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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 제28호
도처에 노동이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대중에 선보인 영화는 공장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행렬을 촬영한 것이었다. 화면 속 사실적인 움직임은 새로운 차원의 현실 감각이 되었다.
그 기념비적인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 하룬 파로키는 동시대 노동의 행위를 조명하는 <노동 싱글쇼트>를 기획했다. 90개의 싱글쇼트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세계 15개 도시에서 4년간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여러 노동의 현장을 기교 없이 촬영한 것이다.
각 영상은 2분 남짓한 길이지만 노동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분화되고 분절된, 가려지고 위장된 오늘날의 노동이 눈앞에 펼쳐진다.
농사를 짓고 타이어를 만드는 일부터 전통적 의미에서는 노동이라 불리지 않았던 일들, 이를테면 기다림이나 감시 같은 행위, 지하보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까지. 이 단순한 움직임들이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장면처럼 새롭게 삶의 감각을 일깨운다. 여기에, 저기에, 도처에 노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