 운영되기 때문에 조직 규범과 운영 원칙이 매우 느슨하다. 또한 조직 운영이 파행되더라도 각 산별 지역조직들이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이번 선거가 지역본부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논의와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선거에 나서는 각 운동세력들은 그에 대한 책임있는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저마다 다른 지역본부 사업, 위상 합의가 필요
그런데 지역본부마다 집중하는 사업이 다른 게 현실이다. 지역 투쟁의 구심, 지역 활동가들의 교육·훈련, 미조직 사업, 산별 지역조직의 사업 지원, 지자체 대응 사업, 진보정당 지원 활동 등 지역본부마다 집중하는 사업이 차이가 크다.
산별노조 운동과 지역본부 운동의 통일적 발전을 위해서는 핵심 사업 중심으로 지역본부의 표준화된 위상을 합의해야 한다. 현재 변화된 민주노총 내외부의 조건을 반영하는 가운데 지역본부의 핵심 역할도 재규정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산별노조가 가진 권한과 역할을 대거 지역본부로 이관하는, 높은 수준의 조직 구조 변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의 조직 구조, 산별노조를 만들기 위해서 십여 년간 논쟁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과정을 되짚어 본다면 타당성과 현실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더욱이 민주노총이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운동이 실패로 귀결되고 있는 현재에 조직 구조의 대대적 혁신을 위한 현장의 결의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현재로써는 불안정한 산별노조 체계를 더욱 후퇴시킬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 보인다.
지역본부, 지역 투쟁의 중심 역할을 강화하자
총노동 전선 지도부로서의 민주노총 역할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낮은 조직률, 조합원 보수화, 운동 역량 소진, 사회적 위상 추락 등이 종합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 지도부 역할에 대해 회의가 많다. 반면 실질적인 총파업 조직 등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한 찬반을 떠나 민주노총이 한국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이자 가장 큰 대중 조직이고, 제한적이나마 큰 대중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존재 조건으로부터 부여받는 역할을 회피할 수는 없다.
지역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더욱 크다. 서울에 비해 사회운동의 역량과 자원이 협소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에 부여된 역할이 많다. 투쟁사업장에 대한 지도·지원은 이미 지역본부의 중점 역할이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묘책은 없다. 산별노조의 권한과 책임을 기능적으로 이양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지역본부가 지역 노동자 투쟁의 지도부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한다는 것은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과정이자 결과물일 것이다.
지역본부가 조직화 사업의 센터가 되자
민주노총이 추진하고 있는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많은 산별들이 자체적으로 조직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사업 집행은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대부분 지역본부들이 상담 센터를 두고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 경험이 오래된 지역본부의 경우 상담을 통해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노동자 풀을 확보하고 있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민주노총의 우군을 확대해 나가는 데 지역본부의 상담 사업이 차지하는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역할을 종합하여 노동자 조직화 사업 센터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인적, 재정적 자원의 확충이 필요하다. 조직활동가들 간의 공동의 교육·훈련. 조직화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 내 산업 부문에 대한 연구·조사 및 정책 지원 사업. 상담을 늘리고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 사업. 상담으로 형성된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사업 기획과 체계적인 관리. 이런 것이 기본적인 사업 과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조직화 사업에 대한 지역 노동운동의 목표와 전략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각 단위의 조직화 사업이 개별 조직과 산별노조의 조직 확대 뿐 아니라, 지역 노동운동의 조직률을 높여내고 지역 내에서 민주노총의 조직적 위상을 높여내는 운동의 과정이라는 점에 대한 산별노조 지역조직, 조직활동가들 간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지자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지자체 대응은 지역본부의 주요 사업이다. 지역본부 집행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투쟁이냐 교섭이냐는 노선 차이가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본부에서 논란이 되었던 지자체 재정 지원 문제에 대한 판단 외에 현실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만큼 지자체 대응에 대해서는 어떤 지역본부도 사업 정형과 개입력을 가지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일면적이다. 한국의 정치·경제 구조 상 지자체의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력과 대응 정책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역 노동 정책이라 할 만한 것도 특별히 없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할 공통 의제가 별로 없다. 또한 민주노총이 지역에서 대표성을 자임할 정도로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지 못한 현실도 있다.
민주노총이 지자체를 상대로 요구하고 싸워야 할 것들은 많다. 지자체가 직간접적 사용자가 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권, 지자체가 정책적·제도적 권한을 다소나마 가지는 건설 부문, 산업단지 문제, 그리고 지역 단위로 제공되는 각종 공공서비스와 노동자 복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일부는 조직화 사업에서 그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사회를 만들어가는 운동의 측면에서도 지자체를 상대로 제기할 요구는 많다.
지자체 대응 사업의 역량과 힘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진보정당 당원 확대, 선거 지원이 중심이었던 지역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 전환을 고민해 볼 수 있다. 지자체 대응 사업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시민운동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추진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나 정치세력화 운동이 기존처럼 추진되기 어려운 조건에서 지역 정치운동의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활동가 육성을 위한 교육훈련장이 되자
현재 민주노총에는 활동가를 재생산하기 위한 교육·훈련 구조가 없다. 정파조직 내부의 교육·훈련도 대부분 붕괴되었다. 교육 사업은 주로 산별노조의 역할인데,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산별 계급의식을 강화하려는 목표에 따른 배치였다. 그러나 지금 산별노조 상황에서 내부 교육으로 활동가를 재생산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산별 계급의식의 실체도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민주노총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기 위해 활동가 육성은 꼭 필요하다. 따라서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훈련 구조가 총연맹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총연맹의 주관 하에 산별노조, 지역본부, 교육단체들이 모여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자. 그리고 실질적인 집행은 지역본부가 책임지고 산별 지역조직들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취지와 목표에 부합할 것이다.
지역운동이 산별운동의 한계에 대한 절대적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과 업종의 벽을 넘어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지역운동은 분명히 유의미하다. 새로운 계급의식 형성, 노동운동의 새 주체 형성을 목표로 활동가 교육·훈련이 지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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