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8/01 제36호

인스타그램으로 모이고 팟캐스트로 교육하는 노동조합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정혜미 사무장의 빵 터지는 노조 이야기

  • 홍명교
요즘 파리바게뜨에 가면 나도 모르게 카운터 너머 조리 공간에 시선이 간다. ‘이 매장 제빵사 분도 조합원일까?’, ‘이 매장에선 매일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파리바게뜨 제조기사(제빵기사·카페기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부분이 20~30대이고, 70퍼센트가 여성이다. 40~50대,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기성 노동조합운동에선 새로운 주역인 셈이다.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는 연일 걱정과 예상을 깨고 성장하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과 정혜미 사무장을 인천 계양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엔 노조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교육지원기사들에게 줬던 수당 10만원 중 5만원을 떼간다길래 너무 열받았거든요. 3년 전까지 내놓으라고 하니까. 너무 화나서 제보했던 건데 여기까지 온 거죠.”(정혜미)
 
정혜미 사무장과 임종린 지회장

파리바게뜨 본사는 경험이 풍부한 제빵 노동자들을 교육지원기사로 선정해 신입 제빵사 대상 적응을 돕게 한다. 예를 들어, 인천의 한 매장에 새로 제빵사가 들어오면 같은 구역의 교육지원기사들이 매장을 돌며 해당 노동자에게 1~2주 간 업무 교육을 지원하는 식이다.

10년 차 제빵기사 임종린 씨와 정혜미 씨는 이 교육지원기사 일이 너무 힘들어 더는 교육지원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통제는 강화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본사의 노무관리 방식 때문이었다. 본사 관리자는 아무 설명도 없이 카톡방을 만들고, 매일 무슨 교육을 했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데 “A 점포에서 아무개 신입에게 교육했습니다”고 사후 보고를 하면, “가르쳤다더니 왜 이래?”라며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자기 직원은 아니라면서 통제의 강도만 높인 셈이다. 카톡방을 만든 이유가 뭐냐는 교육지원기사들의 질문에 협력사 측 관리자는 ‘그냥 보고하면 돼. 뭘 그렇게 따져. 본사 과장이 있는 방인데 그런 식으로 하면 돼?’라고만 답했다.
 

모멸감에 달려간 상담

제빵업계 1위를 달리는 파리바게뜨는 SPC그룹 산하의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전국에 3천400개(직영점은 40여 곳이며, 미국 등 해외에 별도 해외법인으로 60여 개 운영)의 매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다. 여기서 알바 노동자들은 가맹점에서 고용하고, 각 매장에 1~2명씩 있는 제빵기사들은 협력사 소속이다. 전국적으로 협력사 제빵기사만 5000명에 달한다. 원청 파리바게뜨 사업을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65억 원이었다.
 

㈜파리크라상은 지역별로 11개 협력사에 파리바게뜨 제조기사 노무관리와 파견을 위임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유니폼을 입고, 파리바게뜨 명함을 갖고 있으며, 파리바게뜨 빵과 케이크를 만들지만 소속은 협력사다. 제조기사들은 자신이 속한 업체가 변경되는 것도 모른다. 실제적인 업무 지시나 인력운영 방침이 전적으로 본사 회장의 의지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청은 파리바게뜨의 이런 기형적인 인력운영 시스템을 ‘불법파견’이라고 규정하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불만이 높아지니까 본사 과장이 고충 들어주겠다며 간담회를 잡았어요. 근데 갔더니 저희 힘든 얘기 듣는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나는 너희 상사가 아니다’, ‘너희가 나한테 하는 건 보고가 아니라 업무협조다’ 이런 식의 변명만 들었죠. 배신감을 많이 느꼈어요. ‘태도가 불량하다’, ‘선배한테 무슨 짓이냐’는 소리만 늘어놓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 3월부터 교육지원기사에서 지원기사로 전환했다. 그런데 회사는 교육지원 수당 중 5만원을 다시 뱉으라고 했다. 일찍 퇴사한 신입들에 대해선 5만원만 지급하기로 했다는 게 이유였다.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회사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렸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4월, 정의당이 개설한 노동상담소인 ‘비상구’에 연락했다. 최근 비상구는 이랜드·넷마블 등에서의 야근·임금 체불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는데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노조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5만원 뺐기는 게 너무 억울해서 그거 돌려받을 수 있는지만 물어봤었죠. 근데 노무사님이 연장 수당이나 근로 환경에 대해 물어보시더라고요. 대화하면서 불법파견 문제도 알게 됐죠. 본사 (한국노총 산하)노조는 전혀 우릴 도울 생각도 없었으니 따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수로 태운 빵도 물어내야 하나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업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아침 7시가 되기 조금 전, 점포 사장보다 먼저 출근해 오픈 준비를 하고, 오후 5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다. 옷 갈아입을 공간도 마땅치 않은 매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통상 1~2시간은 연장 근무를 하는데, 출퇴근시 바코드를 찍게 되어 있어 조작할 수는 없다. 한데 파리바게뜨는 연장 근로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하루 4시간 이상 연장 근무를 해도 전산 조작을 통해 1시간으로 입력하는 식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퇴근할 때 찍으면 협력사 관리자가 전 직원 일괄적으로 다섯시 퇴근으로 처리해버렸어요. 한 번은 3~4시 밖에 안됐는데 관리자가 자기 바쁘다며 ‘오늘 퇴근(바코드) 찍지 말고 그냥 가라’고 하곤 5시 퇴근으로 기록했어요. 바코드 찍으면 자기가 고쳐야 하니까 찍지 말라고 했던 적도 있고. 어떤 기사들은 관리자에게 따지기 싫어서 그냥 5시 되면 바코드 찍고 일하는 기사도 있어요. 어차피 연장 처리 안 해주니까.” 이렇게 쌓여 입증된 체불액만 110억1700만 원에 달했다.

실수로 빵을 태워도 제빵기사들이 물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사 후 제빵을 배운지 석달도 안 된 시점에 매장의 모든 빵을 구워내는 시스템에서 실수가 없을 수 없음에도 제빵기사들에게만 비용을 전가했다. “빵 나오는 스케쥴이 정해져있으니 태우면 멘붕이에요. 빵 굽는 스케쥴이 더 밀리는 거죠. 종일 그 생각이 나니까…. 기준도 없어요. 어떤 점포주는 원재료비만 내라 하지만, 판매가로 물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회사에 처리 규정이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요구하기 힘들죠.”

인센티브 문제 역시 제빵기사들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였다. 받은 사람도 못 받은 사람도 근거를 몰랐다. 인센티브의 존재나 계산 기준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다 알게 된 임종린 씨가 “그동안은 왜 못 받았는지 기준 알려 달라”고 요구하자, 협력사는 본사에, 본사는 협력사에 책임을 떠넘겼다. “일부러 기사들이 많이 모여있었던 단체카톡방에 올렸어요. 그랬더니 ‘쟤는 쌓인 게 많아서 난리친다’는 식으로 몰아가더라고요. 저한테 따로 연락해서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죠.”
 
 

절묘한 타이밍과 행운

모든 게 때와 운이 맞았다. 5월 한 달 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동조건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고, 촛불의 여파로 정권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부당노동행위 엄벌하겠다’고 말한 게 딱 저희가 언론에 이슈화할 때였거든요. 그냥 열받아서 제보한 건데 뭔가 맞아떨어진 거죠. 저희는 이랜드 문제와 달리 나서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그동안 불만이 쌓인 제조기사들이 많아서 잘 모일 것 같았어요.”

정혜미 씨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제과점에서 1년 일하다 파리바게뜨로 들어왔다. 제빵사에 대한 대단한 꿈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가장 나은 것 같아 들어왔다. 임종린 씨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알바로 일하다가 같이 일하는 제빵기사 선배의 권유로 입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두 사람에게 쌓인 이 10년의 경험이 불만을 사건으로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저희는 잃을 게 없거든요.”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이슈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6월 27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파리바게뜨에서 행해져온 제빵기사 불법파견과 임금 착취를 폭로했다. 언론만이 아니라, 전국 제빵기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8월 11일에는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당시 이정미 의원으로부터 파리바게뜨 관련 질의를 받은 김영주 장관 후보는 “68개소에서 근로감독 중간 조사를 했는데 상당 부분 지적하신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인 8월 17일, 인천 지역 제빵기사 40명이 모여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파리바게뜨지회를 결성했다. 출발이 녹록했던 건 아니다. 저마다 일터도 다르고, 제조기사들 간 커뮤니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류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10년 간 일하며 알게 된 사람들을 모았다.

“임금 체불에 관한 설명회라며 초대해놓곤 노조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당황스럽게 느낄 수 있었는데 다들 가입서를 쓰시더라고요!”
 

인스타그램으로 조직을 확대하다

문제는 그 다음. 인천에서 출발한 40명 노조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전국 교육 때 만난 기사들을 하나하나 찾아 연락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다. 통화만으로 마음이 통하긴 어려웠고,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했다. 제조기사인줄 알고 연락했는데 그 사이 진급해 관리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전국적 확대가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놀랍게도 인스타그램이었다. “부지회장이 인스타에 링크를 띄웠어요. 그리곤 인스타로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엄청 잘 됐죠.” 

#파리바게뜨 #파리바게뜨기사 #파리바게뜨노조 등 걸 수 있는 해시태그는 다 걸었다. 다른 노조와 달리 유독 인스타그램이 유용한 이유는 최근 20~30대가 가장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이기도 하고, 보통 제빵기사들은 자신이 만든 빵과 케이크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스타로 문제점을 알리고 노조가 만들어졌으니 가입하라고 설득했죠. 그랬더니 각 지역에서 가입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가입한 분들에게 또 따로 연락해서 ‘많이 필요없다. 서너명만 모아달라. 설명회를 가겠다’고 해서 지역을 넓혀갔죠. 신기했어요. 다들 놀랐죠.”
 

제주·강원·여수·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오면 상담을 진행하거나 지역 간담회를 잡고, 만나서 가입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당장 가입하지 않아도 연락은 유지한다. 그러다보니 꾸준하게 제보하는 노동자들 중엔 비조합원도 많다. 설립 후 13일이 지나 개최한 파리바게뜨지회 설립 보고대회 개최 때 이미 300명, 4개월 후인 12월 중순 800명으로 치솟았다. 사측의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전엔 노조 경험이 전혀 없었어요. ‘우린 왜 노조가 없냐’, ‘노조가 없어서 이래’하고 하소연 하는 정도? 그런데 막상 생기니까 두려워하는 분도 있고. ‘노조하면 잘린다’는 얘기도 하고 그래요. 그걸 저희가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죠. 만들고 나니까 쉬운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기존의 민주노총 운동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뭐였는지 묻자, “몰라요. 그냥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한 거죠.” 답했다. 띵답[1]~
 

자본과 보수언론의 반격

설립 이후 4개월여의 시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9월 21일, 고용노동부는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임금 체불 110억 원을 지급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일주일 후엔 파리바게뜨 본사가 도급업체가 고용한 제조기사들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내렸다며 이는 파견근로법을 위반한 것이니 본사가 제조기사 53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까지 내렸다.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사측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노조 파괴로 명성이 높아진 대형로펌 김앤장과 함께 짠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직접고용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지역별로 토론회를 열어 노조 확산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전에는 사내 전산시스템에서 ‘제빵기사 근태·인사평가’에 관한 기록을 삭제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하면 회사 망한다’, ‘본사가 인원 감축할 수 있는데 어떡할거냐’는 등 부당노동행위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체불 임금 지급 역시 법원에 가처분 신청 소송을 내면서까지 차일피일 미뤘다. 법적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현장에서는 불법을 자행하며 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속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보수언론들도 대거 나섰다. 파리바게뜨에서 벌어진 중간착취를 둘러싸고 일대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모양새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은 “고용노동부가 ‘사적 자치’를 부정하는 판정을 내렸다”며, 이로 인해 “가맹점은 타격을 입고 제빵사는 실직하고 본사가 휘청할 것”이라고 협박조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보수언론의 이런 대응을 분석한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의 비평 “‘오류 투성이’ 파리바게트 보도 문제점을 정리해 드립니다”에 따르면, 이들 언론들은 “‘경영자유 주장→불법파견 불가피성→기업 위기론→고용노동부 때리기→노노갈등’의 보도 추이를 보였”다.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기점으로 기사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생? 해피?

회사는 새로운 공격을 가하고 있다. 10월 12일, 본사 측은 이른바 ‘3자(본사-가맹점주협의회-협력업체) 상생 합자회사 방안’을 내놓고 제조기사를 대상으로 동의서를 모으기 시작했다. ‘해피파트너즈’라는 합자회사를 만든 후 이곳으로의 전직을 강요했다. 현장 곳곳에선 일부 점포주나 관리자에 의한 요구로 싸인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부의 시정명령 취지와는 달리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상생기업’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지회에선 이를 불법파견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를 줄이려는 꼼수로 보고 있다.

가맹점주협의회란 이름으로 ‘직접 고용이 되면 가맹점주만 피해를 본다’는 여론도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임종린 지회장은 이들이 전체 가맹점주를 대표한다고 보진 않는다. 가맹점주 중엔 노조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많다고 한다. “실제론 가맹점주협의회 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려요. 의견 수렴하지 않고 간부들만 치고 나온 감이 없지 않죠.”

이런 와중에 한국노총이 개입하고 나섰다. 한국노총은 지난 12월 8일, 파리바게뜨 11개 협력사 중 8개 업체의 제빵기사 1천명이 노조에 가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직접고용 요구에 의문을 표하며, 사측의 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빈축을 샀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관리자들이 갓 입사한 신입 기사들한테 근로계약서랑 가입원서를 같이 받는 식이예요. ‘와~ 정말 양X치다’ 싶었더라고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본사 측은 합자회사를 만들어 근로계약을 강요하고 있던 이 시점에 갑자기 관리자들이 주동한 노조가 만들어졌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한국노총 산하 2노조 가입서를 모으는 과정에 ‘불법파견’의 한 축인 협력업체들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협력업체 관리자가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 교육 목적의 자리에서 “‘해피파트너즈’로 넘어가는 전직 동의서와 근로계약서, 노조 가입서 3가지를 작성하셔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본사와 협력사, 한국노총이 합세해 ‘노조 죽이기’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한 임종린 씨와 정혜미 씨의 답은 간명했다.
 

“본사 노조도 한국노총이에요. 저희가 본사 지원기사들과 저희의 혼재 근무를 지적했더니, 갑자기 혼재 근무를 빼버리곤 공장도 보내고 교육 대기도 시키고, 연차 사용 강요도 했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노총 본사 노조에서 이분들을 한 번도 제대로 보호해준 적이 없어요. 경조사비 지급도 제대로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팟캐스트로 대응하다

이런 공세에 맞선 파리바게뜨지회의 대응은 놀랍게도 ‘팟캐스트’를 통한 교육과 홍보다. 밴드와 카카오톡 단체방이 있긴 하지만,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이 없고 전국에 퍼져있는 조건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제조기사들의 조건을 고려했다. 팟캐스트는 인스타그램처럼 20~30대에게 익숙한 매체이기도 하다. 11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방송은 12월 15일 4회에 다다르고 있다. 첫 회 다운로드만 6천 건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비조합원과 다른 노조 활동가들도 많이 듣는다. “혼자 일하다 보니 귀에 이어폰 꽂고 라디오를 많이 듣거든요. 그런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빵 만들면서 계속 들을 수 있잖아요.”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도 않았다. 팟캐스트 한 번 해보자는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나왔고, 무작정 팟빵 스튜디오를 빌려 녹음을 시작했다. 첫 회를 들으면 이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직접적이라 매력이 넘친다. ‘빠바 빵팟’이란 제목을 지었는데 “빠리바게뜨 제조기사들의 빵터지는 이야기(팟캐스트)”의 줄임말이다.

본사 측 공격과 현장에서의 노조 탄압에 대한 ‘빠바빵팟’의 기민한 대응은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본사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합자회사 설립 방안’이 발표되면, 이때 나온 사측 논리를 정리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방식이다. 화섬노조나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와 변호사를 초대해 조합원들에게 생소한 노동법이나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상식을 교육하기도 한다. 진행을 맡은 김태완 부지회장의 재치있는 말솜씨와 유머가 빛을 발한다.

“전남이나 제주도 같은 남쪽에서 팟캐스트 얘기 많이 하세요. 이리저리 정돈 없이 막 얘기하죠.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서 욕심도 많이 나요.”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파리바게뜨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 〈헝거게임〉이 생각났다. 이 영화는 12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진 독재국가 ‘판엠’을 배경으로 한다. 독재자 스노우는 이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생존 전쟁인 ‘헝거게임’이란 행사를 연다. 1년에 한 번 각 구역에서 추첨을 통해 2명을 선발하고, 여기서 살아남은 1명을 수도인 ‘캐피톨’에서 살게 해주는 식이다.

파리바게뜨의 기이한 인력관리시스템(aka 중간착취)도 이와 닮았다. 직급과 근속이 높아져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협력사 소속 관리자가 될 수 있다. 매년 경진대회를 여는데, 여기서 단 1명을 뽑아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임종린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1년에 5천명 중 단 1명을 본보기로 뽑고는 ‘봐라 모두에게 열려있다’ 이러는 거죠. ‘노력하는 사람은 되지 않냐’ 이러면서.”

제빵기사들을 ‘베이킹 어드바이저’라고 부르자고 지시하고, 협력사 노동자들에게 본사 로고가 박힌 유니폼과 명함을 주며, ‘포장’에만 급급해온 파리바게뜨. 이곳에 희망을 만드는 건 꼼수만 펼치는 본사도, 허울 좋은 합자회사도, 사측 요구에 부응하며 노노 갈등만 부추기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도 아니었다. 항상 사측보다 반발자국 앞서온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임이 분명해 보인다.

파리바게뜨지회의 실천은 기존의 노조 문화와 상당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노조란 것에 대해 아예 몰랐기 때문에 그저 동료 제조기사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고민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했기 때문이다. 정혜미 사무장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노조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고, TV를 보면서 ‘왜 저렇게 까지 할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남일 같지 않고, 멋있어 보이기도 해요.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고요.”

“처음 노조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입 못했던 이유가 ‘불이익 당할까 무섭다’는 거였거든요.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계속 불이익 당한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이익에 대해 불안해하기보단 지금 당하는 불이익에 화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임종린 지회장의 당당한 말을 들으면 누가 들어도 신뢰하지 않을까 싶었다.

퇴사까지 결심했던 임종린 씨와 정혜미 씨가 2017년 한 해, 그리고 앞으로 지회를 튼튼하게 만들어나가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책임감이요. 저희가 질러서 만들었잖아요. 마무리도 지어야죠. 그리고 중간에 그만두면 모냥 빠지잖아요.” “네, 시작한 거 끝까지!” ●
 

Footnotes

  1. ^ 명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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