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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4차 산업혁명’이라 쓰고 ‘호들갑’이라 읽는다

  • 배일훈

교육에 부는 ‘4차 산업혁명’ 바람 

‘4차 산업혁명’은 지난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을 통해 유명해졌다. 4차 산업혁명 ‘전도사’라 불리는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생명공학, 물리학 등을 융합하는 기술혁명’이라 정의하면서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정치·경제·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교육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에 맞는 인재의 상과 교육의 변화 방향에 큰 관심을 보인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각자가 구상하는 교육개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는 상황이다. 학교 현장의 반응도 유별나다. 박근혜 정부 교육정책의 모토가 ‘꿈과 끼’였을 때 ‘기승전-꿈과 끼’였던 모든 공문과 게시물이,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유행하고부터 ‘기승전-4차 산업혁명’으로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일련의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이 본 글의 논점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00년대 후반 금융·경제위기로 최근까지 세계경제의 키워드는 ‘장기불황’, ‘저성장’이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들어선 후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대량실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지금을 ‘혁명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자본주의 축적 체제가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디지털과 연계된 물리학·생물학 등 ‘혁신적 기술’이 그 원동력이다. 즉,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는 기술낙관론적 입장이다. 그러나 100년 전을 돌아보면,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미국에서는 2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전기제품·내연기관·상하수도·석유화학·제약 등이 개발, 도입(1870~1900년)됐다. 자본금을 효과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주식회사 형태의 소유구조를 만들었고(1890~1900년대 법인혁명), 자동차 같은 새로운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 노동자들이 일하도록 많은 수의 관리자를 고용하고 생산조직을 새롭게 구성했다(1910~20년대 관리자혁명). 금융자본으로 인한 경제의 불안정성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도 이뤄졌다(1930~40년대 케인즈혁명).

눈여겨보면 의외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선 경제학계에서는 대체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기저성장인 현 국면을 산업혁명의 출발점으로 볼 수 없다”는 로버트 고든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국내 보수언론조차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의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고 정의가 모호해 관련 논의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아, 자칫 ‘녹색경제’나 ‘창조경제’처럼 반짝 유행하고 잊히는 구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개념정리 안 되면 창조경제 재탕될 수도”, 중앙일보 2017.6.15.)
 

세상이 획기적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지난 10~20년간의 대단한 발명과 편리해진 생활을 획기적인 변화라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미국 경제성장의 장기추세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한 로버트 고든은 정보통신기술의 경제성장 기여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 지난 250년간 이뤄진 급속한 진전이 인류 역사에서는 독특한 사건이며, 미국의 경제성장도 20세기 중반에 정점에 이르러 그 이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느려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21세기 들어 더 똑똑하고 많은 기능을 가진 엔터테인먼트, 통신장치 등 발명품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전기·전자제품·내연기관·수도·전화·축음기 등 예전 세대가 겪은 충격에 비하자면 보잘 것 없다고 평가한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의 실험을 제안한다.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10년 전 발명된 상태(구글, 아마존,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아이폰 등을 포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제까지 발명된 모든 걸 갖는 대신 수세식 화장실과 상수도를 포기해서 매일 물을 길어와야 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TED 강연 “혁신의 죽음, 성장의 끝”)
 

모두가 구글·애플처럼 돈 벌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업은 단연 구글과 애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보통신과 관련되며, 공장에서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로 돈을 번다는 점이다. 우선 세계최고 플랫폼 기업인 구글의 수입 절반은 광고료다. 기업들이 구글에 광고를 하는 이유는 구글이 네트워크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글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들은 매출의 30퍼센트를 무조건 안드로이드 이용료로 지급해야 한다. 일종의 인터넷 통행세를 걷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애플은 같은 플랫폼기업이긴 하지만 제조업과 무관하지 않다. 연구개발과 디자인만 애플사가 담당하고 생산은 직접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은 제품을 중국에 공장을 둔 폭스콘에 위탁생산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을 기숙사에 가두고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폰으로 창조된 부가가치는 애플의 연구개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폭스콘 노동자의 생산(노동시간) 속에서도 있는데, 애플은 생산량에 따른 임금만 지불할 뿐 그 이상의 이익을 분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의 조립업체가 아이폰4 한 대를 수출해서 받는 대가는 소매가(600달러)의 1퍼센트에 그친다.

한국의 대표적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도 대동소이하다. 노동집약적인 생산 부문은 중소기업에 외주화하고 핵심부품 생산과 기술개발은 삼성그룹에 내부화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자체생산과 외주생산을 병행하며 위험이나 변수에 대응할 수 있어 생산과정에서의 비용을 감축한다. 즉, 정보통신산업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이미지와 달리, 소수의 고기술 핵심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 노동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주목하는 지식, 정보, 아이디어는 지식재산권이라는 배타적 소유권에 의해 보호되고, 일종의 ‘지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 볼 수 없다. 토지소유자가 산업자본가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지대를 받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단, 토지는 1명에게만 빌려줄 수 있는 반면 지식재산권 소유자는 아주 싼 가격에 복제해 동시에 여러 명에게 대여할 수 있고, 따라서 엄청난 소득을 거둘 수 있다. 그 대여자 혹은 구매자가 많아질수록 유용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경쟁기업의 신규 시장진입도 어렵다. 대부분의 플랫폼 확보 기업의 고소득 역시 이러한 시장지배력에 기인하며, 지식재산권 소유자에게 제공되는 소득은 광고료, 이용료 등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자의 임금에서 깎이거나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오게 된다. 성공한 기업모델일 순 있어도 전체 경제의 성장이라 볼 수는 없다.
 
▲ 애플 하청공장 폭스콘에서의 노동 착취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4차 산업혁명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4차 산업혁명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체 없이 떠도는 낭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은 디지털화, 기계화·자동화로 인한 승자독식과 소득의 양극화는 필연적이고, 현재 그리고 미래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교육·복지 등 사회정책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문제원인을 호도하고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실업, 저질의 일자리 확산에 대해 면죄부를 줄 뿐이다.

또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격화, 저임금과 실업에 대한 공포 같은 것들이 4차 산업혁명 담론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경제위기’가 지속·심화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학교 교육이 불평등한 노동시장으로 내보낼 예비 노동자를 양성한다 했을 때 격차 축소를 위한 다양한 심급의 해법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이자 시민을 양성하는 학교교육이 견지해야 할 방향과 내용에 대한 논의가 과제로 남을 것이다. ●
 
※ 다음 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개혁 담론을 다룬다.
 

참고 자료

 

- 김태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비판: 소득주도 성장론을 중심으로>, 《2017 노동운동포럼》, 2017
- 전준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인가>, 《사회운동》 2013년 여름호
- 한지원,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이면,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과제”
- Gordon, “Is US Economic Growth Over? Faltering Innovation Confronts the Six Headwinds”, 2012

 

 
 
필자 소개

배일훈 | 오늘보다 편집실 기획조사국장. 노동이라는 튼튼한 주춧돌 위에 교육이라는 기와집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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