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5/07 제6호

철저한 준비와 초기 집중으로 무조건 이긴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진홍 지부장 직무대행 인터뷰

  •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사례는 금속노조 내에서 이미 유명하다. 끊임없이 신규 조직화를 시도했고, 실제로 조직 확대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주지부의 성장은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이어져 지금도 진행형이다.

 

조직화를 통한 분위기의 반전

2001년에 9개 지회, 조합원수 약 1600명으로 출발한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2015년 현재 22개 지회, 약 3400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손에 쥔 것을 지키기도 힘들다는 시대에 두 배 넘는 성장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실은 지부 출범을 함께했던 9개 지회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지회는 단 하나(현대아이에이치엘지회)뿐이다. 다시 말해, 현재 22개 지회 중 21개 지회는 모두 2001년 이후 가입한 사업장이다. 이 수치는 경주지부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동시에 경주 지역도 정부와 자본의 ‘금속노조 때리기’, 즉 노조파괴 공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10년 경주지부 소속 발레오만도지회는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업체와 손잡은 사측의 전략 앞에 무너졌다. 99일간의 직장폐쇄와 실망스러운 현장 복귀, 이어지는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은 지역의 투쟁 분위기 자체를 침체시켰다. 정진홍 직무대행은 “발레오만도지회가 무너지니까 탈퇴 러시가 붙었습니다. 여섯 개 공장에서 1000명이 탈퇴했습니다. 그땐 정말 죽을 맛이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역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않으면 지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경주지부는 과감하게도 더 시야를 넓힌 신규 조직화 전략을 택했다.

 

“지역 분위기라는 게 결국 두 가지입니다. 자본과 투쟁을 통해 노조 내부의 기운을 전환하는 게 있고, 미조직사업과 함께 조직을 확대하면서 지역 분위기를 바꿔내는 게 있거든요. 이 두 가지 말고는 없습니다. 발레오만도 투쟁 이후 경주지부는 소속 지회에서 마음먹고 덤벼드는 자본가에게 다 패배하였습니다. 판판이 깨지고 탈퇴하고 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조직화로 돌파구를 마련하는그렇게 반전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죠.”

 

공포의 7번국도

경주는 일반적으로 관광도시라 알려져 있지만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과 인접해 자동차 부품사를 중심으로 한 공단이 많다. 경주지부의 주요 조직 대상은 7번국도 주변에 몰려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납품 자동차 부품사들이었다. 정진홍 직무대행은 “공포의 7번국도입니다. 현대차 자본이 치를 떤다 합니다. 이거는 저희가 하는 말이 아니고, 회사한테서 들었어요”라며 웃었다.

 

현대차에 직접 부품을 납품하는 이른바 ‘1차’ 부품사의 파업은 강력한 힘을 지닌다. 자동차 부품은 자체 부피가 커서 전자제품과 달리 재고를 쌓아두기 어렵다. 따라서 1차 부품사가 하루라도 파업을 하면 다음날 현대차 생산라인 일부는 재고 부족 사태를 겪게 된다. 현대차 생산라인이 멈춘다는 것은 곧 부품사로서의 생명이 끊기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장 입장에선 파업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조직된 곳이 대부분 납기가 타이트한 곳이었습니다. 이게 다 7번국도 주변에 있었어요. 여기를 우리 경주지부가 조직하고, 여차하면 틀어막는다 했으니까 현대차 자본이 7번국도를 싫어하죠. [경주지부 소속 지회가 있는 부품사인] 인지컨트롤스한테는 현대차 자본이 노골적으로 공장 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답니다. 조건은 딱 하나, ‘7번국도에서 벗어나라!’ 입니다.”

 

노조 설립과 동시에 파업

2008년에 조직된 다스지회 사례를 보자. 7번국도에 붙어있는 경주 외동공단에 위치한 다스는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1차 부품사다. 정진홍 직무대행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다스는 경주에서 ‘각하’의 공장이라고 소문난 곳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가 운영하던 공장이죠. 여기에 민주노조 만드는 건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죠.”

 

다스에는 18년 동안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가 존재했다. 노조위원장의 부정행위를 참지 못하고 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려던 이들이 해고되는 일이 세 번이나 있었다. 가입 상담 온 노동자에게도, 경주지부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고민 끝에 경주지부는 다스지회를 설립한 즉시 조합원 총회를 하고 파업에 들어가 회사로부터 노조를 인정받는 전술을 세운다.

 

“이런 무식한 방법 아니면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명박 집안 공장인데, 총회 소집 요청하고 지방노동위원회 가면 30일씩 걸리고, 그러면 그 안에 다 아작 나거든요.”

 

이는 몇 차례의 교섭과 파업이라는 법적 절차를 뛰어넘는 투쟁 전술이다. 이러한 전술은 타이트한 납기시스템이라는 자동차 부품사들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산라인이 멈추고, 금속노조 경주지부 전체가 확대간부파업을 선언하자 결국 사측은 금속노조를 인정하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일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 교섭에 임하겠다, 합의 불이행에 따른 조합의 단체행동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스지회 설립의 성공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날 밤 아산공장에 찾아갔습니다. 민주적으로 대화를 했죠. 식당에 불러가지고 ‘경주공장 총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이렇게 물으니 뭐 순순히 인정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나서 다스아산지회 130명이 충남지부에 편제됐죠.” 다스지회의 설립이 다른 지역의 공장에까지 퍼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례였다.

 

2차 부품사로의 확산

오리엔스, 에코플라스틱, 대림플라스틱공업, 다스, 디에스씨, 인지컨트롤스 등 현대차의 1차 부품사들을 대거 조직한 경주지부의 조직화 바람은 2차 부품사를 비롯한 소규모 공장에도 미쳤다. 소규모 공장 조직화에서도 핵심은 업체의 ‘약한 고리’를 찾는 것이다.

 

“수익성이 [2차, 3차 부품사로] 내려갈수록 안 좋단 말이에요. 그럼 사업자가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약하단 말이죠. 폐업이 가능한지 아닌지 봐야 되겠죠. 그런데 2차 벤더라고 하더라도 꼭 그 회사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거든요. 일을 독점적으로 한다거나, 그 독점적인 일을 폐업 후에 다른 데서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든가 하면 수익성이 낮더라도 폐업은 절대 못 해요. 현대차 자본이 손해를 봐야하는 그런 사업장들은, 자기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여기가 그런 곳이다’는 판단이 서면, 그 땐 밀어붙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겠다고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정진홍 직무대행은 “약한 고리는 다 있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대동산업이 그런 경우에 속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심으로 조직된 대동산업지회는 사장이 공장 이전을 하자마자 노조를 띄웠다.

 

“그때 대동산업 사장이 한 말이 이거였습니다. ‘공장 이전 전에 노조가 만들어졌으면 사업 안 하려 했다. 대출 다 받아 놓고 페인트칠 다 해 놓았는데’ 이렇게 자기가 박아놓은 돈이 있으면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자동차 부품사들 개별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파고 들어야 해요.”

 

 

승리하는 투쟁이 조직화의 핵심

정진홍 직무대행은 한 사업장의 노조를 튼튼하게 만들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조직화 사업의 핵심이라 말한다. 금속노조에 가서 잘 되었다더라, 혹은 망하고 해고되었다더라 하는 얘기는 주변 지역 미조직 노동자들 모두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노조의 투쟁은 그 주체들의 삶이 걸린 문제일 뿐 아니라 경주지부의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된다.

 

“지부별로 선전전 사업을 열심히 하는 지역도 있고 하던데, 저는 그런 거는 하되, 하여튼 하나 잘 만들어서 제대로 노동조합 세우고, 지지 않는 투쟁하고 이거에 최대한 ‘몰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담이 하나 들어오면, 그 사업장에 거의 상주하면서 모든 걸 다 쏟아 붓습니다. 어쨌든 ‘하나 세우고, 싸움을 이긴다!’ 이게 조직화의 핵심이라 생각해요.”

 

그는 이러한 방식이 경주라는 지역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한다. “한 사업장이 조직화되면 확 번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경주가 좁거든요. 서로 다 압니다. 한 다리 넘어서면, 후배, 동네 누구 친구, 이래가면서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문의도 편하게 하고, 연대도 좀 더 긴밀하죠. 그리고 임금 상승에 대한 욕구가 높습니다. 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이죠. 노동조합 만들면 임금 많이 올린다. 이런 거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이런 조건 때문에 경주지부의 조직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투쟁이 벌어졌을 때 지역 차원의 연대도 끈끈했다. 

 

“실제로 인지컨트롤스가 직장폐쇄 할 때, 인지컨트롤스지회에는 다스지회의 고향 선후배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스지회 조합원들이 항상 연대하고, 함께 있었죠. 쌀하고 뭐하고 해서 엄청나게 가져다줬어요. 후배가 투쟁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다스지회 동지들은 덩치가 커서 많이 먹습니다. 경주지부에서 인지컨트롤스지회로 피자 세 판 사오면, 두 판 반을 자기들이 먹습니다. 그래서 인지컨트롤스지회 동지들은 ‘연대왔다면서 쓰레기만 남기고 가냐?’ 그러면서 서로 놀죠.(웃음)”

 

원칙과 전략

정진홍 지부장 직무대행은 자신이 조직화의 원칙으로 삼는 것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 철저하게 준비한다. 상담에서 교육까지 정말로 세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려면 엄청나게 분석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자본이 노동조합에 승리하고 그 다음에 행하는 잔인한 폭력을 대중이 감내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참담한 짓을 현장에서 합니다.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세 번째, 초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초기 집중에 실패하면 다음 수도 엉망이 됩니다. 네 번째, 반드시 비정규직 의제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단계적 정규직화든 즉각 정규직화이든 방법은 놔두고,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건 노동조합 결성 초기에 해야 합니다. 그때는 됩니다. 조합원들도 이해하고 동의하거든요. 그리고 다섯 번째, 사업장 교섭위원들의 역량을 키운다. 우리가 계속 사업장에 들어갈 수는 없거든요.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합니다. 두 발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인데요,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이상이 제 원칙입니다.”

 

처음 경주지부의 조직화와 투쟁의 행보를 접하고 받은 인상은 ‘시원시원하게 결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이야기를 듣고 살펴보면서는 그만큼 꼼꼼하게 준비하고 치열하게 달려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진홍 직무대행은 경주지부의 조직화 성공 요인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경주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았지요. 경주가 소도시고 연고가 끈끈하고 자동차 부품사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잘 됐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도 있고요. 역으로 경주와 비슷한 지역과 자동차 업종이면 다 이만큼 했냐? 이런 특수성이 경주에만 있냐? 물을 수 있겠지요. [경주의 조건이] 좋은 토양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조직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고비고비마다 저희는 운이 좋았죠. 저는 결단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결단을 잘 했다고 보고요. 그런 게 운하고 합쳐져서 잘 됐다고 생각해요.”

 

2008년 7월 15일 다스 노동자들이 총회를 통해 금속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열린 노조, 진짜 산별노조

어떻게 하면 노조가 자기 사업장에 갇히지 않고 자기 지역의 미조직 노동자에게로 열린 조직이 될 수 있을까, 기존 방식의 교섭-투쟁-일상활동을 하기 어려운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하기 위해 금속노조에 필요한 구조는 무엇일까. 정진홍 직무대행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물음들이다. 

 

“저는 기업별노조의 핵심인 사업장 단체협약이 노동조합에겐 독배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학자금 혜택결국에는 민주노조 포기하고, 양보하고, 다른 노동자들 모르는 척 하고 하는 게 다 이런 단협이거든요. 항복하면 굴욕적인 거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조합원들, 이 단협을 포기 못해요. 그런 단체협약만 맺으려 하고, 노사협의회에 매달려서 복지고용 이런 것만 계속하면, 노동조합은 맛이 갑니다. 향후에도 달라질 가능성은 없죠.”

 

경주지부에는 신규 지회가 생기면 다른 지회 간부들이 다 함께 와서 싸우는 기풍이 만들어져 있다.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에 있는 지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신규 조직화 사업에 대한 역량투여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진홍 직무대행이 상상하는 노동조합은 ‘그 이상’의 모습이다. 

 

“제 꿈은 이렇습니다. ‘노동조합 활동 이젠 50 대 50 하자. 상근자 한 명이면 오전에는 지회 업무보고, 오후에는 미조직 사업 나가고.’ 이게 우리 조직문화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규조합원들이 끊임없이 늘어나야 조직이 건강성을 유지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무얼 하든지 말든지 합니다. 그렇게 자기 공단에서 자기가 조직하고 자기네 조합원 만들고”

 

그의 목소리에 자못 절박한 힘이 실린다. “노동조합의 운영방식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걸해야 진짜 산별노조고요. 그래야 뭐가 달라도 달라집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와 노동자운동연구소의 공동 연구 보고서 <금속노조 공단조직화(2014)>에 실린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사례를 바탕으로, 2015년 6월 15일 진행한 정진홍 경주지부 지부장 직무대행과의 보충 인터뷰와 함께 재구성하여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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