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과 사회
- 2016/03 제14호
보건복지부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까닭은?
건강보험료 인상은 누가 결정할까?
올해부터는 건강보험료가 0.9퍼센트 인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2009년 65퍼센트에서 2013년 62퍼센트로 하락했고, 건강보험 재정은 누적 흑자가 17조 원에 이른다. 매달 건강보험료를 내고, 병원에 가면 당연한 것처럼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만, 건강보험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우리가 내는 보험료와 병원으로 가는 비용(요양급여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건강보험 정책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결정된다. 노동자와 사용자, 의약계, 정부가 모여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건정심에서는 보험료와 요양급여비, 건강보험 보장의 범위를 둘러싼 논의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는 건정심 구성을 둘러싼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다.
추천 단체의 일방적 교체
지난 1월 27일 보건복지부가 제6기 건정심 위원을 확정했다. 위촉된 24명의 위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활동하게 된다.
이번 건정심 위원 위촉 과정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 위원 8명 중 3명에 대한 추천 단체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6기 건정심 구성을 위한 공문을 발송하면서, 기존에 위원을 추천했던 민주노총, 한국노총, 소비자단체협의회를 배제하고 대신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환자단체연합회를 선정했다. 기존 위원들의 활동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단체를 변경한 것이다.
보건의료단체 및 사회단체들은 보건복지부를 비판하면서 단체 변경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3개 단체들은 보건복지부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위원을 추천했다.
건강보험 운영을 좌지우지
건정심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의거해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된 위원회로, 건강보험 운영 전반을 관장한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건강보험 운영의 중기 계획을 수립하는데, 건정심은 이를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요양급여비용 및 의약품·치료재료의 가격을 매년 결정하며, 건강보험료 역시 결정한다. 요양급여비용과 건강보험료의 결정이 건강보험 운영에서 핵심적이므로, 사실상 건정심이 건강보험 운영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정심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건강보험 가입자(근로자단체 2인, 사용자단체 2인,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자영업자단체 각 1인) 및 공급자(의료계 6인, 약업계 2인) 대표 각각 8인, 정부를 포함한 공익 대표 8인(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각 1인, 전문가 4인)을 포함하여 총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는 국민건강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강보험정책을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여 결정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을 통해서 의료 이용을 보장받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의 대부분이 국민이 낸 보험료로 마련되므로 가입자 측 의견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 대표성을 약화시킨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건강보험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는 건정심 위원 구성의 기본 원칙을 져버린 것이다. 건정심 가입자 대표 8인은 각각 직장가입자 및 지역가입자를 대표한다. 근로자단체 2인 및 사용자단체 2인이 직장가입자를 대표하며,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자영업자단체 4인이 지역가입자를 대표한다. 따라서 양대노총이 건정심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근로자단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직장가입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산업과 업종을 초월하여 노동자의 이해를 가장 폭넓게 반영하는 조직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기 때문이다.
실제 건정심이 처음 구성된 2002년 이래 2015년까지 근로자단체 위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추천을 통해 결정되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이 각각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단체인 점과 보건의료와 건강보험 분야 전문성을 고려해 의료 관련 노조로 위원 교체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이들은 직장가입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와 건강보험 분야의 전문성을 고려해 교체했다는 주장 역시 문제다. 보건의료 분야, 특히 건강보험 분야에서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충분한 의료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급자 측에서 추천하는 8인의 위원이 의약계 인사들로서 전문성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가입자 위원은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이해관계를 폭넓게 반영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건강보험 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중요하다.
비판하면 배제하는 행정 독재
보건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건강보험 정책 결정을 정부의 의도대로 관철시키기 위해 비판 세력을 배제한 것이다. 배제된 3개 단체는 작년 건정심에서 차등수가제 폐지, 입원료 본인부담금 인상, 의약품 가격 인상 등 정부 정책 추진에 반대했던 단체들이다.
나아가 건강보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병원자본 및 제약자본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업종 노동조합으로 위원 추천 단체를 변경했으며, 일반 소비자를 대표하는 소비자단체협의회 대신 특정 환자군을 대표하는 환자단체연합회로 교체함으로써 제약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쉬워졌다는 것이 그 근거다. 실제 해당 단체들의 입장과 무관하게 객관적인 상황을 보면 이러한 비판은 합당하다.
사회적 논의 과정 없이 보건복지부가 독단적으로 위원 교체를 결정했다는 점 또한 심각한 문제다. 건정심은 2001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구성되었다. 당시 건정심 위원 구성 문제는 정부와 의약계,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첨예한 쟁점이었으며, 이로 인해 건정심 발족이 늦춰지기까지 했다. 건정심 구성은 출발부터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이번 위원 교체 과정에서 일체의 의견 수렴이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건강보험 정책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건정심의 정당성과 대표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대표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조치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 없이 위원을 추천한 해당 3개 단체들의 대응 또한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건정심에서 가입자 대표성을 약화시키려는 정부의 의도를 승인해주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로서 건정심은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익위원 선정 및 가입자 대표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과도했고, 그로 인해 가입자 대표의 영향력이 작았다. 보험료에 대한 결정까지 하는 등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를 무력화시키면서 과도한 권한을 가진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또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결정하는데 의료자본 등 공급자가 개입한다는 점, 다른 정부위원회와 달리 회의록 작성과 공개가 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등 많은 문제가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가입자 대표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건강보험 정책 결정구조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방향은 건강보험 가입자, 즉 국민의 이해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건강보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급자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건복지부는 독단적이고 무원칙한 위원 교체를 사과하고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에 맞게 건정심 위원 구성을 되돌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