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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7/08 제31호

바캉스? 싸우는 노동자들이 쟁취한 여름휴가

  • 윤종선
장마가 끝나면 우리를 설레게 하는 단어, 바캉스. 더위를 피해 시원한 산과 바다, 계곡을 찾아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이 매년 늘고 있다. 여름휴가를 뜻하는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 말이다. 1936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1936년 5월 프랑스의 작은 공장에서 5명의 노동자가 해고된다. 5월 1일 노동절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분개한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파업에 돌입한다. 결국 해고자 전원이 복직되었을 뿐 아니라 파업권 인정, 파업일 임금지급 요구까지 따냈다. 같은 달 24일 60만 군중이 운집한 파리꼬뮌 추도대회에서 이 파업의 성과가 전파되면서 점거파업은 더 많은 사업장으로 확산된다. 그렇게 1936년 5~6월 프랑스 대파업이 시작되었다. 점거파업 건수는 1만 2000건이 넘었고, 18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파업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 결국, 자본가 대표는 대통령의 중재로 프랑스노동총연맹(CGT)과 마띠뇽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협정에는 주 40시간 노동, 1년에 2주일 유급휴가, 전국적 단체교섭, 임금인상 등 획기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때 명문화된 프랑스 노동자의 유급휴가가 바로 바캉스다. 우리가 아는 바캉스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이다.
 

대한민국에도 근로기준법에 유급휴일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서비스도 노동조합이 있기 전 여름휴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여름이 되면 밀려드는 일감으로 인해 휴가는커녕 원청이 요구하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많이 일하면 임금이야 좀 더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름 한 철 지나면 파스자국과 멍 자국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수기 때는 일감이 없어서 걱정이지만 성수기 때는 힘들어 죽을까봐 걱정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삼성의 노예도, 기계의 소모품도 아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외치며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대부분은 여름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투쟁으로 만들어냈다. 법은 있으나 요구하지 않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뺏기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2013년 여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과세계

그러나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건당수수료 체계가 비수기엔 저임금으로, 성수기엔 과도한 업무로 우리를 착취한다. 지난 6월 9일 삼성전자 에어컨 설치기사가 과로로 쓰러져 숨졌다. 그는 넉 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고 사고 날 점심도 라면과 김밥을 먹을 정도로 바쁘게 일했다. 회사에 작업 물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2017년, 퇴진촛불의 성과로 정권이 바뀌었다. 더 이상 시민들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날 촛불을 들고 염원했던 것들을 이루고자 한다면 일터와 삶터에서 외치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 아직도 우리가 거리에서 “적폐청산, 재벌개혁, 최저임금 1만원, 노조 할 권리, 비정규직 철폐, 직접교섭 지금당장” 구호를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투쟁해나갈 때 1936년 프랑스의 마띠뇽 협정 같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
 
 
 
필자 소개

윤종선 | 가전제품 수리하는 노동자이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서울·경기북부 분회의장.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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