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7/08 제31호

강한 의지로 포장된 '미약한' 탈핵 계획

문재인 정부 탈핵 계획의 한계와 탈핵 운동의 과제

  • 박상은
지난 6월 18일 자정, 가동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됐다. 25기 중 단 1기의 폐로지만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오랜 운동의 성과일 뿐 아니라, 이 날을 계기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적인 탈핵 선언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영구정지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원전의 설계 수명 연장 금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약속했다.

탈핵 정책에 대한 핵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은 일시 중단됐다. 7월 21일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력 수급계획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월성 1호기도 중단될 수도 있고, 2030년까지 몇 개 더 폐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탈핵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완전한 탈핵까지의 길은 멀어보인다. 위 발언에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모두 수명이 60년이라 이것만으로도 원전은 2079년까지 가동된다”고도 말했다. 적극적인 계획 없이 설계 수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이대로라면 탈핵은 앞으로 62년 뒤에야 가능하다. 또한 건설 중인 핵발전소 중 공정률이 높은 경우는 그대로 진행시키겠다는 의사도 표현한 셈이다. 이대로 라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신울진) 1·2호기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가동을 시작하게 된다.

수명만료 2년 전까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수명연장이 가능한 점을 고려해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폐로를 결정할 수 있는 핵발전소를 월성 1호기, 고리 2호기, 고리 3호기 세 기로 꼽아보자. 세 기의 발전용량을 모두 합하면 2279MW다. 이에 비해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의 발전용량은 4200MW에 이른다. 탈핵을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 하에서 핵발전 용량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시민사회 로드맵에 못 미치는 정부의 탈핵 계획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계획은 탈핵운동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친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탈핵 시기를 가장 빠르게 잡은 녹색당·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30년 탈핵, 2050년 탈석탄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노후 핵발전소 즉각 폐쇄 및 신규 원전 건설 및 계획 중단, 가동 중인 핵발전소 단계적 폐쇄를 통해 2028년까지 30년 설계 수명의 핵발전소 16개를 폐쇄하고, 설계수명이 남은 5개의 핵발전소는 2030년에 폐쇄하자는 제안이다. 

환경운동연합의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시나리오’에서는 2042년에 핵발전소 발전량을 제로로 하고,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태양광, 풍력을 중심으로 약 90퍼센트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이에 가스 발전이 가교역할과 백업전원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탈핵·에너지전환 시민사회로드맵(이하 로드맵)에서는 탈핵시점을 확실히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전국 180여 명의 탈핵활동가 중 2040년까지 탈핵 의견이 대다수였고 2060년 이후를 탈핵시점으로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로드맵에서는 탈핵의 첫 단계로 공정률과 관계없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 중단 및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중단을, 두 번째 단계로 핵발전소의 안전성·지질·고준위 핵폐기물 현황 등을 고려한 조기폐쇄를, 마지막으로 설계 수명이 아닌 ‘사회적 수명’을 다시 논의해 조기 폐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석유 폐가스가 재생에너지? 

탈핵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한다. ‘에너지전환’의 관점에서 두 문제는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0퍼센트로 높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6.41퍼센트(2015년 기준)로 아직 낮다. 하지만 2006년에 1.02퍼센트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의 에너지원을 나눠서 살펴보면 문제가 생긴다. 2015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에너지원별로 나눠보면, 태양광이 398만 MWh, 풍력이 134만 MWh인데 비해 바이오는 555만 MWh, 폐기물이 2247만 MWh이다. 재생에너지 중 바이오가 15퍼센트, 폐기물이 60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의 경우 해외에서 연료를 수입해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또 폐기물 발전량의 95퍼센트는 폐가스를 이용한 것인데, 이는 대부분 석유나 석탄의 정제과정 중 나오는 부산물이다. 기존 화석연료에서 나온 에너지원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에너지기구에서는 폐가스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하지 않는다. 폐가스를 재생에너지에서 빼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6퍼센트로 낮아진다.

재생에너지 중 태양광, 풍력보다 폐기물 비율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생산하도록 하는 ‘공급의무화 제도’(RPS)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 사업자들은 친환경을 고려하기보다 가장 손쉬운 방식을 택해 자신에게 할당된 비율을 채우려고 한다. 현 정부 역시 RPS 의무비율을 높이는 방식(2023년 10퍼센트에서 2030년 28퍼센트로 목표 상향 조정)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려고 하고 있어 이 비중이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에너지 전환 위한 사회적 논의를

사회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탈핵 계획에 만족해선 안 된다. 여러 시나리오와 로드맵을 고려하여 보다 적극적인 운동과 탈핵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핵산업계의 반대로 현재의 논의 지형은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다. 논의지형을 왼쪽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탈핵운동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 핵발전소 폐쇄를 바라는 시민들의 의지와 크고 작은 실천을 규합해야 한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쟁점이 산적하다. 태양력·풍력 등의 경우에 일어나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서의 갈등과 불도저식 행정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난점이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수익은 외부사업자가 가져가는 구조에서 주민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다.

탈핵 운동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환경적 가이드라인 확립, 시민참여의 강화, 주민들과의 이익공유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탈핵으로의 방향전환이 시작된 만큼, 이제 에너지전환에 대한 더욱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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