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생태보다
  • 2016/01 제12호

파리 기후변화총회는 과연 성공적이었나?

  • 구준모 편집실장
 
지난 12월 12일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파리협정’ 합의로 막을 내리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전 세계를 위한 전환점”(오바마 미국 대통령), “기념비적 승리”(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인류의 중요한 도약”(가디언), “화석연료로부터의 탈피”(로이터) 등 인플레이션된 찬사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결정한 이번 파리협정의 실상을 안다면 인사치레성 박수조차도 아까울 뿐이다.


사기 계약서라도 싸인하면 성공?

어찌 보면 찬사는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파리 기후변화총회에 대한 기대가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 환경운동의 대표적인 한 활동가는 지난 11월 말 열린 토론회에서 “이번 회의가 성공한다면 환경단체들이 할 일이 별로 없어질 것”이라며 이런 정서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런 태도에는 2009년 코펜하겐 총회에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규제 상태에 놓였던 국제적인 기후변화 체제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서 파리 총회는 시작 전부터 ‘뭐든 합의하기만 하면 성공’이라는 낙관이 존재했다. 아무리 부족한 결과라도 무규제 상태보다는 낫다는 소박한 태도가 만연했던 것이다.
 

‘자발적 감축’의 속임수

그러나 협상의 ‘좌절이냐 진척이냐’의 틀에 갇혀서는 오늘날 기후 위기의 현실 속에서 파리 총회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는 언론과 각국 정부들이 말하지 않는 파리협정의 진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선 파리협정은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파리체제는 각국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할 것인지에 관한 자발적 목표(INDC)를 제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번 총회에 제출된 국가별 자발적 감축 목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등의 주요 배출국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더 증가시키겠다는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또 미국,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브라질, 호주 등의 주요 배출국들은 2030년까지 매년 1퍼센트 내외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미약한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이렇게 제출된 목표들을 종합해보면 이번 세기 말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은 기후과학자들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2℃ 이하가 아니라 3℃ 이상이 된다.
 

제멋대로 기준

이는 온실가스 배출이 심각하게 증가하는 데도 ‘감축 목표’의 설정은 국가별로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현상유지시의 ‘배출 전망(BAU)’을 기준으로 삼은 국가들은 BAU 기준으로 20~30퍼센트대의 감축을 약속했지만, 2030년의 실제 배출량은 더 늘어나게 된다. 중국과 인도는 탄소집약도(에너지 소비당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역시 실제 배출량을 더 늘리는 공약이다.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등 절대적 감축을 내세운 국가들의 목표 역시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다. 이들은 역사적 책임에 따른 과감한 감축 의무를 회피하면서 자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감축량을 포장하는 데에 급급했다. 미국은 2005년 대비 26퍼센트의 감축을 제시했지만 2014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미 2005년보다 9퍼센트 줄었다. 유럽연합은 1990년 대비 40퍼센트 감축을 약속했는데 현재까지 이미 20퍼센트가 줄었다. 러시아는 1990년 대비 25퍼센트의 감축을 약속했는데 이건 놀랍게도 지금보다 30퍼센트를 더 배출하겠다는 목표다.
 

탄소시장을 위한 말장난

파리협정의 감축 목표는 제멋대로 일뿐만 아니라, 방법도 잘못됐다. 협정에는 탄소시장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없지만, 탄소거래를 통한 자국 감축목표의 달성을 용인하고 있다. “감축 결과의 국제적 이전”이라고 완곡하고 기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또 교토체제(교토의정서에 따른 1차 의무감축 기간)의 청정개발체제(CDM,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으로 달성한 실적을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량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탄소거래에 대해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지속가능한 개발 지원에 기여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대 환상 속에서 설계되었던 탄소시장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탄소시장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협정문에는 말장난을 가득 담은 것이다. 새로운 국제적 탄소시장의 구체적인 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파리협정에는 새로운 탄소거래 체제를 만들 여지를 열어놓았다.
 


서커스와 실종된 대의

이번 파리협정에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2℃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는 3℃ 기온 상승에 합의해놓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문구를 넣은 것이다. 파리 총회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잇속을 챙기면서 지구를 망가트리는 범죄자들로 내몰리는 것만은 피하고자 했던 정치인들, 유엔의 상징적인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관료들, 196개국이 모인 대형 이벤트를 흥미롭게 관전한 언론들이 이번 파리 총회의 주역이었다. 물론 배경에는 화석연료 자본주의의 생존을 연장하고, 이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이해관계로 얽힌 자본이 똬리를 틀고 있다.

국제 농민운동 단체인 비아캄페시아는 “파리협정의 주요 수혜자는 초국적 자본”이라며, 이번 총회는 “미디어 서커스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한판의 서커스가 끝난 후, 천막 밖에는 여전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교육청 교육공무직 교육공무직본부 영양사 인천시교육청 위험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