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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 제37호

하청 노동자의 눈으로 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성찰

이범연의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을 읽고

  • 이○○
“오늘 4시간 파업이랍니다. 다들 퇴근하세요.”
“이번 달 근무일수는 7일이래요. TPS(휴업)가 많이 잡혔으니 다들 알바하러 가셔야죠.”
“또 파업해요? 또 휴업합니까?”
“얘네가 쉬면 우리도 쉬어야 하고 그래도 쟤네는 쉬어도 돈이라도 나오지 참나.”
 
매달 월급날이 기쁘지가 않다. 
그래도 이번 달엔 제때 월급을 줘서 다행이지만 통장에 찍힌 급여는 74만 원. 
지난 달 보다 많지만 당장 빠져나갈 돈 걱정에 뒤통수가 땡긴다.
 

한국지엠 노조의 파업, 타결금, 미래발전, 총고용보장이라는 단어들이 나열된 유인물들이 가끔 현장에 들어올 때가 있다. 우리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 들어보니 한국지엠에 관련된 노동자가 30만 명이나 된단다. 이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해 노동조합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출간한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은 한국지엠 공장에서 청춘을 바친 어느 정규직 노동자가 쓴 현장 일기다. 저자는 책에서 대기업 노동조합의 몰락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책의 4장 ‘균열된 노동, 배제된 노동자’에서 ‘부의 몫(의 분배), 노동자(노동자 됨), 생존(살 권리), 자기 목소리(말할 권리)’가 없는 노동자를 배제된 노동자로 인식하며 이러한 배제의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싸우는 노동자 주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싸워왔던 노동자들은 곧 정년이 다가온다. 시대의 흐름에서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시의 주체였다면, 이젠 숨어있는 주체를 만들고, 나설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한다. 이 전략은 단위 사업장 벽을 넘어 공단으로, 그리고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노동의 사각지대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저자는 ‘두 개의 균열과 문턱’이라 표현했다. 첫 번째는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특권층과 다수 민중간의 균열, 두 번째는 노동자 내부의 균열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고용 안정성과 임금 수준에 대한 것이다. 

내 경우가 그렇다. 잔업·특근은커녕 ‘주5일근무’도 없다. 예전에는 라인 가득 제품들이 차 있었는데 지금은 띄엄띄엄 있다. 10분에 한 대씩 들어오던 납품차량 4대가 1대로 줄었고 자재들이 소모되는 속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라인이 끊어질까 예민하고 바빴던,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땀이 흐르던 현장은 줄어든 물량만큼 동료들도 없어졌다. 100명에서 60명, 60명에서 40명, 다시 15명 남짓한 인원들이 명당 많으면 5개, 적으면 3개의 공정을 담당하며 라인을 탄다. 밥줄이 끊어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들에 대한 선망, 노동조합에 대한 분노, 고용안정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배재된 노동자들의 불안심리에 대해 말하며, 적대의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첫 번째 균열과 문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적대의 선을 그어야 하며 두 번째 균열과 문턱의 선에는 연대의 다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연대의 다리, 입으로는 다 완성되었다. 그러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매년 대두되는 한국지엠 위기설과 철수설은 공장 안팎에 위기감을 조성한다. 반토막난 물량 덕분에 비정규직들은 해고되고 공정통폐합, 인소싱, 휴업이 이어지고 임금이 줄어들자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생활이 흔들린다.
 
 
“파업 좀 그만하라 해, 취업비리 터져서 망신당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해.”

“노동조합이 저러라고 있는게 아니야. 노동조합은 우리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있는거지, 쟤네는 배가 불렀어.”
현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경제적 이득에 치중한 노동조합의 활동과 지지받지 못해 공장 벼락을 넘지 못하는 구호는 노동조합 운동의 몰락을 보여준다. 저자는 비정규직(배제된 노동자)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운동과 ‘가난한 노동자’들을 주체로 만드는 노동조합 운동을 주장한다. 이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장점을 이용해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높은 문턱을 낮추고 깨진 균열을 메꾸려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주체로서 나설 수 있는 방안 역시 함께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역할은 공장 밖 조직되지 않은 집단의 결합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장점을 이용해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이 협력사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실태를 파악하며 노조설립과 가입의 문턱을 낮추는 ‘노조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노동조합 설립 자체가 어려운 공단, 아파트형 공장, 배제되고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외딴 섬(공단)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성찰하고 변화된 운동의 개시하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 변했다. 노동조합의 싸우는 방식 역시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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