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7/07 제30호
문재인의 경제 정책, 성공할 수 있을까?
세계 속의 한국 경제, 문재인표 경제 정책의 한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집권 100일 플랜’이 준비되어 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미 절반이 지난 셈이다. 새 정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새 정부가 내비치는 개혁 방향의 타당성 정도는 검토해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출발은 개혁을 부르짖은 촛불항쟁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나? 경제 쟁점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 가격 이상 조짐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 부동산 시장이 뜨겁다.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적은 주택을 대상으로 전세 세입자를 끼고 주택을 구매하는 ‘갭투자’가 특히 유행이다. “대학생도 알바비 모아 집을 사는 묻지마 갭투자가 기승을 부린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 김현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부동산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대책으로 투기 과열 지역에 부동산담보대출을 줄이고, 투기 수요자와 실수요자를 구분해 미시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각료들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땅을 사랑해서 집을 샀다”고 우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각료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금의 정책 기조론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서민 정부’를 강조한 노무현 정부는 출범부터 부동산 투기 척결을 반복해서 강조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 5년은 우리나라에서 기록적으로 집값이 상승한 기간이었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적인 부동산 열풍이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집값은 이 기간 두 배 이상 뛰었다. 1990년대 자본시장에서 이미 그 끝을 본 금융자본은 1990년대 말부터는 인류의 영원한 투기대상, 부동산으로 그 대상을 바꿨다. 세계적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태에서 각종 파생금융상품까지 발전했고, 세계적으로 투기자금이 차고 넘쳤던 시기가 바로 노무현 정부 때였다.
세계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의 자산시장이 이런 투기 열풍에 가만있을 리 없다.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부터 다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정보통신 기업들까지 모두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투기억제 정책은 시장에선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메시지로 읽혔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말 그대로 중과부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13년부터 세계 부동산 시장은 세계금융위기 이전으로 복귀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2016년 말 2006년 수준을 회복했고, 중국은 현재 금융위기 이전보다 집값 상승률이 더 높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비교적 사회적 규제가 많은 북유럽 국가들마저 집값 상승에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우리나라 부동산도 끓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세계적 유행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잠재적으로 상승할 여지가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맞닥뜨릴 부동산 가격 상승 기류는 이전 두 정부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몇 가지 미시적 시장 개입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나섰다. 성공할 수 있을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구 속담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임금 정체와 정부의 일자리 정책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17년 4분의 1분기 평균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2.5퍼센트(8만9000원) 상승했다. 2015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임금은 사실상 동결이다. 고용률이 이전보다 나아졌음에도 임금 상승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증가에도 임금이 충분하게 오르지 않는 것 역시 세계적 현상이다. 선진국에서도 경제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미국에선 임금상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역시 임금 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임금 상승률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노조의 임금교섭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낮아 임금인상률이 높아지기 어렵다’, ‘자동화기술의 발전으로 중간소득 노동자가 줄고 저소득 노동자가 늘어 평균임금이 감소했다’ 등의 분석이 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임금 정체는 이상의 원인들에 더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임금 격차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한국의 임금 격차는 OECD 내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이런 일자리와 임금 사이 괴리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이 역시 역부족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로 우선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공공일자리냐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확대가 세입과 세출의 제로섬이 아니려면 확대되는 공공서비스에 생산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소비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효용이 증가하든, 아니면 민간부문이 더 효과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경찰·부사관·소방관 등의 공무원을 증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치안 문제와 외적 탓에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 만큼, 경찰과 군대 같은 공권력 확대가 국민경제에 생산적일리 없다.
정부는 보육·교육·요양·의료 등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공공서비스에 대해 책임성을 높이고, 일자리 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언급해온 ‘일자리 확대’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의미 있는 정책이다. 헌데 이것이 공공서비스 총량을 크게 늘리거나, 없던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추가로 드는 예산도 크지 않다. 기존 서비스의 정상화 또는 개선이지 “소득주도성장”이나 “침체된 노동시장의 마중물”로 표현하긴 어렵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구조적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 일자리 정책은 구조적 문제들을 모두 비껴가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교섭력을 높이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며, 기술 변화나 제도 문제로 인한 임금 격차를 줄이는, 지속가능하며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구조 개혁이 아니다.
부동산과 임금소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과 임금소득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가늠자다. 역대 민주당 정부가 모두 실패한 개혁 과제이기도 하다. 적당한 중도 정책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나섰다간,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 성공 사례가 하나 있다. 투기 광풍이 있었던 2001~2007년 선진국들 중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은 나라는 독일, 스위스, 일본 뿐이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불황 탓이었지만, 독일과 스위스는 경제성장률도 건실했는데 부동산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과 스위스는 세계에서 자가보유율이 가장 낮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매매차익을 얻는 주택의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2004년 기준으로 자가보유율은 독일이 41퍼센트, 스위스가 38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 비중이 68퍼센트, 유럽은 대체로 60~80퍼센트, 우리나라는 60퍼센트 내외다. 독일과 스위스의 자가보유율이 낮은 것은 주택 상당수가 비영리로 공급되는 공공주택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가격이 뛰고 있는데,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그 폭이 낮은 편이다.)
문재인 정부가 세계 흐름에서 부동산 시장을 이탈시키려면, 주택 소유를 간접적으로 제약하는 것 말고 별다른 해법이 없다. 지대수입을 얻는 자산을 사회화하거나,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임금과 관련해서는 일자리증가율과 임금증가율 사이 괴리가 큰 두 나라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과 일본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두 나라의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 노동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기업별 노조 체계에, 조직률도 2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미국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충분히 오르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정부가 온갖 정책으로 임금인상을 유도해도 그다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못한 경제 조건, 재정정책 사용이 제한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적당한 중도 정책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면, 두 나라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기 보단 ‘노조 할 권리’를 통해 노동자 대중이 직접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임금 인상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경제성장 조건이 같다면) 뭐니 뭐니 해도 ‘노조’를 통해 계급적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불로소득의 원천인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감한 사회화 조치, 노조 할 권리를 통한 계급적 힘의 증대. 문재인 정부는 중도 해법에서 헤맬 게 아니라 좌파적 대안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
※ 지면 관계상 중요 변수로 지목되는 무역흑자와 수출재벌 문제에 대해 다루지 못했다. 이는 «오늘보다» 8월호에서 다룰 예정이다. 최근 한국은 가장 긴 기간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고, 수출재벌의 부는 국내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꾸준하게 커지고 있다. 수출재벌 내부에 축적된 부를 국내경제로 환류시키지 못하면, 정부가 국민경제의 구조개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크게 제약된다. 한편,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은 부동산과 일자리 정책처럼 미시적 접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장하성, 김동연, 김상조 등은 시장에 대한 미시적 개입으로 거시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시기 재벌개혁의 한계들을 짚어보며, 문재인 정부 정책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 필자 소개
한지원 |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하고 떠드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