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기획
  • 2017/04 제27호

하루 배송, 노동자들만 괴롭다

콜센터 상담사의 이야기

  • 이준혁
2000년대 들어 콜센터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상담사들만 해도 28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서비스 산업에서 ‘노조 할 권리’는 멀기만 하다. 사실 바깥에서는 이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이래서야 노조 할 권리의 ㄴ자라도 외칠 수 있겠나. 그래서 실제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분을 만났다.

김기주 씨(가명)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인터넷 쇼핑몰의 하청 콜센터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일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회사가 마침 서울 한복판에 있어서 퇴근길의 기주 씨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할 수밖에 

시작부터 무거운 얘기를 꺼냈다.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 여고생의 자살 사건이다. 기주 씨는 주변 동료들이 너무 무덤덤한 반응을 보여 놀랐다고 한다. “유리멘탈이네. 다른 사람들은 다 견디는데. 이런 반응들이었어요. 언니들은 너무 당연하게 전에 다니던 곳에서도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꺼냈어요. 동정하는 말도 없고.” 

예상하긴 했다. 내 한 입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타인의 죽음이 나의 일이 되기란 어려우니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실적 위주의 콜센터 운영, 극히 적은 기본급과 인센티브 위주의 급여 체계가 상담사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의외였다. “콜센터마다 달라요. 제가 일하는 데는 인센티브 목숨 안 걸어요. 콜센터에서 실적평가하고 경쟁시킨다고 많이 하잖아요? 근데 이런 거 누가 어떻게 평가해요? 못해요. 다 운이에요. 관리자는 딸랑 평가점수만 보여줘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콜을 어떻게 잘 해주고 있는지 몰라요. QA(통화품질관리부서)라는 데서 통화하는 걸 다 듣기는 해요. 근데 다 듣는 게 아니고 길어지는 통화 몇 개만 들어요. 긴 통화는 보통 강성고객(진상고객)이거든요. 재수 없이 강성고객 걸리면 QA한테 또 걸려서 평가 안 좋아지고. 운 좋으면 안 걸리는 거고. 평가를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상담사들이 평가 잘 받으려면 관리자한테 엄청 잘 보이려고 하죠.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관리자 선물 맨날 사다 바치고.”

기주 씨는 이런 상황에서 상담사들이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만연한 무급노동

관리자들은 상담사들의 시간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기주 씨가 일하는 콜센터의 공식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하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전혀 다르다. “관리자가 엄청 쪼아대요. 후처리라고 있어요. 고객님이랑 통화하고 나면 상담내용을 적어야 되거든요. 근데 이거를 3분 넘게 하고 있으면 관리자들이 회사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요. ‘후처리 그만하세요’. OB('한 번의 통화로 고객의 요구사항이 다 해결되지 못했을 경우 문제를 해결한 뒤 상담사가 직접 고객에게 전화하는 일')해야 되는데 하지 말라고 하고. 하루에 수십 번씩 오는 쪽지는 다 이런 거예요. ‘(콜)대기하세요’, ‘후처리 하지 마세요’, ‘OB 하지 마세요’, ‘하려면 허락받고 하세요’. 근데 하기는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일찍 출근해서 어제 못한 후처리하고 6시 넘어서 후처리, OB하고 그래요.”
 

고객님보다는 관리자의 압박이 더 스트레스

‘강성고객을 대하는 스트레스’는 어떨까. 기주 씨는 “처음에는 손에 땀이 났”단다.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까 무섭잖아요. 지금은 고객들이 대충 어떤 요구를 할지 알아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기주 씨는 곧 문제는 다른 데 있다며 다시 관리자 얘기를 꺼냈다. “한번은 동료가 강성고객을 만나서 50분 넘게 통화하다가 화가 나서, 고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목소리 좀만 높였어요. 근데 반성문까지 썼어요. 그러고 상담사들 다 모아놓고 감정 섞인 말 하지 말라면서 훈계하더라구요. 너네가 자부심이 없어서 성질을 내는 거라면서 ‘우리가 ○○○○(원청 회사 명)다’ 외치게 하고.” 기주 씨는 고객보다는 관리자의 압박이 상담사들의 감정소모를 더욱 심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하루배송 이런 거 없어져야 해요”

노동조건이 개선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화제가 되고 있는 ‘통화거부권’ 얘기를 꺼냈다. 고객이 욕설, 성희롱을 하면 상담사가 통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적어도 고객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을까 꺼내본 얘기였지만 기주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거는 진짜 극단적인 강성고객만 제어할 수 있어요. 이게 상담사들한테 엄청 대단한 걸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아니거든요. 진짜 욕하면서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2달에 1명 정도?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별로 와 닿지는 않아요.”

기주 씨는 ‘상담사가 욕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쇼핑몰이다 보니까 하루배송을 강조하거든요. 고객님들 80퍼센트는 배송 문제를 물어봐요. 하루 만에 배송 왜 안 되냐면서. 이건 공급업체나 택배, 물류회사, 전산 등 복잡한 문제잖아요. 근데 나는 상담사일 뿐이고 권한도 없고 원청은 따로 있는데. 권한 밖의 문제를 계속 물어보니까 스트레스인 거죠.” 그러면서 기주 씨는 “콜센터 노동자랑 소비자랑만 계속 싸우고, 콜센터랑 원청은 하나도 책임 안 지고 쏙 빠져 있어요. 하루배송 이런 거 없어져야 돼요. 그러면 택배기사한테도 상담사한테도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되물었다.

구체적인 현장의 얘기부터 다른 업종의 노동조건 개선을 제시하는 여유까지! 기주 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산콜센터와 텔레웍스 노동자들은 원청(서울시, 씨앤앰)과 교섭하고 투쟁하며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었다. 기주 씨의 말대로 모든 책임은 상담사에게 전가하면서 실적만 올릴 것을 강요하는 원-하청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제기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덧붙이는 말

이준혁 | 올 한 해 목표는 술독에 빠져 살기. 이번 인터뷰도 술먹고 싶은 핑계로 자청했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미래'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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