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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집배노동자 과로사 막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다

“그 어느 때보다 집배노조가 중요해졌다”

  • 허소연

동료의 과로사를 애도할 권리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한 달에 두 명씩 쓰러지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우리나라엔 과로로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없다”는 한심한 변명만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연이은 우정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개인질병이라는 둥 한 사람 몫도 못한 집배원이라는 둥 막말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던 것이다. 집배원들도 픽픽 쓰러져가는 동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이 죽음을 표현할 구체적인 언어가 없었다. ‘너무 많이 일을 해서 그래’, ‘개인질병이겠지’, ‘건강관리는 잘 했나?’ 등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곤 했다.

하지만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이 작년에 출범하고 장시간노동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며 연이은 죽음에 대하여 ‘과로사’라고 규정하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본부장이 직접 조문을 다니고 우체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며 산재인정도 아주 빨라졌다. 집배원들도 입을 모아 말한다. “동료의 사망원인을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에는 동료의 죽음에 대해 눈물겹게 침묵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슬퍼하고 애도할 수 있다. 이제 겨우 제대로 추모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슨 자랑이냐 싶지만, 우정사업본부가 그만큼 비상식적인 기관이었다는 방증이다.
 
 

죽을 만큼 일하진 말자!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한 고 원영호 집배원을 비롯해 올해만 12명(과로사·자살 각 5명, 사고사 2명)이 사망했다. 집배원 죽음의 행렬을 신속히 멈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면서 수많은 노동·종교·법률·시민사회단체가 모였다. 이 단체들은 지난 7월 10일부터 문재인정부에게 ‘집배원 과로사 해결을 위한 국민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기자회견 등을 열었다.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7월 3~7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시의적절한 요구였다. 한편 집배원들에 대한 노동조건 연구는 지난 수년간 다방면으로 진행되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연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핑계를 대며 수용하길 거부해왔다. 그렇기에 정부 차원의 중재가 있다면 우정사업본부에도 큰 압박이 되고, 집배원 과로사 문제 해결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 달간의 활동성과를 바탕으로, 8월 10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출범했다. 집배노조를 비롯해 전국우체국노조,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총 28개 단체가 함께 하고 있다.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출범 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화두가 된 한국사회에서 모범사례를 만들겠다는 책임감과 생명·안전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적어도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일하다, 진짜 죽게 되는 이 비참한 현실만은 바꿔야 하지 않냐?”는 공감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노동자가 참여한 과로사 원인규명

8월 24일, 정부가 ‘집배원 근로환경개선 기획단’(기획단)을 구성하고 집배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전면 실태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의 의견을 전폭 수용한 조사단 구성이 전격 합의된 지 45일만이다. 이번 기획단은 노·사 당사자(각 2명)뿐 아니라 전문가위원(6명), 정부위원(1명), 총 11명으로 구성되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조사 및 개선안을 도출한다. 이들은 집배원 작업환경 조사, 근로실태조사, 고용형태 개선방안 등을 조사할 예정인데, 오는 12월까지 4개월간 운영되고 필요시 2개월 연장한다. 집배노조는 지금까지의 조사와 다르고, 정부가 책임지고 결과에 대한 이행을 우정사업본부에 강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호의 기회’라고 평하고 있다.

비로소 한국사회에 심각한 과로 문제와 대표직군인 집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변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정부는 우정사업본부가 자체 추진하려고 했던 집배원 근무조건 실태조사 용역사업도 중단시키면서 기획단이 제대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집배노조와 집배원 과로사 대책위는 앞으로 기획단이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노조가 중요한 때

노동조합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첫째, 올바른 현장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아직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그간 수많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조사한다고 바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고, 그래도 정부가 나선다니 다를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을 알리며 적극적인 분위기로 바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측에서 조장할지 모를 현장 조사 왜곡을 방지하려 한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에 대응할 것이다.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실제 임금이 하락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특히 사측에서 일찍 출근해도 출근등록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갖가지 무료노동이 판치거나, 유연근무제 같은 변형된 근무형태를 강제로 시행하며 비용부담을 줄이는 꼼수를 부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셋째,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와 함께 과로의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을 만들 것이다. 최근 과로 및 과로자살에 대한 공동의 실천을 위한 기구가 구성되었으며 이에 대한 호응도 높다. 과로사 해결에 대한 대답을 실마리로 전 사회적인 ‘올바른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조건 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제 첫 삽을 떴다. 집배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와 과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당사자인 노동조합 외에도 사회적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로를 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지 않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을 스스로 감내하거나 방치하고 있지는 않나? 우리 모두가 돌아보고, 질문하고, 바꿔야 할 때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내가 소속된 공간에서 집단의 힘으로 바꿔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의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집배 노동자들은 이제 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허소연 | 전국집배노동조합 선전국장. 집배원들의 장시간 중노동이 없어져야 노조 상근자의 장시간 노동이 없어진다는 마음으로 솔선수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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