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7/12 제35호

최저임금에 대한 거대한 착각

임금은 희소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 한지원
최저임금 7530원의 적용을 한 달 앞두고 보수언론이 연일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6월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여론에 영향력이 큰 자영업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에 우려가 크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다시 뭉치게 하는 데 최저임금 비판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기업단체들도 최저임금 비판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들은 상여금이나 수당을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넣고,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업종에는 아예 최저임금을 따로 만들자는 ‘최저임금 조삼모사법’을 주장하고 있다. 법정최저임금 결정을 무효로 만들 수 없는 이상, 현장에서 이를 무력화시켜 보겠단 의도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2018년에도 이어가겠다고 한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나온 모든 후보들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렇게 해서 최저임금 전쟁의 본선이 시작됐다.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둘러싼 노사정 대결이 예선이었다면, 실제 적용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 그야말로 본선이다. 16.4퍼센트나 오른 최저임금의 효과는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념적·정치적 대결점이다. 특히 최저임금인상이 정부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상징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번 싸움의 결과가 꽤 오랜 기간 한국 사회의 세력 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최저임금인상 효과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게 된다면, 소득주도성장을 내건 정부 경제기조부터 최저임금1만원을 오랫동안 운동으로 만들어온 진보진영까지 모두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올해 말과 내년 초에 있을 최저임금 관련 논점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비판과 대안을 찾아보려 한다.
 
 

통계적 사기인가, 과학적 분석인가? 

우선, 16.4퍼센트 인상된 최저임금의 효과를 분석하는 방법부터가 쟁점이다. 최저임금을 비판하는 측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증가가 고용 감축이나 사업 포기로 이어지는 경로에 주목한다. 반면 최저임금에 호의적인 측은 소비성향 높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증가가 가계 소비의 증가와 기업, 자영업자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전자는 표본 기업들의 수개월 간 변화를 추적 조사할 것이고, 후자는 국민경제 지표의 1년 이상의 장기적 변화를 조사할 것이다.

이미 보수언론과 기업단체들은 ‘개별 기업의 인건비 증가’ 관점에서 단기적인 표본 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아파트경비용역업체들을 대변하는 한 조사업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국 경비원 1만 715명(추산)이 해고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고, 한 편의점 업계 조사업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생이 24시간 근무하는 풀오토 매장의 60퍼센트, 전체 편의점의 18퍼센트가 수익 악화에 직면해 폐업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연봉 4000만원 근로자 중에도 최저임금 미달자가 있을 정도로 현행 기준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으며, 이 주장을 받아 기사를 쓴 조선일보는 “영상·음향 기기 제조업체 A사의 경우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여금과 연장근로수당 등이 덩달아 올라 연봉이 4285만원으로 올랐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에 대한 정부의 반박은 아직까지는 경제적 실증보다 도덕적 대응이 대부분이다. 정부를 대변하는 지식인들은 최저임금을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여 기업들이 스스로 생산성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건비 부담을 하소연하는 것은 기업이 사회적 규범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는 고백일 뿐이다. 정부는 혁신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는 있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해 주면 소득 증가·소비 증가·매출 증가·기업성장의 선순환이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결국 내년 상반기까지 최저임금효과에 대한 논쟁은 상당히 비대칭적일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찬성 측이 사회적 규범과 장기적 낙관론을 근거로 최저임금 비판론에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과 기업단체들의 기업 표본 조사들이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에 따라 논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보수언론과 기업단체들의 조사는 과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최저임금보다도 경기 변동 효과가 결정적 변수일 가능성이 크다. 작년과 올해 최저임금인상 효과로 큰 사회적 논쟁을 벌인 시애틀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잠시 이를 살펴보자. 
 

시애틀 최저임금의 사례

미국에서는 지난 6월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이 시애틀 최저임금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경제학계와 사회운동 단체들이 크게 논쟁했었다. 시애틀 시의회는 2014년에 최저시급 15달러 조례를 통과시켰고 워싱턴주립대에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분석하도록 의뢰했다. 이 연구는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의 효과를 정부 당국의 협조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이 분석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부정적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2014년 15달러 조례가 통과되면서부터,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총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시급 19달러 미만)의 고용과 노동시간이 감소한 탓이었다. 평균시급이 3퍼센트 증가할 때 총노동시간이 9퍼센트 감소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월임금은 평균적으로 125달러가 줄어든 것으로 계산되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시간당 13달러보다 낮은데 법정최저임금이 이 선을 넘어, 사용자들이 고용과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것이 이들의 추정이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반론도 여럿 제기됐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같은 날 반박 보고서를 발표해, 연구팀의 분석이 매우 편향되었다고 비판했다.

첫째, 연구팀은 체인점 같이 복수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을 조사에서 제외했다. 이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숫자는 조사 대상의 40퍼센트에 이른다. 시애틀은 유례없는 호황이라 체인점 기업들이 크게 성장 중이다. 결국 조사는 지불능력 있는 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얻는 이득을 배제했다. 최저임금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조사에서 배제하고, 부정적 효과만 조사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둘째, 연구팀은 저임금 노동자에서 고임금 노동자로 이동하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간과했다. 시애틀은 미국에서도 가장 경기가 호황인 곳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도 말 그대로 뜨겁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대량 해고된 것이 아니라, 경기 호황으로 이들이 고임금 층으로 이동한 것이다. 실제 고용 데이터를 봐도 간접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워싱턴대 연구팀은 경기 호황의 긍정적 효과를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인 것처럼 왜곡했다. 

미국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에게도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시애틀 논쟁은 최저임금을 독립적 변수로 해 임금과 고용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한계적이란 점을 알려준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2014년 시애틀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최저임금 15달러 조례를 통과시킨 것은 시 경제의 탄탄대로 성장이 배경이었다. 시애틀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었고, 취업자는 14퍼센트 늘었으며, 실업률은 7.5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줄었다. 최저임금 탓에 경제에 문제가 생겼다는 어떤 신호도 없었다. 물론 최저임금 덕분에 시애틀 경기가 호황이 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공리에 반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임금 결정에 관한 매우 오래된 경제학 쟁점들을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증적 효과나 사회 규범을 명분으로 내세우긴 하지만, 실상은 백년 이상 이어진 임금에 관한 이론적 쟁점이 이 논쟁의 골간을 이룬다. 내년 최저임금 전쟁을 제대로 보려면 이 이론들을 짧게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주류 이론은 임금을 노동력에 대한 임대료로 간주한다. 토지의 지대가 비옥도 대비 희소성에 따라 결정되듯, 임금도 생산성 대비 그 일자리를 채울 노동자의 희소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자본, 토지, 노동을 임대해 이윤 최대화를 목적으로 상품을 생산한다. 만약 기업이 노동을 추가해 이윤을 늘리려면, 추가 투입되는 노동의 가격이 그것이 생산하는 추가 상품의 가격보다 낮아야 할 것이다. 기업은 노동의 가격과 (한계)생산성을 고려해 노동의 추가 투입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않는 법정최저임금 인상은 반드시 고용 하락으로 이어진다. 토지로 비교하면, 농부가 수확량은 그대로인데 지대만 올라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만약 정부가 지대를 강제로 인상시키면, 낮은 비옥도의 토지에서 일하는 농부들부터 농사를 점차 포기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지대 인상은 개별 토지소유자에게는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결국 농산물 산출량을 감소시켜 공동체 전체에는 해악이 되고 만다. 어떤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것은 그 노동자의 생산성 대비 희소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의 임금을 억지로 올리는 것은 그 개인을 위해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결국 기업들이 고용을 포기하게 만들어 경제 전체의 성장을 해친다. 이런 임금 결정론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사회규범론은 근시안적인 것으로 결국 공리를 늘리는 공동체의 도덕과 충돌한다. 그래서 사실 가장 원칙적인 주류경제학은 최저임금인상액과 관계없이 이 제도 자체를 반대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청와대 경제 참모들은 임금이 희소성의 결과면서 동시에 생산성 향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론이라 불리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고취해 스스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계기(효율성 임금이라고도 부른다)가 될 수 있고, 또 즉각적 고용 조정이 불가능한 기업이 설비투자를 늘려 노동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생산성이 결정되어 있는 토지나 자본과 달리 노동력은 사회적 영향을 받는 생산요소다. 그 사회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경제정책의 초점이어야 한다. 법정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과 기업 투자 증가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다.

주류경제학은 소득주도성장론 식의 임금 이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들은 효율성 임금 가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법정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일자리들은 그다지 숙련이 필요한 일자리가 아니라서 생산성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2000년대의 기술 발전은 광범위한 직무를 자동화했다. 경제학자들이 숙련 편향적 기술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저숙련 일자리의 자동화 또는 저임금화가 오늘날 경제의 중요한 기술적 특징이다. 즉 저임금 일자리는 저숙련 일자리이다. 여기에 무슨 효율성 임금이 있겠냐고 이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임금 인상이 기업 투자로 이어진다는 가설도 비판한다.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서비스업 저임금 일자리 대부분은 설비투자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그들의 반론이다. 임금 상승을 기업 투자로 상쇄할 수 있는 업종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는 주류경제학의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개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류경제학의 공급 측 임금 이론과 최저임금인상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하자는 포스트케인지안의 수요 측 임금 이론을 적당히 버무려 놨다. 물론 이러한 타협은 모든 타협이 그렇듯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2018년 최저임금에 대한 평가가 결국 두 이론 중 한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에 대한 거대한 착각

2017년의 대한민국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 먼저, 최저임금인상액을 독립적 변수로 한 임금 변화는 측정이 쉽지 않다. 임금 변화가 여러 힘들의 동역학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임금을 기업 차원의 생산요소 임대료로 보는 주류경제학 관점은 자본, 토지와 다른 노동력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 이론적 오류다. 정부가 채택한 소득주도성장론은 주류경제학의 임금 이론에 임금의 사회적 특성을 덧붙인 것이지만 결국 논리적 궁지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임금 이론에 관한 이 거대한 착각들을 벗어나는 길은 마르크스가 제시했다. 그는 임금 결정의 동역학을 기술, 자본축적, 인구, 계급투쟁, 이윤율 반작용의 상호 관계 속에서 분석했다. 그의 이론을 잠시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임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노동력 수요(고용), 노동력 공급(인구), 노동자 계급투쟁을 들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임금 변화가 복잡한 이유는 이 요소들이 상호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 임금 상승으로 기업의 이윤율이 감소하면, 기업들은 우선 노동자를 압박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려 든다. 그래도 임금이 상승하면, 이윤 감소에 따라 투자가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고용도 준다. ㉡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싶지 않다면 자본을 더 소모해서라도 노동을 절약하려고 할 것이다. 투자에도 불구하고 고용 증가가 최소로 이뤄지도록 말이다. 투자 감소나 노동절약적 기술 혁신이 될 경우, (만약 다른 변수들이 없다면) 임금은 결국 기업의 이윤율 회복 메커니즘에 의해 원래 위치로 돌아가고 만다. 

물론 이 과정에는 다른 변수들이 개입할 수 있는데, ㉢ 이윤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투자기금을 외부 금융기관에서 조달해 자본투자와 고용을 더 늘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윤율은 추가로 하락하겠지만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중에 이를 보상하려고 할 때 이런 결정이 가능하다. ㉣ 노동절약적 기술혁신. 자본투자가 노동생산성을 충분히 향상시켜 자본생산성이 증가하면, 자본 투자 당 필요한 노동은 감소하겠지만, 투자가 더 크게 증가하면서 고용이 증가하고 임금이 상승할 수 있다. ㉤ 하지만 임금상승이 계속 이어져 이윤율이 하락하게 되면, 앞서 이야기한 임금을 끌어내리는 힘들이 다시 작동할 것이다. 

㉥ 임금이 너무 하락한다면, 노동자들은 당대의 시민적 생활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 정도, 노동자의 조직력, 그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관행 등이 시민적 생활 기준을 결정할 텐데, ㉦ 만약 계급투쟁의 패배로 임금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경제활동참가율이 감소하거나 인구 자체가 감소하게 될 것이다. 노동력 재생산의 실패로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며 임금은 다시 상승할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임금은 희소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는 개인의 희소성이 낮아서 임금이 낮은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임금 동역학을 통해 임금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개인적 사정으로 보는 경제학의 관점은 시장의 신화에 기댄 이론적 착각이다.

또한 마르크스의 임금 이론은 노동자 임금을 자본 축적의 독립 변수로 규정하지 않는다. 임금은 노동자 계급의 역량과 역사적·문화적 관행에 의해 일정 수준(시민의 생활수준)이 정해지면 기술발전, 자본축적, 인구의 증감, 노동자 투쟁, 이윤율 반작용 등의 동역학에 의해 그 증감이 조정된다. 즉 생산력 발전에 따라 실질 임금은 증가하지만 임금분배율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변수가 되어 경제성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최저임금인상의 효과는 아무래도 정부 측 예상보다는 보수언론과 기업단체 측 예상에 더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주류경제학이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의 자본생산성이 오랫동안 하락하고 있어서다.(《오늘보다》 2017년 6월호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와 노동자운동의 과제〉 참조)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이윤율이 하락 중인 상황에서 임금상승으로 이윤율 압박이 더 강해지면, 기업들은 당연히 임금 상승에 강하게 저항할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축적을 줄이거나, 자동화에 더욱 집중할 수도 있다. 임금분배율의 상향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계 내의 변화인 한, 임금 동역학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만약 노동자운동이 소득주도성장론식의 낙관론만으로 최저임금을 주장한다면 정권과 함께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주류경제학의 주장처럼 한계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받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조합들에게 임금인상액에서 계급적 성과를 찾지 말고, 시민의 평균적 생활수준을 높이는 노동자 계급적 역량 강화에서 그 성과를 찾으라고 했다. 또한 임금인상이 결국 임금 동역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임금 동역학 자체를 변혁하는 것에 힘을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세로 보자면, 노동조합이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스스로가 연대임금의 설계자가 되고,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의 한국 사회 전망을 밝히는 집단적 지성으로 사회적 세력을 넓히라는 의미일 것이다. ●
 
"노동조합은 자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부분적으로 노동조합은 자기 힘을 분별없이 사용한다면 실패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현존 제도가 빚어 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존 제도가 변화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 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 말하자면 임금 제도의 궁극적 철폐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 - 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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