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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 제37호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시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양극화 문제 해결사가 되자

  • 김민철
“알바천국 지옥연세” 얼핏 들으면 길거리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1월 3일 연세대 정문 <연세대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 구조조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울려 퍼진 구호다.

새해부터 서울 시내 각 대학에서 투쟁이 시작됐다. 원청과 하청들이 인원 감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원이 감축된 숫자가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이하 ‘서경지부’) 내에서만 총 8개 사업장 60명에 달한다. 그중 홍익대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홍익대학교 당국은 청소노동자 4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건물이 폐쇄된 것도 아닌데 용역업체 변경이 이뤄지는 지난 1월 1일 ‘용역 시방서’에서 두 건물을 제외했다.
 
 
이런 홍익대에 비해 고려대와 연세대는 양반이다. 기존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방식이 아닌 정년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거나 단시간 아르바이트(3시간~6시간)로 대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제로 고려대와 연세대 측은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노동조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노조가 반발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정말 고려대와 연세대는 ‘양반’일까? 정년퇴직자 자리가 채워지지 않게 되면 그 자리는 기존 노동자들이 대신 근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청소·경비 담당구역이 넓어져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기존에 8시간 동안 청소하던 구역을 3~6시간 안에 청소해야 한다. 임금은 더 적게 받으면서 노동 강도는 더 강한 ‘저질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정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일 경우에는 퇴직금이나 주휴수당, 연차휴가도 보장받지 못한다. 입으로 꺼내기 민망하지만,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당국이 앞장서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는 격이다. 서경지부는 현재 정년퇴직자 자리를 저질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로 고용하고, ‘즉각 해고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다. 연세대분회와 홍익대분회는 각각 1월 16일과 23일부터 무기한 본관 농성에 돌입했다.
 
 

모든 원흉은 최저임금 인상?

도대체 새해 벽두부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대학 당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인원을 줄이지 않고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서경지부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2018년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7,780원이다. 각 대학은 이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며 인원 감축의 칼을 빼 들었다. 작년 많은 국민의 염원과 투쟁에 힘입어 2018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서경지부도 협약임금 7,780원을 쟁취할 수 있었다. 결국은 각 대학이 작년부터 보수 언론에서 주야장천 주장했던 ‘최저임금 오르면 일자리는 줄고 기업은 망한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들도 이런 논리에 편승해 자신들의 입장에서 ‘과도한’ 비용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고려대 관계자는 노동조합에 ‘앞으로도 지속해서 정년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말 대학에는 돈이 없을까? 이미 각 대학의 적립금이 수천억 원이라는 사실은 알려진 바다. (2017년 기준, 홍익대 7429억 원, 연세대 5307억 원, 고려대 3586억 원) 그러나 대학들은 이 적립금에 대해 ‘등록금 동결로 인해 재정이 어렵다’, ‘적립금은 대부분 장학금의 용도이기 때문에 타 용도로 지출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하곤 한다. 하지만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주요 대학들 대부분은 등록금 수입과 누적 적립금이 증가했다. 홍익대, 연세대는 각각 2228억원, 1736억 원씩 유가증권에 투자하기도 했다. 학교의 답변은 그야말로 핑계이다. 충분한 지불 능력이 있는 대학교에서조차 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꼼수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이 시작되고 나서 많은 언론에서 이 문제를 보도했다. MBC, SBS, JTBC에서는 메인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뒤지지 않았다. 지면과 TV조선 뉴스에서 각각 2건씩 다루어 주요 언론 중에 가장 많은 보도량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분명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의 역효과… 대학 청소근로자 일자리 되레 줄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민노총의 무리한 요구가 현실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면서, 노동조합을 공격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일자리가 줄고 국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 최저임금 1만 원 투쟁 당시 소개됐듯,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축소·경제 둔화 사이에는 객관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이번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해고 및 인원 감축 사태는 지불 능력이 ‘아주 충분한’ 대학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세력들의 진짜 목표는 이 기회에 최저임금 인상 반대 여론을 조성해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학생이 봉이냐?

한편, 연세대와 홍익대(이상 서경지부), 동국대(일반노조 소속)에서는 정년퇴직자 혹은 해고자가 담당했던 건물을 학부생(또는 대학원생)에게 청소하도록 하거나, 시행할 예정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청소가 싫은 것이 아니에요. 인력을 감축하고 그걸 학생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이 싫습니다. 저는 학생이지 학교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에요.”, “등록금 몇백만 원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대학원생들 노예 확정이네.”라는 반응을 보이며 반발과 안타까움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학생은 배움을 위해 학교에 들어온 것이지, 학교의 경제논리에 따라 값싼 노동을 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결사는 ‘나야 나~’

보수언론이 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최저임금 문제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자본 모두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장이 홍익대·연세대 총장과 면담을 하고,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서경지부와 면담에 나섰다.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은 1월 11일과 15일 고려대·연세대 청소노동자와 학교 측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민주노총도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오죽하면 조합원들 사이에서 ‘민주노총보다 청와대가 더 빠르네’라는 푸념이 나올까? 대학 당국이 벌이고 있는 꼼수는 서경지부만이 아니라 많은 비정규단위에서 벌어지고 있고, 노조가 없는 곳에선 더 은밀하고 악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편법과 꼼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자본의 의도대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만이 국민들의 뇌리에 기억된다면 최저임금을 비롯해 전반적인 임금인상 투쟁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향후 문재인 정부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이게 될 것이다.

결국 촛불이 염원했던 헬조선 구원과 양극화문제 해결은 물 건너간다. 각 노조별로 각개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가맹 조직의 피해사례를 알리고, 모든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모으고, 마땅히 기댈 곳이 없는 시민들이 ‘민주노총이라면 이 지긋지긋한 일터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양극화 문제 해결사로 나서야 할 때다. ●
 
 
 

최저임금에 대한 보수언론의 거짓말

 

보수언론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 비판한다. 시장의 균형임금보다 임금을 강제로 높이면 노동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 실업이 발생한다는 경제학의 균형 도그마가 근거다. 보수언론들은 경비·청소·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을 전하며, 실제 경제학 이론대로 현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쓰고 있다.

한데 지금까지 보수언론들은 자본과 노동을 좀 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한계사업체들을 퇴출해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서나 기업 이익에서나 득이라는 것이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바다. 보통 임대료도 감당 못하는 기업들을 한계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사회·도덕적 노동임대료라 할 최저임금도 감당 못하는 사업체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한계기업들과 다르지 않다. 즉 보수언론이 자신들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일자리 감소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의 빠른 시장 퇴출을 주장해야 옳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최저임금 주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이라고 했는데, 최저임금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성장변수인 임금분배율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소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재산소득이 줄어야 임금소득이 증가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재산소득은 별로 건드리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는 재산소득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없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후속대책으로 건물주들에게 임대료 인하를 압박하는 것에서도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저임금 문제의 핵심에는 모든 경제 분야에 만연해 있는 지대 추구적 제도들이 있다. 건물주의 나라라고 불리는 부동산공화국, 정규직 일자리가 재산이 되는 분단노동시장, 법 위에 있는 재벌 등이 그런 제도들이다. 불로소득과 지대로 돈 버는 나라에서 최저임금 조금 오른다고 소득분배율이 변할 리 없다.

현재의 최저임금 논쟁은 경제구조 변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거품이 많은 논쟁이다. 앞서 본 것처럼 보수세력은 경제학의 도그마 속에서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맞지 않는 이야기를 우겨 대고 있고 정부는 실제 경제를 변화시키는 핵심보다 인기영합적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제성장 방식과 기업 경영의 관행을 바꾸는 것은 공동체 내 힘 관계에 상당 부분 의지한다. 노동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노조 조직률과 초기업적·평등주의적인 단체교섭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동운동은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 논쟁을 비판하면서, 나아가 노동 쟁점을 ‘노동조합’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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