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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 제35호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민주주의의 위대한 실험이었나?

  • 구준모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사 재개를 권고하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수용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탈핵운동의 바람과 다른 결과가 나온 후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평가가 한참 진행되고 있지만, 진보진영에서 제기되는 내용들은 몇 가지로 정형화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 - 탈핵운동의 미숙 - 숙의 민주주의의 위대한 실험’으로 말이다. 여기서 숙의 민주주의는 세 축의 평가를 연결시키는 핵심에 위치한다. 문재인 정부와 탈핵운동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측면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 일반적 담론 구조인데 이는 숙의 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가? 공론화위원회 방식의 숙의 민주주의는 통치의 새로운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 아닐까?
 

잘못된 목적과 설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갈등과 권력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와 1972년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자가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대한 지배세력의 양보였다면, 후자는 독재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강요였다. 지금이 72년이나 87년과 같지는 않지만, 이번 공론화위원회도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등장한 제도가 아니란 걸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기구였다. ‘잘못된 목적’을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동원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 인식이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지만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따른 이해관계자 및 보수 세력과의 갈등을 다룰 방법에 난감해하던 정부가 고안해낸 장치가 공론화위원회인 것이다. 탈핵단체들이 공론화위원회가 제안된 직후에 비판 성명을 냈다는 점을 보면, 애초에 탈핵단체들도 판단을 했다. 하지만 탈핵진영은 문재인 정부와 촛불항쟁 이후 사회적 여론에 대한 낙관, 의제의 성격 및 자기역량에 대한 오판 등으로 공론화위원회 참가를 결정했고, 공론화위원회 진행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에 대해서는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대응에 대한 평가>를 참조할 수 있다.)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공론화위원회의 목적은 그 권한과 운영 방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 공론화위원회가 권고 기구인지 결정 기구인지에 관해 혼란이 있었고, 권고 기구로 결론이 났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공론화위원회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결정 기구가 되었다. 결정 권한과 책임을 공론화위원회에 떠넘긴 것이다. 시민들의 정책 논의가 권고를 넘어 결정까지 미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특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잘 설정된 의제에 관한 충분한 참여와 논의를 전제할 경우에나 가능한 평가다. 이번 건과 같이 단기간에 제한된 인원이 참여해 찬반을 결정하는 방식의 위원회에 전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진전이자 시민정치의 성숙이라는 판단은 현실에 대한 오판으로 보인다.

공론화위원회는 운영 방식에 있어서 공사 중단이나 재개를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숙의 민주주의에 일반적인 합의 모델이 아니라 OX식의 판단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여당은 중립성을 이유로 들며 찬반 논의에서 빠졌다. 이는 정부의 의사결정을 대신하면서 그 정치적 책임을 덜려는 문재인 정부의 목적에 맞는 방식으로 공론화위원회가 설계되고 운영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배-대항 권력의 각축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은 보통 ‘정당성’과 ‘종결성’을 갖는다. 투표를 통한 결정일 경우에 그 결과에 부여되는 정당성은 더 커진다. 운동의 입장에서 이런 결정은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특정한 민주적 절차의 결과가 운동의 목적과 다를 경우, 그에 항의하거나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제약되기 때문이다. 찬반 방식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대표적으로 2003년 부안 핵폐기장 투쟁이 격화되고 노무현 정부가 부지 선정을 번복하지 않는 교착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핵폐기장 반대 운동은 주민투표를 이용했다. 정부가 주민투표의 적법성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운동 세력에 의한 자율적인 주민투표가 이루어졌고 9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핵폐기장 유치 철회 결정이 이루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주민투표 결과는 전투적이고도 지속적이며 압도적인 주민들의 운동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기에, 정부는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의해서 완전히 다른 목적에 활용되었다. 핵폐기장 부지 유치에 막대한 예산지원을 내걸고 주민투표를 통해 가장 찬성률이 높은 지역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경주, 군산, 영덕, 포항이 지역감정과 지역개발 열망을 동원한 핵폐기장 유치 경쟁을 벌였고 주민투표에서 경주가 89.5퍼센트, 군산이 84.4퍼센트의 유치 찬성을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는 그 결과에 따라 경주에 핵폐기장을 건설했다. 이런 과정은 반핵운동에 충격을 주었고 상당기간 운동이 침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삼척에서는 시민·주민 단체 주도 하에 핵발전소 입지 선정을 거부하는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영덕에서도 주민 투표가 추진됐다.

이처럼 하나의 민주주의 제도는 투쟁과 갈등의 물질적 응축으로서, 정세적으로 작동하는 지배권력 및 대항권력의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 운동에서도 특정한 제도적 장치는 거기에 ‘민주’라는 수식어가 붙더라도 맥락적이고 전술적으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정부들이 만든 수많은 위원회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빈번했는가. 민주주의는 하나의 제도이기도 하지만, 갈등과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과 투쟁은 민주주의의 제 기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수한 방식의 의사결정 절차를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으로 칭송하고 찬양하는 것은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전도시킬 위험이 있다.
 
 
 

숙의 민주주의의 한계와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위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대변하지 않는 인사들도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은 한계가 많았다고 판단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동기의 불순성”, “통치와 정치의 실종”, “사회통합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 방법 선택”, “설문결과에 대한 과도한 해석” 등을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문제로 지적했다(<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네 가지 문제와 한계>). 김동규 부산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부원장은 숙의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본원칙 중 적어도 두 가지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합의의 폐쇄성”과 “비합리적 합의” 문제를 제기했다(<이것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탈핵운동 인사들도 공론화위원회 진행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다양하게 증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숙의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정보와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상황에서의 평등한 대화가 가능한지 자체가 의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런 조건을 가정할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존재할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이번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사용되었지만 경제력과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이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숙의 민주주의라는 환상은 오히려 권력, 정보, 자원의 측면에서 구조화된 불평등을 감추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심은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사례가 오히려 민주주의와 정치적 논쟁을 갈등관리의 협소한 틀로 가둔 것이 아닌지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위원회가 위대한 실험이었다고 치켜세우며 이 모델을 다른 갈등적 사안이나 정책에도 적용하려고 한다. 지역 갈등 현안에도 공론화위원회 방식의 갈등관리 및 해결책이 대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면서 저항세력을 포섭하고 지배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새로운 판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각종 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 기구들, 주민투표가 그런 역할을 했듯이 말이다. 아직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지만 공론화위원회와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는 반드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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