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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 제30호

"우리는 아줌마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

  • 정지현

 

농성은 강제 해산돼도 투쟁은 계속된다

2007년 7월 20일 오전 10시, 마트 매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던 168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전원 연행되었다. 서울 홈에버 월드컵몰점과 뉴코아아울렛 강남점에 동시 투입된 7000여 명의 경찰 병력으로도 모자라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된 이날 연행은 전날 밤부터 농성을 지키고자 했던 조합원들과 연대대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농성은 강제 해산되고 지도부가 구속되었다. 하지만 이날 저녁 서울역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이 싸움의 정당성을 외치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농성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뉴코아 강남점 2차 점거농성, 홈에버 면목점 3차 점거농성에서 각각 197명과 156명이 연행되었지만 끈질긴 여성노동자 투쟁의 의지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삽화: 최설
 

비정규직 보호 못하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시행령을 앞두고 700여 명의 계산업무 노동자가 계약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시작된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함을 증명했다. 2007년 7월 1일 시행된 기간제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주화하거나 별도의 직무급제로 전환하도록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면 해고되었다. 칼날은 여성노동자에게 먼저 겨눠졌다. 

1998년 통과된 파견법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더욱 확산한 바 있다. 파견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된 2000년 7월부터 간접고용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해고가 되어 길거리로 내쫓겼다. 2년마다 주기적으로 해고되는 ‘2년짜리 인생’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일명 비정규보호법이라고 불렸지만 법이 만들어 진 후 어떤 비정규직도 보호받지 못했다. 


확산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유독 많았다. KTX 여승무원, 기륭전자, 우리은행, 청소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간병인 노동자 등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했다. 

그녀들의 투쟁은 닮아 있었다. 이랜드-뉴코아 여성 노동자들은 계약 때마다 해고의 불안에 떨어야 하는 외주용역화나 차별적인 직무급제를 거부했다. 이는 외주 위탁 철회, 직접고용·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투쟁한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철도공사는 구조조정과 외주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확대하여 재정적자를 노동자에게 전가시켜왔다. 승무 업무에서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승무원’ 직제를 따로 만들어 외주화했다. 이를 거부한 KTX 여승무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이처럼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업종과 직종에서 외주화가 시작된 현실이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끊이지 않게 했다. 성별화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는 여성노동자를 거리의 투사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와 빈곤의 여성화

신자유주의는 여성을 공격했다. 빈곤・저임금・비정규직에 시달리는 여성을 대거 양산했다. 재생산 노동에 대한 부담을 강화했고, 성별분업의 논리로 여성노동을 가치절하해 여성의 저임금을 당연시했다. 

신자유주의는 여성을 활용했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의 물결이 온 사회를 덮을 때 여성노동자를 우선해고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될 때는 여성노동자가 먼저 잘려나갔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할 때도 여성인력 활용 정책을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에게 먼저 도입되었다. 저출산이 심각하다며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만, 막상 임신하게 되면 출산을 빌미로 해고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2000년대 중반에 유독 많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던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싸움은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로 마무리 되었다. ‘밥꽃양’ 사태였다. 2000년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노조 사수를 위해 투쟁했던 롯데호텔 노조의 협상과정에서 최종 교섭 자리에서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문제1가 다른 요구들과 교환되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쌓인 결과였다.

차별받고 강요받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멈출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처절하거나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억눌리고 억압받아도 끝까지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피어나는 여성노동자의 삶과 노동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도 성장했고, 주변 사람들도 각성했다.  
 
 
 
 

투쟁하며 전진하는 여성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과정이야말로 여성노동자 투쟁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다. 이랜드-뉴코아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은 눈여겨볼 만했다. 투쟁 초기에 여성노동자들은 가족 걱정, 자식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면 될 거라 믿었던 파업을 510일 동안 이어가면서 엄두도 못 냈던 외박을 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스스로 점거농성과 파업을 결의한 것도 모두 여성노동자들이었다. 한 조합원의 발언은 이 투쟁을 살아있는 투쟁으로 만들었고, 자신이 변화했음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집에 가서 밥 하라고 그런다. 여기 나와서 뭐 하는 거냐고 하는데, 물론 나도 오늘 나오면서 자식한테 따뜻한 밥 한 끼 못해줬다. 그렇지만 밥 한 끼 못해준다고 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식이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어머니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재생산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이 사회와 세대를 걱정하는 시민으로 거듭났다. 2000년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여성노동자 투쟁을 보는 시선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나날이 성장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시간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 투쟁에 연대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은 그보다 조금 더뎠다.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참석한 한 남성 노동자는 “반찬값 벌러 나온 힘없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KTX 승무원의 투쟁을 ‘비정규직 투쟁의 꽃’으로 비유하거나 어리고 연약한 여성들의 투쟁으로 보고 보호하려는 시각도 팽배했다. 누군가의 엄마, 누이가 아니라 나와 동등한 여성노동자라는 생각은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성장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시도도 많았다. 특히 여성들이 연대했고, 각성했다. 그런 노력은 2007년 8월 24일에 “비정규여성노동자 공동투쟁 연대결의문”을 통해 드러났다. 
 

끝나지 않은 여성노동자 투쟁 

“10년 전의 오늘, 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거나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됐다. 남편이 있다고, 아줌마라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남편 월급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고,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다시금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으로 재활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현실에 대해 사회운동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를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2007년 오늘, 여성노동자는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남성 노동자 임금의 63퍼센트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사회안전망의 파괴로 인해 가족에 대한 돌봄 노동이 가중됨에 따라 이중삼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 2007년 8월 24일, ‛비정규여성노동자 공동투쟁 연대결의문’ 중
 
10년 전 쓰인 것인데도, 2017년 결의문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아직 바뀌지 못했을까. 2007년 싸우던 여성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영화 ‘카트’, 웹툰 ‘송곳’으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유통산업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김소연은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지지율은 0.05퍼센트에 그쳤고, 전자산업 여성노동자들은 메탄올에 시력을 잃어가며 일하고 있다. 2심까지 승소한 KTX 승무원들은 투쟁의 정당성을 입증받는 듯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하여 아직도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많은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일하지만, 노동의 불안정화는 심각하고 성별임금격차는 부동의 세계 1위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맨 앞에서 직면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여성노동자 자신을 바꾸고,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연대했던 그녀들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2010년대 끝자락에 있는 지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필요하다. ●
 
 
필자 소개

정지현 | 취미는 드라마 속 여성의 삶 탐구. 2000년대 여성노동자 투쟁에도 줄기차게 연대했다. 현재 사회진보연대 노조페미니즘팀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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