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5/05 제4호
스물여덟의 봄, 네 번 잘리고 다섯 번째 구직 중
네 번째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3개월짜리 파견직을 거쳐 계약직으로 전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나까지 11명이 한 번에.
이미 잘렸던 적이 있었기에 나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처음 일하던 공장에서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해고통보를 받았던 때의 엿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현장에 들어가서 깽판이라도 치고 싶었다.
물량이 떨어지거나 관리자들의 평가를 통해 나와 내 동료들의 일터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 너무나 쉽게 사람을 쓰고 정리하는 이곳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공단의 현실이다. 20대 후반의 나는 이곳에 빼곡한 수천 개의 공장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일하는 생산직, 파견 노동자다.
○○공단 부근, 상여 300%, 비수기 없고 물량 많음,연차 제공, 시급 5000원, 현장 깔끔, 정직 100%전환
#1.
제대하고 돈을 벌려고 알바사이트를 기웃거리다 전화해보니 무작정 사무실에 나오란다. 지하철역 앞 허름한 건물에 있는 파견업체 사무실 안, 20대 휴학생부터 50대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력서를 쓰고 있다. 김 대리란 사람이 몇몇 공장을 소개해주며 내일 아침이나 오늘 밤부터 출근이 가능한지 묻는다. 복잡한 절차도 없고 자신들은 채용만 대행하니, 면접과 회사생활은 본인의 몫이라 한다. 다음날 공장에 가니 관리자가 나타나 나를 라인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공장 생활. 이곳은 공단에서는 꽤 잘 나간다고 알려져 있는 휴대폰 사출업체다. 내게 배정된 일은 사출기계로 제품을 빼고-넣고-담는, 지극히 단순한 일이다. 그저 돈 번다는 생각에 묵묵히 일만 한다. 시키는 일은 하고 하지 말란 것은 하지 않는다.
주야간 1주 교대. 처음엔 힘들었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사람들과도 조금씩 안면을 터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나 두 달째 야간 근무를 앞둔 어느날, 아웃소싱업체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씨,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 회사 사정상 인원이 너무 많다네요.”
해고라는 걸 인식하기엔 너무 짧은 찰나,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황스럽다. 전화로 따져봤지만 늘 있는 일인데 뭘 그러냐는 식이다. 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화나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걸 안 것은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이력서를 쓸 무렵이다. “거기 신규물량이 없어서 인원이 반토막났어요. 이번 회사는 그럴 일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미안하단 말을 물량이 많다는 걸로 하는 건지, 조건이 괜찮은 델 소개시켜 주는 걸로 대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2.
두 번째 회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커버를 만드는 곳이다. 파견업체는 지난번 일 때문인지 ‘선심 쓰듯’ 시급 높고 상여금 있는 곳을 소개시켜 줬다. ‘파견직에 상여금을 주는 곳은 거의 없는 데다, 정규직 전환까지 100퍼센트’라며 평생직장으로 생각해도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처음 출근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섭씨 500도가 넘는 용광로, 안전장비 없이 일하는 노동자,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에 미끄러운 바닥, 관리자들의 고함소리. ‘이래서 돈을 더 주는구나’ 싶었다.
용광로에서 나오는 제품은 무척 뜨겁다. 장갑을 두 겹씩 껴도 화상 때문에 물집이 생길 정도다. 뼈만 남은 고등어조림, 말라비틀어진 김치. 야간에 나오는 식사 메뉴는 개밥이나 다름없다. 서러웠지만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24시간 설비를 가동하며 생산수량을 맞추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한다. 힘들 때는 돈 번다는 생각으로 버틴다. 관리자들이 욕을 해도 참고, 바닥에 넘어져 손가락이 뒤틀려도 침묵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50대 아저씨들이다. 관리자들은 아저씨들에게도 욕을 하고 무시한다. 야간 근무 중 유압 설비에 손등이 뚫린 아저씨가 있다. 피와 기름이 섞인 바닥 위로 구멍 뚫린 손을 움켜잡고 소리 지르는 아저씨를 관리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앰뷸런스에 태워 보낸다. 나는 내 기계도 언제 저렇게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실제로 용광로에서 마그네슘이 튀겨 화상을 입는 사람이 많다) 작업하기가 너무 싫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욕설을 섞어가며 계속 일하라 소리치고 어느새 기계 속도에 맞춰진 나는 생산수량판을 신경 쓰며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
앞자리 아저씨는 참다못해 관리자와 싸우기 시작한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뒤엉켜 말리다 서로 싸웠고, 그 소식을 들은 부장은 싸움에 가담한 3명에게 일단 쉬고 내일 나오라며 집에 보냈다. 사람이 다쳤고, 다들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왜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을까? 다른 아저씨가 한 말이 계속 맴돈다. “별 수 없지. 돈을 벌어야 나랑 와이프가 살고 애들이 사니까.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어. 여긴 실패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니까. 넌 젊으니까 버티지 말고 나가.”
다음날 출근하자, 출근체크기계에 내 지문은 삭제돼 있고, 탈의실 캐비넷도 비워져 있다. 사무실에 가니 아웃소싱에 물어보란 말뿐이다. 화가 난 나와 아저씨들은 현장에 들어가 관리자들에게 항의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아웃소싱에 물어보라는 말 뿐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묵묵히 제품만 빼고 있다. 기름과 땀이 범벅이 된 아저씨들은 어제의 내 모습이다. 어제의 눈빛과 다른 오늘의 눈빛은 ‘왜 일을 크게 만들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잘못을 해서 해고됐을까? 밤낮 가리지 않고 연장이면 연장, 철야, 잔업특근, 조기출근, 화장실 갈 시간까지 쪼개 물량을 뽑고 출고를 맞췄는데 돌아오는 건 계약해지와 건조한 문자 한 통이 다였다.
#3.
세 번째로 들어간 공장은 휴대폰 액정과 터치스크린을 조립하는 공장이다. 방진복을 입었지만 일은 힘들지 않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처음으로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입사할 땐 입구부터 낯설었는데 어느덧 라인 지리가 훤해진다. CCTV 사각지대나 햇빛이 잘 드는 장소는 어디인지, 동료들의 이름과 얼굴, 걸음걸이까지 익숙하다. 매주 금요일 일이 끝나면 근처 고깃집에 모여 라인에서 못한 이야기들을 하며 논다. 쉬는 시간 커피를 뽑아주거나 사탕을 나눠먹었고, 김밥 계를 하자며 같이 돈도 모은다. 언젠가부터 물량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도 그건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회사는 파견직들을 또 다시 내쳤다. 인사도 없이 동료들은 사라졌고, 나도 그 틈에 껴 인사도 못한 채 또 다시 잘렸다. 해고통보를 받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이질감이 느껴진다. 일하던 자리와 공구들, 옆자리 동료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누가 쓸지 모르는 핸드폰을 만들며 잡담하던 소소한 기억들. 낡고 녹슨 정류장 표지판까지 지쳐보인다.
#4.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공단에선 대우가 좋고 안정적인 회사라 소문이 난 곳.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그건 정규직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나 같은 파견직들에겐 기본급 외에 아무 수당이 없고, 계약직으로 전환된 후에도 교통비 5만 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정규직과 파견, 계약직들 간의 차별이 심하다. 정규직들은 휴일 앞뒤로 연차를 쓰고 나 같은 파견이나 계약직들에게 땜빵을 시킨다. 누군가는 돈 벌었네 하고 좋아하겠지만 나는 너무 서럽다. 파견, 계약직은 연차 한 번 쓰려 해도 관리자들의 눈치와 라인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정규직들이 연차 쓰고 어디 놀러가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나보다 6개월 먼저 입사한 형이 말한다. 회사가 한 달에 한번 요구사항 설문을 받을 때에 파견직 없애고 모두 정규직 채용하라고 적었다고. 물론 익명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형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회사는 정규직 전환은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물량이 반 토막 났다며 본사로 물량을 이관시키고 나를 포함한 11명을 계약해지했다.
#5.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소모품’이라 얘기를 했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일어나는 해고,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사람들은 일터에 대한 애정과 동료와의 우애를 포기했다. 파견직이 우스운 건지, 법이 허술한 건지 모르겠다.
양질의 일자리, 청년실업 해결, 최저임금 인상. 공단 곳곳에 걸린 현수막 문구는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다단계로 이어진 원청-하청, 하청의 하청, 아웃소싱의 사슬은 체불임금과 무료노동, 차별, 해고, 휴업 등 많은 문제들로 이어진다. 가끔 뉴스에 어디가 폐업했고 어디서 정리해고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 사람들은 신문에라도 나오니 다행이네’ 생각한다. 이 공단에서는 이런 사연들이 사장님 월례조회처럼 지겹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곳에 나 같은 20대가 거의 없는 게 이해가 된다. 누가 오고 싶어 할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만 정착해서 일할 수 있는 일터다. 밥도 못 먹고 늦은 밤까지 잔업을 시키고, CCTV가 즐비한 라인에서 눈치를 보고, 애써 출근하면 느닷없이 집으로 돌려보내는 회사,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불안감에 잠 못 드는 회사에서는 분노와 불안밖에 남지 않는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또 모이는 우리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