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7/09 제32호

노동자·학생 연대의 새 길을 모색하다

학생단체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의 고민

  • 원다정 송한솔 조유리
오늘날 많은 청년들은 비좁은 취업 통로 앞에서 각자도생한다. 대학생들의 모임인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은 노동권을 보편의 권리로, 구로공단(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 노동문제 해결을 전체 한국사회의 변혁으로 확장시키겠다는 문제의식으로 만들어졌다. 노학연대를 통해 지역 노동자들의 노동표준을 바꾸는 운동에 기여하고, 나아가 조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운동의 활로를 만드는 게 목표다.

구로공단은 2000년대 하향평준화 된 노동조건이 가장 적나라하게 고착된 공간이다. ‘공순이’라 불리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피땀으로 상징되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왔다. 이에 더해 신자유주의 도입과 노동유연화로 인한 노동조건 후퇴는 구로공단에 두 번째 타격을 줬다.

구로공단이 ‘첨단지식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쟁취했던 노동조건의 방어선이 없는 신규업종이 대거 유입된다. 여기에 청년들이 그 일자리를 채우면서 일각에선 ‘구로공단은 청년의 무덤인가’라는 개탄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1960년대부터 형성돼 온 공단 제조업의 특성과 ‘87년 체제’의 영향이 닿지 않는 청년 위주의 신규 노동시장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는 구로공단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하향평준화 된 노동조건을 갖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달라진 노동시장에 맞춘 운동 전략을 도출한다는 지역·청년 조직화의 문제의식에 구로공단이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리서치 활동과 권리의 확장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의 시작은 2015년 <구로공단 첨단지식산업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사례분석과 노동표준 연구> 연구 활동이었다. 연구보고서 작성을 위해 20여 명의 첨단지식산업 노동자들을 표본으로 선정하고,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 지역에 관철돼야 할 ‘노동표준’이 무엇인지 확장된 권리개념을 논의하는 기획이었다. 근무환경 측정을 넘어선 ‘노동세계’ 파악으로 다양한 요구안 도출(시간급에 연동한 포괄임금제 개정 요구, 개발한 결과물에 대한 노동자 지적재산권 인정 등), 지역협약 및 지역노조 등 문제제기와 해결 통로에 대한 상상 등 ‘노동권’의 범주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며 새로운 권리를 발굴하고자 했다. 이는 ‘포괄임금제 폐지’ 등 우리의 요구안을 도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학생들만의 고민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심층면접을 통해 ‘포괄임금제’의 상세한 내용을 처음 알게 된 노동자의 눈빛은,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요구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촉발시켰다. 이는 법으로 보장된 노동권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법을 이용하되 법에 의존하지 않는 운동이 필요함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과제가 무엇이든 현장에서 관철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점도 절감했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이어진 연구 활동은 학생들이 구로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권’을 확장시키는 과정이었다.
 
 

NO PAY NO WORK 캠페인

최근엔 ‘포괄임금제(무료노동) 폐지’ ‘근로기준법 준수’ ‘지역협약 체결’을 목표로 <노동인권캠페인단 NO PAY NO WORK>를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NO PAY NO WORK’가 집중하는 활동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구로공단의 여러 문제들을 통해 한국 사회 노동 조건의 보편성을 찾고자 다층적인 내부 학습을 하고 있다. 인권위원들의 관점을 통일하고 분석 역량을 쌓기 위해 진행되는 ‘에따블리학교’가 그 수단이다. 둘째,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에서 노학연대를 가능케 할 실천적 실험들을 고민하고 있다. 지역조직화 문제의식에 따라 넷마블을 필두로 구로공단을 바꿔가고자 하는 ‘노동자의미래’와의 공동 활동이 그것이다. 3~4월 집중서명운동, 5월 칼퇴근 축제 등은 지금 구로공단에 가장 필요한 요구안, 지금 구로공단을 바꿔낼 가장 즉각적인 실천에 함께 힘을 싣는 활동이었다.

성과도 보인다. 조사연구와 실천적 노학연대의 경험은 구로공단과 한국사회 노동표준 형성에 기여할 학생들을 하나둘씩 모이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20대 청년들의 역량을 형성해 지역운동의 발전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 대학생 스스로 새로운 문제해결 통로를 여는 과정이다. 노동 문제를 통감하는 대학생은 많지만,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유의미한 성과다. 
 

노학연대의 의미를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은 민중운동과의 긴밀한 연계로 실제 노동운동에서 변화와 성과를 공유하며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로공단이 지니는 의미와 노동조합의 역할을 고찰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노동권 확장을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이는 앞으로 대학생들이 노동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통로를 찾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이 우리가 사회 모순을 각개 돌파하는 개인이 아니라 변화를 바라는 의견그룹이 되도록 이끈다. 구로공단에서 펼친 3년의 활동은 지역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주체적 변화 역시 가능함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역 민중운동 연대를 통한 성과도 보인다. 노동자의미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로공단 지역조직화 운동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스스로 ‘지역 학생단체’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대학이 모여 있는 서울 내에 위치한 공단이라는 점에서 지니는 이점도 존재한다. 노동의 현실을 바꾸고 싶은 대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로공단은 대학생들이 연대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에 좋은 거점이다.

근로기준법 미준수와 초장시간노동이 업계 표준으로 잡혀 있는 구로공단에서, 우리는 노학연대를 통해 구로공단 노동표준의 변혁을 꿈꾼다. 아직은 소박하고 첫 발자국을 내딛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구로·금천 지역에서부터 차근차근 잃어버린 노학연대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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