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그날 나는
  • 2017/10 제33호

사드가 들어오던 밤, 소성리

  • 송지영
9월 6일, 텔레그램 단체방에 긴급 공지가 올라왔다. 국방부 장관이 사드 배치를 하겠다고 2시에 기자에게 통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사드가 배치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한 번도 성주 소성리에 가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평소 ‘반전 운동’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한 것도 반성하고, 사드를 막는데 단 한명이라도 더 있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김천구미역에서부터 경찰차가 보였다. 소성리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에도 경찰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이 작은 마을에 파견된 경찰은 자그마치 8000명. 소성리 주민 수의 10배가 넘었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해 ‘절차’를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부 출범 초기에 “사드를 새벽에 기습 배치하지 않겠다”, “환경평가를 제대로 실시하겠다”, “국회의 비준을 받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분명 전 정부와 선을 긋는 발언이었고, 소성리 주민들은 이 말을 믿었다. 나 역시 이렇게 빨리, 성급하게 사드를 배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그때 본 살풍경한 모습은 그 말과 정확히 반대였다.
 
▼ 전쟁과도 같았던 9월 6일의 경북 성주 소성리 ⓒ노동과세계 변백선
 

소성리 가는 길

마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촘촘하게 차단된 길들을 우회해 마을로 들어가는 루트를 확인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검문 때문에 도로가 이미 꽉 막힌 상태였다. 가방끈을 꼭 잡고 수많은 경찰과 경찰차가 가득한 도로 위를 걸었다. 30분 정도 걸어 ‘원불교 성지’라는 표지판을 찾았다. 경찰을 지나치니 경운기 몇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사드 반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길은 어두웠다. 주민은 몇 명 밖에 없었지만, 수많은 경찰이 있었다. 경찰들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나도 검문의 대상이었다.

마을회관까지 2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경찰이 길을 막았다. 나 외에 약 20여 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가로 막혔다. SBS나 YTN 같은 방송사도 진입할 수 없었다. 문제는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들어갈 줄 알고 고립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사는커녕 물도 못 챙긴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그곳은 도로 한복판이라 화장실도 없었다.

합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경찰의 수가 훨씬 많았다. 마침 그 무리 중엔 성주 사드 반대 대책위의 부위원장이 계셨는데, 그분의 진행으로 집회가 열렸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방송차도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자유발언을 하고, 노래를 틀기도 했다. 그 무렵 아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고, 그 사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해후의 기쁨도 잠시, 마침내 경찰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우리를 제압하기 위해 도로 옆 샛길 공터로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그 와중에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경찰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119 구급대는 이 산골 마을까지 들어오는 데 오래 걸렸고, 경찰은 이내 다시 우리를 코너로 몰았다. 한 번은 경찰의 바리케이드 때문에 119 구급대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주저 앉아 있다가 이대로 고립되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지인들과 함께 다른 루트를 모색했다. 다행히 우리는 소성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아수라장 소성리

마을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밖에선 고립일 뿐이었지만, 마을 안이야말로 고립의 극치였다.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경찰은 친절했다. 종교케어팀이 있었고, 최루액을 뿌려대는 경찰도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기만이었다. 소성리 주민들의 비명은 들리지도 않는지 엄청난 병력의 경찰들이 소성리 주민들이 만든 천막을 흔들고,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떼어냈다.

무서웠다. 경찰과 이 정도로 정면 충돌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용기를 갖고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무사히 앉았다. 그리고 옆 사람을 믿고 팔을 둘렀다. 독기가 생겨 나를 끌어내려는 경찰에게 저항했다. 여섯 명 정도가 달려들어 나를 떼어냈고, 그 과정에서 신발도 잃어버리고 온몸이 멍들었다. 그 이후 나는 바보같이 다시 소성리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프기도 했고, 신발도 없었고, 겁도 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절망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군 기지 반대 투쟁은 승리하지 못하고 공권력에 의해서 모두 무차별적으로 밀려버렸다. 문재인 정부라서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믿을 수 없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계속 핵으로 도발을 하고, 미국에서는 우리에게 사드를 배치하라고 하는 상황. 이럴 때 정부는 항상 무자비하게 우리를 탄압했다. 종교케어팀이 성직자를 무차별로 뜯어내도, 렉카가 진입해 입구에 있는 차들을 전부 망가뜨리며 견인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새벽이 왔다. 오전 6시경 사드의 나머지 부품을 실은 군용차가 진입했다. 그때 나는 그 군용차가 들어갔다는 사실보다 옆에서 그걸 보고 우는 소성리 주민들이 더 안타까웠다. “문재인이도 탄핵해야 해.” 그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한반도 그 어디에도 사드를 배치할 수 없다는 소성리 주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실한가.
 
▲ 전쟁과도 같았던 9월 6일의 경북 성주 소성리 ⓒ노동과세계 변백선
 

그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모든 군용차량이 들어갔다. 그러나 경찰은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긴급하게 열렸다. “지금 여기 있는 경찰들이 해산하지 않는 건 돌아가는 군용차량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경찰은 국민이 아닌 사드를 보호하고 있다”는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부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사드를 설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이 아닌 사드만을 보호했다.

사드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지 못한다. 보수 세력은 사드 추가 배치만이 아니라 전술핵 재배치마저 논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핵잠수함까지 거론한다.

하지만 더 많은 무기는 전쟁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벌써 중국은 보복 조치로 경제시장에서 한국을 내쫓고 있다. 북한은 더욱 더 핵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끝없는 치킨게임의 승자는 없다. 패자만 존재한다.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소성리에서 떠났다. 비록 사드는 소성리에 들어왔지만, 아직 부지공사는 막을 수 있다. 나 한 명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겠지만 여러 명이 뭉친다면 분명 막을 수 있단 작은 기대도 있다. 사드 저지에 대한 선전전을 진행하고, SNS에 글을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본다. 주위 사람과 사드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드가 정확히 뭔지,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알고, 합리적인 논리도 있어야 한다.

반전 운동이야말로 가장 끈질기게 해야 하는 운동이지 않을까? 전쟁 위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점점 불안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극도의 위기가 반전평화운동의 계기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핵무기는 물론, 사드 역시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상 어디에서도 존재하면 안 된다는 걸 널리 알려야 한다. ●
 
 
필자 소개

송지영 |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에서 이제 막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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