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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 제10호

폭스바겐의 사기극과 기후변화

현상유지를 넘어 진짜 변화를 찾기

  • 구준모 편집실장

폭스바겐이 저지른 희대의 사기극

친환경, 하이테크, 신뢰를 표방하던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은 충격적이었다. 통상 리콜 사태의 원인이 되는 결함에 대한 은폐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속임수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사기행위였다. 더군다나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을 넘보던 독일의 폭스바겐이 그 주인공이라니.
 
알려진 내용은 이렇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환경 기준을 회피하기 위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운행 정보를 분석해서 자동차가 테스트 중인지 주행 중인지를 파악하고, 테스트 중으로 인식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가동하고 주행 중이면 가동하지 않는 것이다. 주행 중에는 테스트 중일 때보다 질소산화물이 10배에서 최대 40배나 더 많이 배출되었다.
 
 
질소산화물(NOx)은 일산화질소(NO), 이산화질소(NO2), 아산화질소(N2O) 등을 칭하는 말로, 연소과정에서 공기 중의 질소가 고온에서 산화되어 발생한다. 그중 일산화질소와 이산화질소는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스모그와 산성비를 발생시키며, 특히 폐암을 발생시킬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에 포함되었다.
 
유럽연합은 정책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가솔린엔진보다 이산화탄소를 덜 발생시키고 연비가 좋은 디젤엔진을 권장해왔다. 하지만 디젤엔진은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발생시키는 단점이 있었다. 유럽연합은 단계적으로 더 강력한 배출가스 환경기준을 적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런 정책 속에서 ‘클린디젤’이 친환경 차량으로 확산되어 온 것이다. 최근 유럽의 디젤차 판매 비중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절반을 훌쩍 넘고, 영국, 독일에서 절반 가까이 된다.
 
폭스바겐의 사기극은 클린디젤 신화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 전에도 디젤엔진이 정말로 적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지 의구심이 있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더라도 주행과정에서 그 성능이 크게 저하되어 실제로는 기준보다 훨씬 많이 배출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올 8월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 수입 디젤 차량의 일부가 기준의 8배 정도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의 교통환경연구소의 검사에서는 현재 유럽연합의 환경기준(유로6)을 만족하는 디젤 차량 4대 중 3대가 실제 주행시에 허용기준보다 최대 2.8배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주의 해법의 실패

이번 사건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주의 해법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날의 생태위기의 원인은 체제 내부의 본질적 속성에 있다. 따라서 기술적 해법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 간 협력에 의해 환경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1987년에 체결된 ‘오존층 파괴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다.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가스(CFC)의 생산과 사용을 단계적으로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는 발효된 지 25년을 넘기면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에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자본주의 생산력의 동력원인 석탄, 석유를 사용하는 에너지 시스템에 의한 것인데, 이것을 바꾸는 것은 프레온가스와 같이 하나의 화학물질을 바꾸는 것과 달리 매우 복합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덜 소비하고,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연료나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했던 노력들은, 미시적인 단위에서는 일부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나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계속 실패하고 있다.
 
자동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승용차의 평균 연비가 개선되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엔진이 개발되고, 연료전지와 같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한 차량이 시험 중이다. 각국 정부는 이런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소비자에게 친환경 차량 선택에 대한 경제적·도덕적 유인을 제공하면 그린카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기술주의 해법과 시장주의 해법은 한 세트가 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차량 대수의 급격한 증가라는 추세는 바뀌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판매에 사활을 걸고 있는 자동차업계, 이들과 결탁된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동차 소비 증가를 부추기고 있으며,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과 문화는 자동차 없이는 ‘정상적’으로 사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0억 대를 돌파한 전 세계의 차량 수는 1970년 이후 15년마다 두 배가 될 만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개별 차량의 연비를 몇 십 퍼센트 개선해도, 총량 측면에서 보자면 석유 소비나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기술주의 해법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를 계속 발생시킨다. 온실가스를 잡으려다가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배출하는 클린디젤에 발목을 잡힌 게 대표적이다.
 

초라한 몰골이 되어버린 유엔기후변화당사국 총회

이런 악순환은 기후변화를 다루는 지배적인 해법 속에서 잉태되었다. 1995년에 시작돼 매년 12월에 열리는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공조의 틀을 만드는 거대 회의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총회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게 의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할당했다. 이를 달성할 수단으로 시장원리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을 도입하고, 목표 시한을 2012년으로 정했다. 따라서 1997년부터 2012년까지의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 구조를 ‘교토 체제’라고 불렀다.
 
하지만 교토에서 설정된 감축 목표는 지구적 기후변화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제시된 해법들 역시 탄소시장과 기술개발에 대한 환상만 키웠을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동구권 붕괴로 동유럽 경제가 몰락하면서, 이 지역에서 여유분의 온실가스 배출권리가 생겼고 이것이 시장을 통해 거래되었다. 배출권거래제도와 같은 탄소시장 해법은 이렇게 실제 온실가스 감축과는 상관없이, 거래를 통해 목표량을 달성했다는 신기루만 만들어 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2013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 방안(포스트-교토체제)을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서로 다른 구상을 그리며 반목했고, 특히 미국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된 중국을 핑계 삼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새로운 합의에 실패하자 2020년까지 교토의정서를 연장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주요국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실효성에 의문만 더한 꼴이 되었다.
 
올해 열리는 21차 총회는 (연장된 교토체제가 끝나는) 2020년 이후에 적용될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결정하기로 한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론 교토체제보다 더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온실가스를 절대량 기준으로 감축하지 않고, 각국이 제출한 자발적 감축목표(INDC)를 조정하는 것으로 대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기대 속에 출범한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빈 깡통으로 전락하고 있다.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조합의 전략

이렇게 실패가 거듭되자 말 뿐인 협상과 현상유지(기술주의, 시장주의) 해법을 비판하고,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기후정의운동이 부상했다. 2007년 ‘지금 기후정의를!(Climate Justice Now!)’이라는 국제연대체가 결성되었고, 2010년 볼리비아에서는 125개 국가 2만 여 활동가들이 참가한 기후변화 민중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민중협정이 채택되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기존의 국제적인 노동조합운동은 국제회의나 국제기구의 틀 내의 로비와 협상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몇 마디 문구를 문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기술주의적이고 시장주의적인 해법의 지배 속에서 쉽게 빛을 바래곤 했다.
 
기존 전략에 관한 논쟁 속에서, 노동조합이 녹색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났다. 2012년 국제노총(ITUC)과 지속가능한노동(Sustainlabour)이 조직한 회의에서 격렬한 토론 끝에 발표한 성명은 “이윤에 기반을 둔 생산과 소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운수노련(ITF)와 국제건설노련(BWI)도 시장주의 해법을 비판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2013년에는 30여 개의 노동조합이 모여 ‘에너지민주주의노동조합네트워크(TUED)’를 결성했다. TUED는 에너지 체제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공적인 소유권, 민주적인 통제와 참여, 노동조합의 역할에 주목하며 이를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나아가 이 과제가 노동조합이 전통적으로 가졌던 노동권 사수, 민영화 저지·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한 운동의 목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동조합운동이 목표로 하는 사회변화의 한 과정에 기후정의운동의 과제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런 노동운동의 모색은 한국에도 전염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등이 주최해 10월 27일 열린 ‘에너지 공공성·전환의 대안 모색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서 TUED 활동가와 영국, 캐나다, 필리핀 등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이런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클린디젤의 신화를 정말 넘어서려면 이런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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