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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 제37호

문재인 정부가 부추긴 가상화폐와 코스닥 열풍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장밋빛 거품

  • 김진현
가상화폐 열풍이 거세다. 지난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31.3퍼센트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 은행들의 가상화폐 가상계좌 잔액은 2017년 12월 12일 기준 2조 670억 원이다. 다른 조사에 의하면 투자자 중 70퍼센트가 20~30대라고 한다. 이처럼 젊은 층이 가상화폐 투자에 몰입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인터넷 접근성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청년실업률,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일자리, 치솟는 부동산 가격 등 미래에 대한 불안 요소 탓도 크다. 어차피 노동으로 얻는 소득으로는 평생 힘들게 살 게 뻔하니, 가상화폐 투자로 인생을 역전시켜 보자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코스닥 열기도 대단하다. 지난 1월 16일, 16년 만에 코스닥지수는 900을 넘어섰다. 1월 12일에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코스닥시장에 사이드카(sidecar)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주식시장이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일 때 거래를 중단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사이드카가 발동되면 주식시장의 매매호가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빚을 내서 코스닥에 투자하는 자금도 급증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 신용거래융자는 1월 12일 기준 5조 9370억 원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해서 11퍼센트 늘어났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회사가 고객에게 주식 살 돈을 빌려주는 제도로, 전체 신용거래융자 규모는 사상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이와 같은 가상화폐와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광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다. 4차 산업혁명은 ‘산업혁명’이라 지칭하기엔 그 정의나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대체하는 경제 슬로건으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은 사실상 현 정부가 발전시키려는 산업이나 기술의 집합체라고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4차 산업혁명’

지난해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에 따르면, 소위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은 사물인터넷·클라우드시스템·빅데이터·머신러닝 등을 일컫는다. 최근 가상화폐 열풍에 힘입어 블록체인 기술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라며, 올 상반기 내로 〈블록체인 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든 신성장 동력이 될 거라 예측되면 슬쩍 끼워 넣는 게 가능하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기술들로 발생할 사회적 변화에 불안해하면서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가상화폐 가격 폭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도 투자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코스닥 지수 상승의 원동력인 바이오 기업 대부분은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그래도 바이오 기업 주식 값은 계속 오른다. 모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기대가 치솟게 된 데에는 문재인 정부가 기여한 바가 크다. 정부가 잇따라 발표한 혁신성장 정책은 이미 과도했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놓았다. 이런 지나친 기대가 가상화폐와 코스닥 시장에 거품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중 하나인 혁신성장은 쉽게 말해 〈벤처기업 육성정책〉이다.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벤처 인증을 받으면 벤처기업이 되며, 국가는 각종 세제 혜택과 제도적 편의를 제공하게 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해 한국에도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겠다고 밝힌 정책은 크게 두 개. 규제 완화와 자금 공급이다. 규제 완화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자금 공급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혁신성장과 벤처 생태계

벤처기업은 크게 4단계를 거쳐 수익을 창출한다. 첫째, 연구 단계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과학, 공학 지식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한다. 둘째, 창업 단계다. 기술에 특허를 출원하고 특허를 바탕으로 창업한다. 셋째, 투자 단계다. 벤처자본이나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공급받는다. 창업 후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개발하는데, 그동안 수입이 없다. 따라서 투자 받은 자금으로 회사를 유지한다. 넷째, 제휴·회수 단계다. 주식을 공개해 판매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아예 회사를 판다. 기술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제휴를 맺을 수도 있다. 이 단계에서 최종적 수익을 창출한다.

정부가 주로 개입하기로 한 부분은 바로 투자와 회수 단계다. 자금 공급에 힘을 쏟겠다는 것인데, 주로 펀드와 코스닥 시장을 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 벤처기업은 회수 단계에서 대부분 코스닥 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인수합병 같은 방식도 많지만 한국은 코스닥에 주식을 공개해서 판매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이를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라고 한다.

정부가 코스닥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 중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 방안이다. 이를 위해 연기금이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차익거래를 코스닥 시장에서 하는 경우 증권거래세(0.3퍼센트)가 면제된다. 또 코스닥 시장 투자를 늘린 기금은 기금운용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도록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기금운용평가 성적은 다음 해 성과급, 예산, 인사 계획에도 반영된다. 그밖에 코스닥에 상장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등 일반인들도 손쉽게 벤처에 투자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높여주는 벤처기업 가치

정부가 지난 1월 11일 코스닥 활성화 정책을 내놓은 직후 코스닥 주가지수는 연일 상승하며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부분 중소·벤처기업으로 구성된 코스닥 시장은 특히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기업 가치 평가에 주관적 요소 비중이 매우 크다. 둘째, 90퍼센트가 개인투자자라서 외부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일반적으로 기업 가치 평가를 할 때는 재무제표 분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상품을 얼마나 판매했는지, 이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기업별로 수치를 계산해서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런데 벤처 기업의 경우에는 상품을 개발 중이거나, 출시를 했어도 시장이 넓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창업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기업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벤처기업 투자자들은 기업이 가진 기술과 특허의 미래 가치를 평가해서 투자한다. 기술이라는 무형자산이 가진 미래 가치가 매우 커서 현재까지의 영업 손실 합계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했을 때 자금을 공급한다. 그런데 기술에 대한 평가 과정은 전문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예컨대 코스닥 과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라젠’을 보자. 2017년 2월 1만원 내외였던 주가가 같은 해 11월 21일에는 15만원까지 올랐다. 이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항암제 ‘펙사벡’이 동물실험에서 큰 효과를 보였다는 정보가 시장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펙사벡은 현재 임상시험 중이다. 인간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예상치 못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는 아무도 그 가능성을 수치화해서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벤처기업의 가치평가에는 아주 큰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재인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개입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고, 연기금을 투입해 코스닥 시장을 적극 지원한다고 한다. 이런 정책들은 벤처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미래 가치를 국가가 보증하고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 개인투자자들은 코스닥 상장 기업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면서도, 정부 지원 정책을 믿고 주식을 사는 경향이 생긴다.

코스닥 시장 열풍은 사실 문재인 정부가 의도했던 바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 정책 안에는 부동산 수익률과 코스닥 수익률을 비교하는 내용이 있다. 즉, 부동산에 투자하지 말고 코스닥에 투자해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보자는 뉘앙스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가상화폐 열풍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가상화폐는 ‘분산원장’ 또는 ‘블록체인(Block Chain)’이라고 불리는 기술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암호화폐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10분마다 한 번씩 컴퓨터로만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를 제시한다. 시스템에 참여한 컴퓨터들이 힘을 합쳐서 수학 문제를 푼다. 그러면 문제 풀이에 기여한 컴퓨터들에게 보상으로 가상화폐를 지급한다. 가상화폐 지급 내역은 전자장부에 기록되고 시스템 상의 모든 컴퓨터에게 블록이라는 형태로 전송된다. 그러면 모든 참여자가 같은 장부를 가지게 된다. 만약 시스템 상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장부가 생기게 되면, 다수결을 통해서 가장 많은 수의 장부를 진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시스템에 있는 컴퓨터 중 최소 51퍼센트를 해킹하지 않는 이상 장부를 조작할 수 없다. 그러나 51퍼센트를 해킹하는 데 드는 비용이 장부를 조작해서 얻는 수익보다 많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도 장부를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리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관리자 없이도 신뢰도 높은 거래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설계 구조상 해킹의 목표가 되는 중앙관리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많블록체인 시스템은 계속해서 새로운 참여자를 유입시켜야만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거래 시스템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가상화폐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가상화폐는 실제로 화폐의 역할을 수행하진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상품 구입에 사용하기엔 여러 기술적, 경제적 제약이 많다. 또 가격 변동 폭이 매우 크고, 아무도 가상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가상화폐 가치에 대한 두 가지 착각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구입하는 가장 큰 동기는 물론 시세차익을 통한 수익 확보다. 가격 변동 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가상화폐 가격 상승 추세는 일반적 경제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된다. 기업이 상품을 팔고 그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매개가 되는 주식과 달리 가상화폐는 실물경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실물경제에서 유입되는 이윤이 없는데도 가격이 오르는 것은 가상화폐를 사려는 사람은 많고, 팔려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가상화폐 시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상화폐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순수하게 시세차익을 위해 투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착각에 빠진 사람들도 많다. 착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상화폐를 사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며, 블록체인 기술의 권리를 일정 부분 소유한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구입한 자금이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투자된다는 아무런 보증도 없다. 정작 가상화폐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초기 개발자들이 가격이 고점에 다다랐을 때 보유분을 모두 팔고 돈을 들고 잠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가상화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둘째,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미래 가치는 매우 크며,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 가치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서 다시 정부의 역할이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는 ‘가상화폐는 규제하되, 블록체인 기술은 양성하겠다.’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대중들의 착각을 더욱 심화시킨다. ‘가상화폐 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은 충분히 분리가능하다.’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분리는 쉽지 않다. 컴퓨터 전문가들조차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분리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은 정부의 입장 발표를 ‘블록체인 기술은 계속 발전시킬 계획이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미래 가치는 충분히 높다.’라고 받아들인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 발전 기조를 대대적으로 선전해 온 문재인 정부의 과거 행보는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효과를 가진다.
 

거품을 만들어내는 혁신성장 정책

정부의 4차 산업혁명 구현 정책은 사실상 그 내용에 있어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신경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도 유사하다. 97년 외환위기, 2007-09년 금융위기 등 위기는 양상을 바꾸어 반복되는데, 해법은 항상 동일하다. IT, 바이오 등 특허에 기초한 첨단기술을 코스닥과 같은 금융 시장을 통해 지원한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이 시작한 방법이다.

미국은 1960~70년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 부문 이윤율이 떨어지자 두 가지 해법을 내놓았다. 하나는 IT, 바이오 등 특허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첨단산업 육성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들이 주식 같은 금융 상품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도록 금융에 대한 규제를 없앴다. 이는 결국 빈발하는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을 강력히 규제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산업 부문 이윤율이 좀처럼 상승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등의 현재 수출 규모가 장기적으로도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며 바이오, IT 벤처기업 육성에 나섰지만 기술 수준 자체가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낮다. 혁신성장 정책은 코스닥과 가상화폐 시장에 거품만 키우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기루에 사로잡혀 금융 거품을 키우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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