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교육
  • 2017/12 제35호

교육 현장의 개혁을 꿈 꾸는 사람

18년차 국어교사 정은균 샘을 만나다

  • 원종현
정은균 씨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 시민”임을 강조하는 18년 차 중등 국어 교사다. 학교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라는 믿음을 갖고 책읽기와 글쓰기와 현장 실천을 위해 애쓰고 있다. 아이들 가슴에 불을 지피는 ‘위대한 교사’나 스스로 해 보이는 ‘훌륭한 교사’는 못 되더라도 잘 가르치는 ‘좋은 교사’가 되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헤맬 때가 많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 brunch.co.kr/jek1015)와 사회관계망서비스(페이스북)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꾸준히 관심을 주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시 공부의모든 것》, 《국어와 문학 텍스트의 문체 연구》, 《국문 서사체의 문체론》, 《한글 이야기》가 있다. 현재 전라북도 군산시의 군산영광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보다] 현재의 교육 개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핵심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정은균]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교육부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현장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원인을 단순화하면 관료들의 문제입니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출신들이 교육부 내 요직을 장악하고 장관의 눈과 귀를 통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조심스럽게 말해 보자면, 김상곤 장관이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죠. 그래서 경기도교육감 재직 시절 인력을 중심으로 해나가려고 하는데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일단 수능 개혁 시도가 잘 안 됐습니다. 최근 교육부 권한 배분을 위한 움직임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학교교육 현장의 개혁이 동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얼마나 실효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교육부의 개혁 시도가 학교 안팎 분위기나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고, 학교 차원의 준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구성원들이 그 중요성과 의의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쪽의 흐름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보다] 특정 대학 출신 라인의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전교조 등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그들을 신자유주의 교육세력이라고 지칭했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정은균] 2000년에 교직에 진입해 올해가 18년 째입니다. 그동안 네이스·교원평가·성과급 등이 시행됐죠. 여기에 보이지 않는 통제, 자기규율의 억압기제가 있음을 느껴 왔어요. 예를 들어 동료 평가 시에 최고점수를 주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감정적으로 평가하면 내 점수가 학교 전체 평균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교원 간의 신뢰 관계가 깨지게 되는 거죠.
교장들이 꼭 한 해에 일정 시간 이상의 연수를 하라고 종용하는데, 여기서도 그런 통제를 느낍니다. 일정한 선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자신의 위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등등의 생각이 교사들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됐어요. 2000년대 중·후반경부터 이런 현상이 극심해진 거 같아요. 
 
[오늘보다] 교사의 성취를 그런 식의 교원평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교사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거나 자발적으로 수업연구를 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장 조합원들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전교조의 중요한 역할인데, 그런 교과모임·교사공동체·연구모임 등이 최근 많이 없어졌어요. 정부 정책이 이런 현상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정은균] 정부 정책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2000년 초·중반만 해도 전교조 군산중등지회 차원에서 참교육 실천대회가 성황리에 치러졌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지회 차원의 자발적 교사시민아카데미도 2010년을 전후해서 사라졌습니다. 성과평가 이야기가 나오면서 교사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심적 여유라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보는데, 앞서 말한 보이지 않는 통제 기제와 압박감 때문에 그러한 여유가 사라지면서 교사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서서히 사라진 듯합니다. 연수를 예로 들어 보죠. 연수는 기본적으로 자발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 평가가 시작된 이후로 그런 자발성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대다수가 단순히 연수 60시간 채우기에 골몰합니다. 교과모임을 지역에서 해보려고 했으나, 나를 비롯해 다들 심적 여유가 부족하고, 또 이런저런 사안에 대응하기 바빠 잘 하지 못하고 있어요. 교과모임은 전국 차원의 큰 행사 위주로 굴러갈 뿐이고, 특별한 전문성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런 구조와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오늘보다] 통제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해주셨는데, 지난 20년간의 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정은균] 2000년대 초반 7차 개정교육과정의 수준별 수업이 나온 이후 10여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교과교실제, 특목고와 자사고에 방점을 맞춘 고교 위계구조 시스템, 성과급과 평가제 등이 출현했어요. 이들이 출현한 이후 교육 현장이 크게 달라졌죠. 수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치사회적 이슈를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확실히 사라졌어요. 교사가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억압적인 분위기, 그리고 교육과정에 담긴 철학이 은연중에 강요하는 개인주의 때문이겠죠.
 
 
 
[오늘보다] 학생들은 어떤가요? 학생들에게도 차이가 생겼나요?
 
[정은균] 글쓰기 수업 중 장래희망과 꿈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할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 같이 뜬 구름 잡는 듯한 이상적인 이야기가 많이 보였어요. 돈 이야기 같은 현실적인 색깔의 글은 소수였죠. 요사이는 대기업에 가서 연봉을 얼마 정도 받고 무슨 차를 타는 것이 꿈이라고 쓰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내용이 상세하고 구체적이며, 자신의 미래상을 스스로 구상한다는 점에서 보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당장 쓸모가 없고 유용하지 않더라도, 학생이라면 어떤 이상적인 가슴 떨림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분위기가 사라진 것이 큰 차이라면 차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보다] 전교조의 입시철폐와 대학평준화 주장에는 대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노동시장 구조가 그대로인 상태로 대학을 평준화해도 또 다른 차별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입시 철폐, 대학평준화의 주장은 일종의 반지성적 문화를 낳고, 진지하고 좋은 지식 교육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진 않는지요?
 
[정은균] 평준화라는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평준화’라고 하지 말고 ‘서열화 완화’라는 말을 썼으면 좋겠어요. 일단 전교조의 입시철폐·대학평준화는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평준화, 곧 대학 서열화 완화가 되면 분명 대학원 등 다른 차별 기제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차별적 현실에 따른 문제가 너무 심각합니다. 현재 대학서열화에 따른 사회문제, 비용, 악영향 등을 고려해보면 대학평준화 방향이 맞다고 봐요. 제도화가 된 이후에 내용과 실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물론 대학평준화가 간단히 이뤄질 문제는 아닙니다. 대학 서열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기득권 구조가 어마어마하게 강하기 때문이죠. 이 구조에 조금이나마 틈을 내고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평준화가 교육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요. 대학교육을 둘러싼 일반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요. 이런 여론에 터 잡아 분위기를 어느 정도 끌어낸다면 당국도 정책적 의지를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보다] 노동시장의 문제가 해결되면 대학 수요도 분명 줄어들 텐데, 노동시장의 문제는 해결법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은균] 대학진학률이 아직도 높은 편입니다. 2009년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70퍼센트대(2016년 69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어요. OECD 평균은 41퍼센트입니다. 대학 교육에 드는 국민 전체의 과비용 문제가 심각한데, 대학 자체를 구조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봐요. 노동시장의 문제는 핀란드의 사회적 대타협을 참고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핀란드도 치열한 입시제도가 존재하다가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죠. 우리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라도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노사 간 대립적 관계, 그걸 바라보는 시민들의 부정적인 시선 문제가 심각합니다. 교육 문제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 사이의 대립도 격렬하죠. 대타협의 자리를 만들고 책임성 있는 주체들이 모여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곳에서 교육과 임금 등의 문제가 이야기되어야 할 겁니다. 
 
[오늘보다]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별이 해소되어야 교육 문제도 해결될 것 같습니다. 전교조 내에서도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정서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한데,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정은균] 맞아요. 조합원들의 정서를 내세우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전교조 전북지부 토론회에 참석했어요. 동일 과목 비슷한 연배의 동료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 정서를 내세우며 반대했어요.
전교조라는 조직이 사회적으로는 분명히 영향력이 있는데, 국가정책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은 거의 없어요. 그런 역학관계 때문에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설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또 현장 조합원들과 상층 지도부 간 괴리감도 커요. 지도부가 삭발과 단식 등 고통스러운 투쟁을 하고 있으나, 이것이 현장에 어떤 정서적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때문에 현장 조합원들이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정서를 전교조 집행부 차원에서 강제하기가 힘든 측면도 있고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최근 고민이 깊습니다. 전교조 초창기 사회과학 공부모임과 같은 현장의 자발적 활동 모임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전체 조직 차원에서 모아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현장에 대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고 실질적인 사회적 파장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현재와 같은 분위기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오늘보다] 최근 조합원들이 전교조를 이탈하는 시점이 몇 번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전교조에 가입하기보다는 개인 취미생활에 심취하거나, 그나마 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은 전교조보다 신생 교원단체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지역별·학교급별 교사노조를 추진하는 조직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조합원 이탈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정은균] 전교조 조합원들의 이탈 현상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전교조를 통한 거시적인 제도개혁도 필요하죠. 하지만 현장 교사들이 공부하면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학교 현장에서 불합리한 일이나 관행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과 힘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전교조는 분회나 지회 차원에서 그런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요. 신생 교원단체인 실천교사모임에 일부 젊은 교사들이 들어가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더 나은 교육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자세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중 일부에서 전교조 활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예 전교조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동의하기 어렵고,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우려스러워요. 
현장 교사들이 서로 소통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련된 문제의식이나 위기감을 느끼는 전교조 조합원들이 지도부만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내고,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저도 이를 위해 온라인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전국의 현장교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교조 내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인 ‘전교조 빠띠(eduhope.parti.xyz)’에 ‘학교학회’ 모임을 만들어 학교 현장 친화적인 전문 연구 모임을 꾸려가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학교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보다] 사회진보연대 교육운동모임과 《오늘보다》는 현장에서 불합리한 문제들과 맞서 싸우는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앞으로 전교조 내에서 전교조가 사회적 연대를 힘있게 실천할 수 있도록 애쓰시는 선생님들과 소통하려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은균]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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